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봐, 언니!

언니의 고민

by 연두

17화 코코, 생일 축하해!

<지난 이야기>


어느덧 벌써 늦가을이 찾아왔다.

나는 방 안에 있는 창문에서 나무에 알록달록 물든 단풍잎들을 보며 생각했다.


"작년 이때쯤, 예나 언니랑 처음으로 밖에서 놀았었는데...

시간 참 빠르게 흘러간다..."


지금은 예나 언니가 학교에 간 시간이다.

6학년 2학기의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는 예나 언니는

요즘도 공부를 밤늦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


더군다나, 언니가 가고 싶은 사립중학교의

입학시험도 같이 앞두고 있어,

그것도 준비하느라 요즘 너무 바쁘다.


나는 언니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놀아달라고 귀찮게 굴지 않고, 언니가 힘들어할 때

옆에 있어줄 뿐이다.


가끔 동생들이 언니 보고 놀아달라고 조르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그들을 말린다.


"예나 언니~ 나 안아줘!"

"나는 비행기 태워줘!"


"야..! 너네들 언니 공부하느라 힘든 거 안 보여?

내가 놀아줄게 내가!"


"예나 언니랑 노는 게 더 재밌는데..."

"예나 언니 품이 더 따듯해서 더 좋은데..."


"하... 야 우리 인형이거든?

너네가 더 따뜻해, 이 녀석들아!"


"힝.."


"예나 언니 귀찮게 하지 말고 이리 와!"


"응.."


("하.. 이 녀석들 나랑 놀았을 때가 제일 좋다고 그랬으면서..")


오후가 되자,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언니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물어보았다.


"언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으응.. 고민이 생겨서.."


"무슨 고민인데? 말해봐! 다 들어줄게."


"그게... 아까 학교에서 아윤이랑 율희랑

중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걔네들이 가고 싶은 중학교랑

내가 가고 싶은 중학교가 달라서.."


"아... 걔네들은 어느 중학교 가고 싶어 하는데?"


"포근 중학교.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데,

우리 학교 대부분의 친구들이 거기로 간대."


"근데, 언니는 사립 중학교 갈 거라면서."


"맞아. 그래서 고민이야..

사실은 별로 가고 싶지 않거든..."


"어..? 가고 싶지 않다고?"


"응.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사립중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가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어서..

하지만 엄마는 나중을 위해서라면서 자꾸 가라고만 하시는데..."


"그러면 엄마한테 솔직하게 안 가고 싶다고 하면 되잖아?"


"처음에는 솔직하게 말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엄마가 나에게 너무 기대하시는 게 눈에 보였고,

내가 나중에 더 잘 되기를 바라시는 거니까..

말 못 하겠더라고.."


"그러니까 언니는 엄마가 가라고 하시니까 그냥 가는 거야?"


"응.. 그렇지.."


"아니, 언니! 엄마가 가라고 했다고 그냥 가는 게 어딨어?

언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친구들이랑 같은 학교 가고 싶은 거 아니야?"


"맞아.."


"그럼 엄마한테 말씀드려야지! 안 가고 싶다고!"


"말했잖아.. 엄마가 걱정하실까 봐.."


"그럼 언니는, 엄마가 걱정하실까 봐

언니가 가고 싶지도 않은 학교 억지로 가겠다고?

그것도 힘들게 입학시험까지 봐가면서?"


"그건..."


"언니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잘 생각해 봐."


"........"


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얼굴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침대에 털썩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울분에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사실은 아까부터 나랑 얘기하면서 언니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었다.

조금 울먹거리기는 했던 거 같은데, 우는 걸 보니 정말 속상했나 보다.


순간 나는 언니에게 괜한 말을 했나 싶어 미안해져서

빨리 언니 옆으로 가서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었다.


"언니, 왜 울어?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흐윽.. 흑. 흑흑.."


"미안해, 많이 속상했었구나.

나도 많이 답답해서 그랬어..

언니가 엄마한테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거 같아서."


"흐윽.. 엄마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


"하.. 언니 그래도 얘기 정도는 해볼 수 있잖아.

언니 의견을 말하는 건데 엄마가 왜 속상해?"


"반항하는 거 같아서.."


"아니야, 그렇지 않아.

반항하는 거 절대 아니고 그저 언니 의견을 내세우는 것뿐이야."



그때,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나가 일어났다.


나나는 울먹거리고 있는 예나 언니를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예나 언니,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울어?"


"......."


"코코 언니가 무슨 짓 했어?"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짓을 해.

그런 일이 있어서 그래."


"그래서 무슨 일인데?"


"애들은 알 필요 없어. 그냥 다시 자."


"쳇.. 자기도 애면서..."


"뭐라고 했냐?"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알았어..."



나는 언니가 너무 답답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게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 건지..


내가 아무리 토닥여도 예나 언니는 쉽게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많이 속상하고 답답했었나 보다.


