몰래 따라가다
<지난 이야기>
항상 밝고 명랑한 예나 언니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니, 나의 마음은 너무 아파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와 동시에 언니의 학교 친구들을 향한 '분노'라는 강한 감정의 불이 지펴지고 있었다.
언니가 왜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는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털어놔준 예나 언니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예나 언니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중간쯤 이야기했을 때부터 조금씩 울먹거렸지만 끝까지 다 말하고 나서야 울분이 터진 것이다.
나는 그런 예나 언니를 꼭 안아주었다.
"언니, 괜찮아.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
내가 옆에 있잖아."
언니도 나를 꼭 안은 채 마치 길을 잃었다가 부모님을 만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오랜만에 언니와 침대에 누워
대화를 했다.
"언니랑 자기 전에 대화하는 거 오랜만이네."
"그러게."
"언니, 그런데 오늘 나한테 해준 이야기 말이야.
선생님께는 말씀드렸어?"
"응, 그게 말씀을 드렸었는데, 나만 된통 혼났어.
선생님도 내 말을 안 들어주셨거든. 친구들 말만 믿고
나한테만 뭐라고 하셨어. 한 번만 더 그러면 부모님 모셔오라고 하시더라."
"아니, 어떻게 선생님까지 그러실 수가 있지?
학생 모두의 의견을 들어주고 조절해 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 아닌가?"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나만
잘못했다는 식으로 가는데, 하... 월요일부터 또 학교 가야 하는데.. 학교 정말 가기 싫다...
나 정말 어떡하지, 코코?"
"그럼 월요일에 내가 학교 같이 가줄까?
내가 옆에 있어줄게. 그러면 언니가 덜 외로울 거 아냐."
"안돼! 5학년이 인형 가지고 다니는 걸 친구들이 보게 되면, 다들 어린애라고 놀리면서 더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닐 게 분명해! 안 그래도 지금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이 잔뜩 퍼져있는데.."
"그럼 언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사실 소문이 다른 반에도 다 퍼졌거든...
게다가 선생님도 친구들 편이라 내 편은 아무도 없어.
나는 그저 부모님 모셔오는 일 같은 큰 일 안 생기게
그냥 학교 졸업할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살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학교에서 애들 신경 최대한 안 건들고 투명인간처럼 살겠다고."
"언니......"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언니는 잠에 들었다.
잠이 든 언니의 양쪽 눈에는 눈물이 조금 고여있었다.
"이 상황을 어찌하면 좋을까... 언니를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나는 생각했다. 아니 생각해야만 했다. 어찌해야 언니를 도와줄 수 있을지 말이다.
나는 신의 사명을 따라 인간에게 삶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인간계에 내려온 인형 수련생이다.
이제 내 본분을 할 차례가 온 것이다. 또한 어쩌면 신께서 알아오라고 하신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언니를 도와줄 만한 것을 찾는 방법.
그건 바로 내가 언니 몰래 학교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언니는 5학년이 인형을 가지고 다니면 친구들이 놀릴 거라며 안된다고 했지만,
내가 언니 모르게 학교에 따라간다면? 언니에게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언니가 처한 상황을 자세하게 모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몰래 지켜본다면, 방법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좋았어! 그러면 나는 월요일 아침에 언니 몰래 학교에 따라간다!
월요일이 되었다. 지금은 새벽이다.
내가 새벽에 일어난 이유는 언니 몰래 학교에 따라가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할 거냐면, 오늘은 언니가 학교에서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이라 체육복 가방을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언니의 체육복 가방 속에 들어가 있다가 자연스럽게 학교로 따라가는 작전을
실행할 것이다!
나는 언니 몰래 침대에서 살금살금 나와 책상 위에 어제 언니가 미리 챙겨두었던 체육복 가방 안에
쏙 들어갔다. 내 몸이 들어가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가방 사이즈가 커서 잘 들어갔다.
