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지난 이야기>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엄마가 돌아오셨다. 그 순간, 나랑 언니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언니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언니, 진심을 말할 준비됐어?"
"응.. 준비됐어. 나 좀 많이 떨린다.."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나랑 같이 나가자!"
"너 거기서 말할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언니는 내 손이나 꼭 잡고 있어."
"알았어.. 고마워, 코코."
"이제 나가자!"
"응..!"
언니는 나를 꼭 안고 방 밖으로 나갔다.
언니랑 내가 나오자, 식탁에 있던 엄마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어머, 우리 딸 와있었네? 학교 잘 갔다 왔어?
"네.. 잘 다녀왔는데요.. 엄마, 저 있잖아요.."
"응. 왜 그래, 우리 딸? 그러고 보니 표정이 별로 안 좋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 무슨 일 있니?
엄마한테 다 말해봐!
코코까지 끌어안고 있고, 대체 무슨 얘기이길래?"
"엄마, 저 사립중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요..?"
"하.. 또 그 소리니? 처음에도 그러더니.. 장예나, 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니, 너 같이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하는 애가
그렇게 좋은 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려고 하는 거냐고!"
엄마의 호통에 언니는 무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잡고 있던 언니의 손도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아주었다.
"엄마, 저는 거기 안 가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요!"
"예나야, 엄마가 저번에 얘기했잖아!
미술 쪽은 평범한 학교 가서는 좋은 대학 가서 취업하기 힘들다니까?
엄마 친구가 미술 선생님이라서 잘 알아!"
"평범한 학교 가서 두 배, 세배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되죠.
사립중학교에 가면, 지금 친구들이랑 다른 학교 가야 하잖아요.."
"친구들은 중학교에서 사귀면 되잖니?
네 친구들이 가는 학교는 뭐, 거기처럼 학생들이 잘하는 분야를
밀어주기를 하니, 뭘 하니? 네가 하고 싶은 미술 동아리는 있대니?
아니, 네 사촌 언니도 그 학교 선배로 있는데 친구 사귀는 게 뭐가 걱정이야?"
엄마 말을 듣고, 언니는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화를 참기 위해 내 손을 꽉 잡았는데, 너무 아팠다.
그 순간, 언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아이고, 깜짝이야! 얘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엄마는 왜, 제 생각을 이해해주지 않는 거예요?"
"뭐?"
"그렇잖아요, 저는 그곳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잘 해낼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꼭, 그곳에 간다고 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건 아니라고
담임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그리고, 유나 언니가 그 학교에 있다고 해서 제가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지금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어요. 같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요!"
"아니, 네 사촌 언니가 거기 있으면, 어려운 게 있을 때마다 선배로서 너를 도와줄 수도 있지 않겠니?
그리고, 엄마 좋자고 그러니? 너 좋으라고 가라는 거 아니야!"
"아니, 저는 거기 가기 싫다고요! 제 친구들이랑 같은 학교 가고 싶다고요!
유나 언니가 거기 있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거기 안 가도 그림이든, 공부든 제 스스로 잘할 수 있다니까요?"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엄마한테 말하는 것 좀 봐.
장예나, 엄마가 너 그렇게 가르쳐줬어? 엄마 말에 그렇게 따박따박 대들라고?"
그 순간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도 돌아오셨다.
그는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들의 가운데에 서서 말했다.
"다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큰 소리로 싸워?
집 앞까지 다 들리더라!"
"아니, 여보.. 얘가 전에 말했던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잖아요..
입학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아빠, 저 그 학교 가기 싫어요.
저는 친구들이랑 같은 중학교 가고 싶단 말이에요!
그 학교 안 가도, 저 그림이랑 공부 충분히 잘할 수 있어요!
저 좀 믿어주세요!"
아빠는 모녀의 말을 조금 더 듣고는 곰곰이 생각에 빠지는 듯했다.
그러다, 그는 금방 생각을 정리한 듯 언니에게 말했다.
"예나야, 네 마음 충분히 알겠어.
