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날이 되다
<지난 이야기>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언니가 그려준 그림을 언니와 동생들이 보는 앞에서 박박 찢어서 바닥에 내 팽개쳤다.
그리고 옷장으로 가려고 하는 순간,
언니가 내 팔을 잡았다.
"코코!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걸 왜 찢었어?
내가 너를 위해 그린 소중한 그림인데.."
"이제 이건 쓸모가 없어. 언니는 나보다 동생들을 더 좋아하잖아. 나 말고 쟤네들 그림 그려서 붙여."
"코코 언니,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언니, 왜 그래?"
"내가 지금 화 안 나게 생겼냐. 이게 다 너네 때문이야!"
"코코! 어디 가!"
"흥, 신경 쓰지 마!
나 이제부터 옷장에서 안 나올 거니까,
언니랑 너네끼리 잘 먹고 잘 살아!"
"코코.."
"언니.."
"코코 언니.."
그 후로 나는 옷장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옷장에 들어가자마자, 언니랑 동생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나는 열어주지 않았다.
"코코! 문 좀 열어봐! 우리 얘기 좀 하자!"
"코코 언니! 문 좀 열어봐! 우리가 진짜 사정이 있어서 그래! 언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언니, 우리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문 좀 열어봐, 응?"
"우린 너를 왕따 시키려고 그런 게 아니야!
정말이야! 우릴 믿어줘, 코코!"
"흥. 내가 나갈까 보냐.
진심으로 사과할 때까지 절대 안 나가."
나는 옷장에 틀어박히자마자
서운함과 속상함에 펑펑 울었다.
"흐윽... 흑.. 흑흑.."
"예나 언니도, 루루도, 나나도 전부 다 미워!
내가 언니랑 자기들을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그러면서 문뜩 나는 포그니 왕국에 있을 때를 떠올렸다.
루루는 우리 가족 중에서 외모가 가장 예뻐서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예쁘다며 고백을 하는 남자 인형들도 많이 있었다.
또한 나나는 공부를 잘해서 포그니 왕국 인형 발명품 경진 대회에서 우승해서 상도 받아왔었다.
엄마는 이들을 보고 우리 집안의 자랑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뾰족한 소리를 하셨다.
"코코, 너도 동생들 좀 보고 배워라! 네가 예쁘기를 하니, 공부를 잘하기를 하니.
얼굴도 그저 평범한 데다, 공부머리도 그저 그렇지? 하아.. 나중에 커서 뭐가 될는지 쯧쯧.."
"여보, 또 애들이랑 비교하는 거야? 코코가 뭐가 어때서? 내 눈엔 우리 코코가 제일 예뻐 보이는데 말이야. 귀엽기도 하고. 또, 얼마나 듬직해?
동생들도 잘 돌봐주고."
"그래..ㅎㅎ 동생들 잘 돌봐주고 듬직한 게 어디야.. 그것만 잘하면 됐지 뭐.
나중에 우리 루루 커서 포그니 왕국의 스타라도 되면 매니저 하라고 하지 뭐."
"여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코코, 엄마 말 듣지 마. 무시해 버려."
"으응..."
하.. 갑자기 이게 왜 생각나는 걸까?
나는 동생들이 부러웠다.
엄마, 아빠에게 이쁨도, 사랑도 듬뿍 받고
각자 잘난 게 하나씩은 있어서 말이다.
그리고 동생들이다 보니 아무리 사고를 치고 징징거려도 혼내지도 않았다.
그 대신 내가 다 혼났었지.
"이게 뭐야, 집 안이 난장판이 됐잖아?
코코! 너 동생들 간수 제대로 안 하니?
잘하는 게 동생 돌보는 거밖에 없는 애가
이것도 못하게 된 거야?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당장 치워!"
"알았어.."
나는 그럴 때마다 사고 치고 다니는 말썽꾸러기 동생들이 미웠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루루, 나나는 내 귀여운 동생들이니까.
예전부터 엄마, 아빠는 일 때문에 많이 바빠서
어릴 때부터 내가 그들을 계속 돌봐왔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동생들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온 탓에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날이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언니, 언니 하며 밝고 귀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기도 했다.
근데 인간계에서 다시 만나고 나니까 언제 저렇게 컸는지... 루루는 더 예뻐지고, 코코는 더 똑똑해졌다.
이번에는 인간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가 떠올랐다.
내가 예나 언니 집에 처음 온 날, 당시 언니는 8살이었다.
나랑 동갑이었는데, 언니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동생들을 보며,
나도 동생이 돼서 사랑을 듬뿍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언니의 부탁을 들어줬었다.
언니는 언니가 되고 나서, 나를 진짜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언니는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부어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랑을 언니에게 온전히 받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이 생각은 또 왜 나는 거지..
나는 그들에게 화가 난 상태인데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나는 그렇게 그들을 사랑하고 아껴줬는데..
그들은 어떻게 저렇게 나를 소외시키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걸까?
한바탕 옛날 생각을 하고 나니 화가 났던 감정이 풀리는 것 같다가도 다시 복받쳐 올라왔다.
다시 눈물이 나자, 나는 다시 펑펑 울었다.
"언니랑 동생들이 정말 좋지만... 사랑하지만...
지금은 너무 미워..."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누군가 옷장 문을 두드렸는데, 언니였다.
"코코, 아직도 화났어? 며칠 째 나오질 않네.
언니가 정말 미안해.."
언니 옆에 동생들도 같이 있었나 보다.
"코코 언니, 우리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언니, 지금 나오면 우리가 꼭 안아줄게."