언니에게 티가 나지 않도록 체육복과 한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잠시 뒤, 침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고, 언니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으음... 코코야... 잘 잤...
어라? 코코가 어디로 갔지..?"
"화장실에 갔나... 인형이라서 그럴 일이 없을 텐데..
어휴.. 모르겠다... 학교나 가자... 어딘가에서 자고 있겠지 뭐.."
언니는 일어나 보니 옆에 내가 없어서 나를 잠시 찾았지만,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나를 찾는 건 금방 포기한 거 같았다.
"아.. 왠지 조금 서운하네..?"
또 시간이 잠시 지나고 나서 언니는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여전히 기운 없는 발걸음으로
책가방과 실내화가방, 그리고 체육복가방을 챙겨 터벅터벅 방문을 나섰다.
"코코.. 언니 학교 다녀올게.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에 잘 있어. 엄마한테 들키지 말고."
"히히, 언니 나는 체육복 가방에 있지롱!"
"그런데, 오늘따라 체육복 가방이 좀 무거운 거 같네. 기분 탓인가?"
언니는 방문을 나와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 저 학교 다녀올게요."
"예나야, 밥은?"
"입맛 없어요. 안 먹을래요."
"오늘도 안 먹니?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밥은 먹고 가야 학교에서 힘이 나지! 조금이라도 먹고 가!"
"안 먹을래요."
"예나야, 너 요즘 정말 학교에서 무슨 일 있니? 통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밥도 잘 안 먹으려고 하고."
"아니요, 없어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엄마랑 아빠한테 말해줘야 한다?
우리 딸, 엄마가 엄청 사랑하는 거 알지?"
"네, 그럼요. 저도 엄마 엄청 사랑해요.
그럼 저 학교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와, 우리 딸! 오늘도 파이팅!"
사실 언니가 학교 가는 날 아침밥을 먹지 않은 지도 며칠이 되었다.
언니네 부모님은 그런 언니를 걱정하시지만, 언니도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에 말할 용기도 없고, 이를 말해서 부모님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서 말을 못 한 것 같아 보였다. 나한테도 그랬으니까.
오늘 학교를 따라가 보면 언니에게 있었던 일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겠지.
잠시 뒤,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언니네 학교에 도착한 것 같았다.
"하... 너무 가기 싫어서 최대한 천천히 걸었는데, 벌써 도착하고 말았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그래 예나 안녕. 얼른 교실로 들어가."
"네."
언니가 어른과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교문에서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것 같았다.
"흥, 저 나쁜 선생님! 언니 편도 안 들어주고! 절대 용서 못해!"
언니가 실내화로 갈아 신고 계단을 올라, 드디어 교실에 도착한 모양이다.
교실 문을 열자, 시끌시끌했던 반 친구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그러자, 반 친구들은 언니가 오길 기다려왔다듯이 언니의 자리 근처로 와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장예나 왔네."
"아, 우리 반에서 쫓겨난 애?"
"아니 얘는 이제 우리 반도 아닌데 왜 자꾸 일로 와?"
"하.. 선생님께 장예나 자리 빼달라고 할까?"
"그거 좋겠다."
"쟤만 없으면 우리 반은 완벽할 텐데~"
언니네 반 친구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언니 마음속을 날카로운 포크로 쿡쿡 찌르는 듯한
말만 골라서 했다.
"와.. 언니 들어온 지 1분도 안된 거 같은데..
시작부터 저런 막말을... 언니는 괜찮을까?"
그런데, 언니의 반응은 태연했다. 마치 못 들었다는 듯이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얘들아, 안녕..?"
"허, 네가 무슨 우리한테 인사할 자격이라도 있니?"
"여기 우리 반이야. 넌 우리 반 아니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그럼 나는 갈 곳이 없는데..."
이 말을 듣고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하.. 너네들이야 말로 언니한테 그런 말할 자격 있어?