그런데, 얼핏 밖에서 들었는데, 너 엄마한테 막 화내더라?
어른한테 그렇게 따박따박 대드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니?
아빠가 전에 뭐라고 했었지? 어른에게 얘기할 때는
격식과 예의를 갖춰서 얘기하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빠, 지금 이 상황에서 왜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엄마가 제 말을 안 들어주시니까 답답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언니의 말을 듣자, 아빠도 큰 소리로 호통을 치셨다.
"장예나! 아빠가 방금 말했잖아! 예의 갖춰서 말하라고!
우리 딸 원래 그렇게 말 안 듣는 애 아니잖아? 오늘따라 왜 그러지?"
그 순간, 언니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의 눈물이 내 손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언니가 두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게 다 두 분 때문이에요! 제 마음은 알려고 하시지도 않잖아요!
제 얘기는 이해하려고 하시지도 않으시고..
두 분의 생각을 저한테 강요하고만 계시잖아요!
두 분 다 정말 너무 하세요! 엄마, 아빠 정말 미워!!"
"코코, 가자!"
"언니..."
언니는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끌어안고
방에 들어가 문을 세게 쾅 닫아버렸다.
언니는 침대에 털썩 앉아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우는 그녀에게 휴지를 갖다 주며 꼭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 엄마랑 아빠가 얘기를 잘 안 들어주시네...
이렇게까지 반대하실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어. 두 분이 저렇게 나오실 줄은..
어떻게 하나같이 내 얘기는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두 분의 의견만 말씀하시는 건지..."
"내가 괜히 솔직하게 말하자고 했나 봐.
언니 상처 많이 받았지? 정말 미안해.."
"하......"
언니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는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무언가는 결심했는지, 나의 말에 뒤늦게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코코.
두 분 말씀에 속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솔직하게 말해보지 않았다면
아까처럼 계속 고민만 하고 답답했을 거야."
"언니.."
"그래서 말이야, 이렇게 된 김에
모두 털어놔보려고."
"응? 뭐를?"
"그동안 있었던 일, 학교에서 따돌림당했던 거까지 전부 다 말해보려고.
내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게 좀 많거든.
외로웠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두 분이 저러시는 것도 아직 내 진심을 몰라서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코코 너 덕분에 용기도 얻었겠다,
더 확실하게 내 마음을 얘기해 보려고. 어떻게 생각해, 코코?"
"언니..."
고작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언니가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옆에 있어주겠다는 그 몇 마디가
그녀에게 이렇게 큰 용기로 작용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무지 기뻤다.
이를 통해 오늘 그녀가 한 발짝 성장한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있는 그녀의 앞으로 가서 언니의 양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언니, 정말 기특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언니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으시는 부모님께 원망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더 꺼내보려고 한다는 게!"
"다 네 덕분인걸.
끝까지 내 옆에 있어줄 거지?"
"그럼, 물론이지! 나는 언제나 언니 옆에 찰싹! 붙어있을 거야."
"코코도 참..ㅎㅎ"
언니는 부모님과 다툰 그날 바로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정리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더군다나 기말고사가 당장 다음 주이기 때문에, 언니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한 동안은 집 안 분위기가 매우 썰렁했다.
언니는 부모님께 드릴 말씀을 정리할 때까지 최대한 말을 아꼈고,
기말고사 공부하는 데만 집중했다.
아빠는 언니에게 미안했는지, 방으로 몇 번 왔었지만, 언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엄마는 언니랑 밥을 먹을 때조차도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았다.
이후 일주일 뒤, 초등학교의 마지막 시험이 끝이 나고,
사립중학교의 입학시험이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언니는, 그동안 계속해왔던 고민들 때문에 컨디션 관리를 잘 못했던 탓인지,
지난 중간고사 때보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반 1등은 언니였다.
언니는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코코, 언니 이제 두 분께 말씀드릴 준비 됐어. 이제 말하러 가자!"
"오! 이제 준비된 거야?"
"응! 어서 가서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전하고, 부모님이랑 화해해야지!