"뭔 헛소리야. 너네가 뭘 안아주냐, 안아주기는.
언니랑 너네들이 사과해도 나 절대로 안 나갈 거야.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도 아니잖아."
"코코, 우리 진심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코코를 왕따 시킬 생각이 하나도 없어.
우리 모두 코코를 좋아한다고.
그때 너에게 비밀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어.
지금, 그 이유를 말해주려고 해.
이제는 준비가 되었거든."
"예나 언니 말이 맞아, 코코 언니.
우리가 왜 언니보고 계속 비밀이라고 했는지 이제 말해줄게!"
"너무 늦게 말해 주게 되어서 미안해!
그러니까, 얼른 나와줘.."
".........."
"옷장 속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언니, 우리 안 보고 싶어?"
"얼른 나와봐 제발..
우리가 언니를 위해서 준비한 게 있단 말이야!"
"코코!"
"언니!"
"코코 언니!"
"나를 위해서... 준비한 게 있다고..?"
나를 소외시키고 낄낄거리던 그들이 나를 위해서 뭘 준비했다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나를 위해서 준비했다고 하니까 무엇을 준비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문을 살짝 열어서 대충 무엇인지만 보고 닫기로 했다.
문을 살짝 여는 순간 동생들이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
"히히, 언니 문 열 줄 알았지롱!"
"이... 이건..."
"짜잔! 서프라이즈~!
코코 언니, 생일 축하해!!"
활짝 열린 옷장 앞에는
예쁜 케이크를 부는 내 모습을 그린 스케치북을 든 예나언니와
양쪽에는 '언니, 생일 축하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든 루루, 그리고 '그리고 사랑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든 나나가 서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일..?"
언니가 옷장에서 나를 꺼내 꼭 끌어안아주며 말했다.
"그래, 생일. 오늘 코코 네 생일이잖아!"
양옆에 있던 동생들도 나에게 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언니 생일!"
"설마 자기 생일도 잊어버린 거야?"
"응..."
포그니 왕국에 있을 때 내 생일은 잊혀졌던 적이 많았다.
처음에는 나도 가족들에게 생일을 축하받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늘 일 때문에 바쁘셨고,
매년마다 늘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며 축하파티 없이
선물만 사주고 넘어갔던 적이 많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선물조차도 사주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해가 많아지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내 생일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반면 동생들은, 매번 생일 때마다 부모님께 축하를 받았고, 나도 최선을 다해서 축하해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동생들의 생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동생들이 나의 생일을 기억해주고 있었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나는 오늘이 내 생일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렇게 따뜻하게 축하받는 생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꼭 안아주면서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언니와,
스케치북을 들며 환하게 웃는 동생들을 보며
나는 어쩔 줄 몰라 다시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울자, 나나가 말했다.
"언니, 왜 울어? 우리 서프라이즈에 감동받았어?"
"흐.. 흐윽... 흑.. 이렇게 맞는 생일이 처음이라....."
그러자 루루가 말했다.
"이게 우리가 언니에게 비밀이라고 했던 이유야.
그동안 언니는 우리 생일을 최선을 다해서
축하해 줬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해서. 언니한테 많이 미안했거든.
사실 어릴 때 우리도 언니 생일을 잘 몰랐는데,
언니가 인간계에 가고 나서 아빠가 언니 생일을 알려주신 걸 나나가 공책에 적어놓은 걸 발견했어.
그래서 언젠가 언니가 포그니 왕국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땐 우리가 언니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우리가 인간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거야!
얼마나 행복하고 좋았는지 몰라. 신께 감사하다고 했다니까?
근데 우리가 오고 언니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언니 생일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기 위해서 예나 언니랑 열심히 준비한 거야.
그림도 그리고, 선물 만들기도 해야 하는데,
나랑 나나는 그런 걸 잘 못해서
예나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거고.
언니는 엄청 궁금해하는데, 서프라이즈는 들키면 안 되니까,
말을 못 했던 거고.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언니, 우리를 돌봐줘서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소외되는 기분 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 언니?"
"너희들..."
"나도, 우리 코코 많이 많이 사랑해.
언니 마음도 알지, 코코?"
"언니..."
언니는 나를 들고 책상으로 향했다.
거기엔 내 모습을 본떠서 만든 귀여운 종이인형과 편지,
그리고 내 이름이 적힌 선물 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이.. 이건..?"
언니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생일 선물이야. 한번 열어봐!"
나는 선물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나와 언니가 공원으로 소풍을 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이 그림은..."
"어때, 잘 그렸지?
코코가 저번에 그림 찢어버려서, 다시 예쁘게 그려봤어."
"아.. 그건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이제 이걸로 붙일 거야."
나나가 말했다.
"언니, 그 그림 잘 보면 나랑 루루도 있다?"
"우리를 빼놓을 순 없지!"
"너희들.."
"편지는 나중에 읽어, 코코."
"응!"
"그럼 이제, 신나게 놀아볼까?"
"그래, 좋아!!"
"오늘 코코 네 생일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래!"
그들의 비밀 얘기가 내 서프라이즈 얘기였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 생일을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정성스러운 선물까지..
나는 내 동생들이 정말 기특하고 고마웠다.
오늘은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생일날이 되었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두 번째 깨닫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진심”이다. 내가 예나 언니와 동생들을 진심으로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마음 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비록, 숨기는 게 서툴러서 나를 소외감이 들게 만들 정도로 몰라도 된다고만 둘러댄 것 같지만, 그만큼 나에게 더 크고 좋은 선물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덕분에 두 번째 깨닫음도 얻게 되었으니, 이번 일은 쿨하게 용서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