나갈 거면 너네들이나 나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잠시 뒤 조회시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얘들아, 안녕! 다들 주말 잘 보냈니?"
"네!!"
"그래, 다들 주말에 뭐 하고 지냈는지 한 명씩 말해볼까?"
그때, 한 친구가 손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가을아, 무슨 일이니?"
"선생님, 장예나 좀 우리 반에서 내보내면 안 될까요?"
"맞아요! 장예나는 유미랑 혜린이한테도 상처 주고,
다른 친구들 욕도 많이 하고 다녔는데, 장예나랑 한 반에서 같이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화가 났다.
"아.. 쟤네 또 시작이네...
왜 자꾸 우리 언니한테 상처를 주는 거야?
우리 언니 그런 사람 아니란 말이야!!"
그러던 그때, 유미가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들아, 이제 예나한테 그만해. 나랑 혜린이는 그 일 벌써 다 잊어버렸어.
예나는 우리 반 친구잖아. 너희가 자꾸 이러면 예나는 상처받을 거야."
듣고 있던 선생님도 유미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유미 말이 맞아. 예나는 누가 뭐래도 우리 반 친구야.
그런데, 너희들이 자꾸 반에서 나가게 하면 안 되냐, 같은 반에서 공부하기 싫다 등
그런 이야기를 하면 예나는 얼마나 상처받겠니.
오히려 너희들의 그런 행동이 예나보다 더 못된 행동일 수도 있어.
한 번만 더 그런 소리들 하면 반 단체로 깜지 쓸 거야. 알겠어, 얘들아?"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역시 유미는 착하다니까.. 저런 애를 용서해 주다니 말이야.."
나는 마음속에서 열불이 났다. 너무 답답한 나머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하.. 진짜 어이가 없네... 아니 언니는 저런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
그 말들을 듣고도 언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조회시간이 끝난 뒤에도 언니를 향한 반 친구들의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여자 애들은 언니를 계속 인상 찡그린 눈으로 째려보며 피해 다녔고,
심지어 남자 애들까지 언니를 피해 다니며 못된 장난도 치고, 놀리기도 했다.
"뭘 꼬라봐? 확 그냥!"
"야, 여기 너 여친 있다!"
"야, 맞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어울리네!"
"야 너 뒤진다?"
언니는 이들이 계속 괴롭히는데도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계속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 음악시간이 되었다. 음악 수업은 이동 수업이라 다른 교실에서 하기 때문에,
언니와 반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교과서를 챙겨 음악실로 이동했다.
오늘 시간표가 음악 다음에 바로 체육이기 때문에 언니가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려다
언니와 다른 친구들이 나를 볼까 봐 아무도 없는 사이 숨을 곳을 언니 책가방으로 잠시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그들이 음악실로 가고 나서 밖에서 앞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언니의 체육복 가방에서 슬금슬금 나왔다.
"와.. 여기가 언니가 다니는 학교 교실이구나.."
언니의 교실은 여러 친구들이 같이 쓰는 만큼 참 넓었고, 쉬는 시간에 여러 아이들이 칠판과 책상에 낙서를 하다 지운 흔적, 다 같이 보드 게임을 하다가 급하게 치운 흔적, 그리고 다음 시간을 위해 급하게 교과서를 챙기다 어질러진 책상까지. 반 친구들의 흔적이 많이 보였다.
활기 찬 다른 친구들의 자리와 달리 언니의 자리는 매우 깨끗했다.
책상 서랍도 정갈하게 잘 정돈돼있었고, 책상 위에 낙서도, 쉬는 시간에 놀았던 흔적도, 급하게 준비물을 챙기던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유달리 그녀의 자리가 많이 외로워 보였다.. 마치 소외받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
순간, 나는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애써 참고 빨리 언니의 책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새벽부터 너무 일찍 일어났던 탓일까,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졸음을 이겨보려고 했지만, 가방이 너무 따뜻하고 편한 나머지 결국 언니 가방 안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