내 옆에 있어줄 거지?"
"그럼! 어서 가자!"
"응!"
그날 저녁, 언니와 나는 방 밖으로 나가서 엄마와 아빠를 거실로 오시게 했다.
그들이 거실에 와서 식탁에 앉자, 언니도 나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들과 식탁에 마주 않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언니는 그동안의 일들을 나에게 말해주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달랐던 게 있다면, 지난번에 말했던 거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외로움과 학교에서 따돌림당한 일, 그리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서
계속 함께하고 싶은 이유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고, 언니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걱정 끼쳐드리기 싫다는 이유로 충분히 속상했을 감정도 꾹 참아오고,
폭발하듯이 말했을 법도 한데 저렇게 차분하게 이야기하다니..
게다가 그 상태에서 공부까지 같이 했다니, 언니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언니의 양손을 꼭 잡아주었다. 언니는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담아서.
시간이 지나 언니가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얘기가 많이 길었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들어주셨다.
중간에 들으면서 그들이 충격을 받거나 당황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언니의 진심을 말하고 나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엄마, 아빠. 저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그 마음, 충분히 알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 6학년이고, 이제 겨우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는데,
그 애들이랑 벌써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저 다른 학교 가서도 충분히 그림이랑 공부 열심히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저를 믿어주시고, 친구들이랑 같은 학교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네?"
"언니..."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언니에게 다가와
꼭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 딸..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어..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엄마랑 아빠한테 말을 안 했어?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잖아..."
그녀의 양쪽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순간, 나는 언니의 진심이 통했구나 생각했다.
언니도 나의 손을 놓고 엄마를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랑 아빠한테 걱정 끼치기 싫었거든요.
전 항상 좋은 딸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지금까지 언제나 좋은 딸이었는 걸?"
"엄마..."
그 뒤, 아빠도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와 언니를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 딸 다 컸네. 이렇게 자기 속마음을 똑 부러지게 잘 이야기할 줄도 알고.
엄마랑 아빠가 일하느라 바빠서 우리 딸 외롭게 하고, 마음도 몰랐네.
어릴 때는 가끔 주말마다 놀아준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빠가 잘못생각하고 있었어. 예나야, 정말 미안해.."
아빠의 양쪽 눈에도 눈물이 조금 맺혀있었다.
그도 언니의 진심을 알고 나서 많이 미안해졌나 보다.
세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나도 그들과 같이 꼭 껴안고 울고 싶었다.
내 눈에도 눈물이 조금 맺혔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감정이 조금 정리된 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나야, 엄마랑 아빠가 그동안 우리 예나 마음 몰라줘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계속 사립 중학교에 가라고 강요한 것도 정말 미안해.
엄마가 우리 예나를 더 믿어줬어야 했는데..
우리 예나 잘되길 바라서 그런 거였는데.. 그건 엄마의 이기적인 생각이었어.
예나야, 친구들이랑 같은 중학교에 가는 거, 허락할게."
"엄마..! 정말요?"
"응. 대신 조건이 있어."
"어떤 조건이요?"
"학교 따돌림 같이 예나가 크게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랑 아빠한테 제일 먼저 말하기!
이건 할 수 있지, 우리 딸?"
"네..! 그럼요! 그 조건 꼭 지킬게요!
엄마, 감사합니다!"
아빠도 언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예나야, 아빠도 약속 하나만 할게."
"네? 무슨 약속이요?"
"앞으로, 엄마랑 아빠가 우리 예나 외롭게 하지 않을게.
어렸을 때처럼, 주말에 우리 가족 다 같이 소풍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고 하자!
우리 예나에게 더 신경 쓰도록 노력할게.
그동안 우리 예나 외롭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우와, 정말요?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그래!"
그렇게 예나 언니는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한 덕분에,
부모님과 화해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 같은 중학교에 가는 것도 허락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언니와 부모님의 사이는 더 가까워지고 단단해졌을 것이다.
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언니의 행복한 모습만 계속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 나의 한쪽 발의 실밥이 조금씩 뜯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