일단은 그녀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울음을 멈추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지 두 눈은 퉁퉁 부었고, 두 뺨은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내가 휴지를 갖다 주자, 언니는 숨을 가다듬더니 이제는 말할 준비가 되었는지

천천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미안해, 코코. 언니가 갑자기 울기만 해서."


"솔직히 언니가 갑자기 울어서 많이 당황스럽긴 했는데,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서 그런 거 같아. 미안해, 언니."


"아니야, 너는 잘못한 거 없어. 너 말이 다 맞는 걸."


"그럼, 언니 이제는 말할 준비 됐어?"


"뭐가?"


"언니의 진짜 속마음 말이야.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


언니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바로 말했다.


"응, 말해줄게. 내 진짜 속마음."


"그래, 잘 생각했어! 어서 말해봐!"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아빠는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 안 계신 날이 많았었어.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래서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었어.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고 싶었는데, 엄마는 밖에는 위험하다고, 걱정된다면서

학교 끝나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고, 혼자서 나가지도 못하게 하셔서 못 나갔었어.


근데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외로웠고, 심심했어.

그래서 나는 그럴 때마다 심심함을 잊기 위해서 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를 했거든.

특히 외로움이 많아지는 날이면 하루 만에 스케치북 전체를 그림으로 채우는 날도 있었어.


그 결과,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 보니, 그림이 점점 재미있어졌고 소질이 생겼어.

그래서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되었지.


그런데,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공부도 틈틈이 열심히 한 덕에 성적이 많이 올랐고,

엄마랑 아빠가 내 성적표를 보자마자 엄청 기뻐하시고, 좋아하셨어.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지.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내 성적표를 유심히 보더니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


"예나야, 너 학교 사립중학교로 가는 거 어때?"


"사립.. 중학교요?"


"네 사촌언니 유나 알지? 유나가 이번에 사립중학교에 갔잖아!

글쎄 네 이모가 그러는데, 사립중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잘하는 분야를 팍팍 밀어주고, 수업 환경하며, 점심식사하며 다 최고래!

게다가 나중에 고등학교랑 대학교 갈 때도 큰 도움이 된다나 봐 글쎄~!


근데, 거기는 공부 잘하는 애들만 갈 수 있는 곳이라서

입학시험에 합격해야 간다고 하네.


그래서 말이야. 우리 예나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잖아.

사립중학교에 있는 미술 동아리에 들어가는 거 어떤가 해서."


"미술 동아리라.."


"거기 학교 미술 동아리가 특히 동아리 중에서 최고로 인기도 많고 유명하대 글쎄!'


"저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머, 얘! 그림 쪽은 평범한 학교 가서는 취업하기 힘들어!

게다가 너처럼 공부까지 잘하는 애가 왜 이런 좋은 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해?"


".......... "


"우리 딸, 엄마 말 잘 듣는 애잖아. 엄마 실망시키지 않을 거지?"


"... 네, 생각해 볼게요."



그 이후로, 언니는 조금 고민했지만, 그녀에게 기대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며 결국 그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 생각엔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부모님에게 좋은 딸, 착한 딸로만 살아와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건데도 그저 기대를 저버리는 거, 반항하는 거라고만 생각해서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언니가 그곳에 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친구들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이제 겨우 진정한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친구들과 중학교에 가서도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이라는 이유가 생겨서, 언니의 생각이 확고하게 바뀐 것 같다.


언니의 긴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는 조금 생각을 정리해서 언니한테 말했다.


"언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네. 오늘 이렇게 울기까지 했으니까 말이야.."


"내 얘기가 많이 길었지? 끝까지 들어줘서 고마워, 코코."


"아니야,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언니한테 더 확실하게 말하고 싶어 졌어."


"무슨 말?"


"언니, 오늘 엄마 돌아오시면 한번 말씀드려 봐. 가고 싶지 않다고."


"어..? 갑자기?"


"얘기 들어보니까 언니 마음은 이미 가기 싫다고 말하고 있어."


"나는.."


"언니를 기대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 알아. 이해해.


근데, 나도 언니가 그 학교에 가는 거 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언니는 충분히 잘하고 있거든.

공부도, 그림도.

굳이 원하지 않는 학교에 안 가도,

언니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가장 중요한 건 언니는 친구들이랑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

괜히 가고 싶지도 않은 학교 입학시험 준비한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오늘이라도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해봐."


"코코..."


"내가 옆에 있어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언니가 차근차근 잘 얘기하면, 엄마도 이해해 주실 거야.

그러니까 한번 시도해 봐, 응?"


언니는 잠시 주저하는 듯 보이더니, 이제는 결심한 듯 말했다.


"알겠어. 조금 떨리기는 하지만

오늘 엄마한테 한번 말씀드려 볼게!

고마워 코코. 덕분에 용기가 생겼어.'


"그래 좋았어!"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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