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감이 들다
<지난 이야기>
루루, 나나가 예나 언니의 집에서
지내게 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들과 함께 생활한 이후로는
예상대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언니가 학교에 가고 집에 없을 때,
우리는 방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고,
언니 스케치북으로 그림도 그리고,
보드게임이랑 숨바꼭질도 했다.
다만, 집에 언니 가족들이 있을 때는
평범한 인형인 척하거나, 들키지 않게 조용히 놀았고,
아무도 없을 때는 술래잡기를 하며 집 안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가 너무 뛰어다녀서 집 안이 조금 어질러졌는데, 먼저 집에 온 예나 언니가 어질러진 집 안을 보고 깜짝 놀라 급하게 정리했었다.
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집 안을 어질러 놓으면 어떡하냐며, 자신보다 가족들이 먼저 와서 봤으면 어떻게 될 뻔했냐며 엄청 혼냈다.
그 벌로 이후에는 가족들이 없어도 방 안에만 꼼짝없이 있게 되었다.
방 이외의 다른 곳에 들어가는 걸 금지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몰래 집 안에서 뛰어노는 걸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웠다.
하지만, 동생들과 함께 우당탕탕 지내고 있는 덕분에, 예나 언니가 없을 때 혼자가 아니라서 더 이상은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동생들이 있어도 점점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나는 첫 번째로 침대에서 눈을 떴다.
주말엔 언니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라서
나는 언니랑 동생들이랑 재미있게 놀려고 했다.
아침부터 놀 생각에 잔뜩 신난 나는
자고 있는 언니랑 동생들을 깨웠다.
"언니, 일어나! 나랑 놀자!"
"으음.. 코코.. 나 피곤해...
어제 공부하느라 늦게 잤거든..."
"응? 언니 바로 잔 거 아니었어?"
"으응.. 곧 있으면 시험이라서....
오늘은 주말이니까 좀 더 잘래..."
"알겠어.. 어쩔 수 없지.."
"루루! 나나! 일어나! 언니랑 놀자!"
"으응..? 언니 나 피곤해.."
"아니, 너네들도 어제 늦게 잤어?"
"으응.. 어제 나나랑 재밌는 얘기 하느라.."
"그걸 나만 빼고 했다고? 치사하게..
그래서 더 잔다고?"
"응.. 그러니까 우리 깨우지 마.."
"치.. 아침 일찍부터 다 같이 놀 생각에 신났었는데.."
나는 몰랐다. 이게 외로움의 시작이 될 줄은.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예나 언니는
오늘도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집에 돌아오면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느라
늦게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랑 동생들이랑 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밤에 몰래 조용히 하던 대화도 당분간은 하지 않게 되었다.
루루와 나나는 나랑 항상 붙어있지만 어느 순간 둘이서만 이야기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같이 이야기하고 놀자고 해보았지만, 좀처럼 껴주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동 떨어져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점점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예나 언니는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동생들은 왜 그러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며칠 뒤, 예나 언니의 중간고사 날이 다가왔다. 언니가 제일 먼저 침대에서 일어났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언니는 기운이 쏙 빠진 채
터벅터벅 학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고, 언니는 가방을 챙긴 뒤
나와 자고 있는 동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얘들아, 언니 학교 다녀올게.
방에서 말썽 부리지 말고 잘 놀고 있어."
"응, 언니 학교 잘 다녀와! 시험 잘 보고!"
"응, 알겠어. 고마워 코코!
이따 집에 오면 재미있게 놀자!"
"그래!"
그 뒤 언니는 밖으로 나갔다. 거실에서 엄마와 언니가 대화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예나야! 오늘 중간고사지? 시험 잘 보고 와야 한다!"
"네.. 엄마.."
"아이고, 우리 딸 많이 피곤해 보이네? 공부 좀 많이 했어?"
"네.."
"그래~ 내년에 사립 중학교에 가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해!
네 사촌언니 유나 알지? 걔도 사립 중학교 갔잖아!
네 이모가 그러는데, 사립 중학교가 워낙 공부 잘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라 중간고사 성적부터 좋아야 한대, 글쎄!
근데, 우리 예나는 워낙 똑똑하니까, 유나처럼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 네.....
엄마 저 학교 다녀올게요."
"그래, 우리 딸 잘 다녀와! 시험 잘 보고 와!"
"언니.."
성적을 강요하는 듯한 엄마의 잔소리에 언니의 목소리는 힘이 더 빠진 것 같았다.
이를 들은 나는 마음이 아파졌다.
시간이 지나고, 시험이 끝난 언니가
밝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언니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두 팔 벌려 반겨주었다.
"얘들아, 언니 왔어!"
"언니 어서 와! 시험 잘 봤어?"
"응! 언니 국어랑 수학시험 100점 맞았다?"
"우와, 진짜?! 언니 정말 대단하다!! 고생 많았어!"
"히히, 고마워 얘들아!"
언니는 바닥을 콩콩 뛰며 동생들을
양손으로 번쩍 들었고,
나는 그런 언니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는 노는 일만 남았겠구나라고 생각한 나는
잔뜩 기대한 목소리로 언니에게 말했다.
"그럼 언니, 이제 우리랑 놀 수 있는 거야?"
"그럼! 오늘 그동안 못 놀은 만큼, 재밌게 놀자!!"
"오예!! 놀자!!"
언니의 말에 나랑 동생들은 신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방에서 그림도 그리고, 술래잡기도 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즐겁기만 할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넷이 다 같이 놀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언니와 동생들끼리만 놀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놀자고 하면, 언니는 피곤하다며 다음에 놀자고 했고, 동생들은 우리끼리 하던 얘기가 아직 안 끝났다며 나 혼자 놀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자기들끼리는 사이좋게
놀고 있는 판이라니..
나는 그들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지금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언니가 학교를 가고 집에 없는 시간,
나와 동생들만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동생들은 인간계에 온 지 얼마 안 된 며칠 동안 나에게 궁금한 걸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느라 바빠서
나는 뒷전이고 그들의 대화에도, 놀이에도 잘 껴주지 않게 되었다.
너무 서운한 나는 동생들에게
나한테 왜 그러냐며 화를 내보았지만,
그들은 이건 우리들만의 비밀이 있어서 그런 거라며 나한테는 미안하지만,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서운해진 나는, 예나 언니에게 다 이를 생각으로 언니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와, 나는 언니에게 달려가서
동생들이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논다며 속상함을 털어놓았지만,
언니는 비밀 이야기를 할 때 끼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또한 어린 동생들이니
언니인 내가 참고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 옛날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었는데..)
생각하지 못한 언니의 대답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녀에게도 엄청난 서운함이 몰려왔다.
또 시간이 지나, 주말이 돌아왔다.
언니와 동생들은 셋이 침대에 모여 둥그렇게 앉아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언니가 그림을 그리고, 동생들은 그걸 보고 잘 그렸다며 칭찬했고, 언니가 쑥스러워하자,
그들은 쑥스러워하지 말라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그들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또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며, 나도 껴달라고 했지만
동생들은 이건 우리끼리 해야 하는 거라며, 껴주는 건 안된다고 했다.
이제 동생들은 기대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언니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런데 언니도 이건 동생들의 말이 맞다며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음에 껴주겠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비밀, 비밀 거리는데
서운한 걸 넘어 너무 짜증이 났다.
동생들의 경우, 이것들이 언니를 만만하게 보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그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에게 잘해줬던 예나 언니도, 그들이 오고 나서는 변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들의 행동에 감정을 참아왔던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침대에서 웃고 있는 언니와 동생들을 향해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다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언니와 동생들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언니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코코!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어떡해!
밖에 누가 들을라!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맞아, 맞아. 언니 왜 그러는 거야?"
언니의 말에, 동생들은 맞장구를 쳤다.
그들의 말은 뒤로 하고 내 말을 이어갔다.
"지금 집에 가족들 안 계셔서 상관없잖아."
"뭐라고? 너 소리 집 밖에도 들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컸단 말이야! 게다가 우리도 깜짝 놀랐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 이제 더 이상 못 참겠어.
다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나 왕따 시키는 거야, 뭐야?"
"코코, 왕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르는 척하지 마. 지금 언니랑 너네들,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만 대화 나누면서 놀고 있잖아!
나는 껴주지도 않고 말이야! 그게 왕따지 뭐야!"
"언니, 그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나나 말이 맞아. 정말 우리끼리 해내야 하는 비밀스러운 일이 있어서 그래!"
"또 그 소리! 그놈의 비밀, 비밀! 그게 대체 뭔데?
무슨 엄청 대단한 비밀 이야기가 있길래 대놓고
나만 빼놓는 건데?"
껴달라고 해도 껴주지도 않고, 내가 지금 얼마나 서운하고 화가 나는지 알아?
나 지금 너무 답답하다고!"
"코코, 정말 미안해. 루루, 나나가 정말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들어주느라.. 근데 꼭 우리끼리 알아야 하는 거라고 해서 얘기를 못하는 거야.
그리고 저번에 말했잖아, 비밀 이야기에 함부로 끼는 거는 예의가 아니라고.
상대방이 비밀이라고 하는 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동생들이 언니 말에 맞장구쳤다.
"맞아, 언니. 정말 미안해. 하지만 정말 일급비밀이라서 그래.
원래는 우리끼리의 비밀이었는데, 예나 언니의 도움이 필요해져서 도와달라고 했더니 언니가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해서 언니도 우리 얘기에 끼게 된 거야."
"그럼, 내 도움은 필요 없어?"
"응.. 이건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서.."
"루루 말이 맞아 언니. 서운했다면 정말 미안해."
"............."
미안하다고는 하는데, 계속 비밀이라고 하면서
이야기에 끝까지 안 껴주는 그들의 행동에 나는 점점 답답해졌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코코, 우리는 너를 왕따 시키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럴 생각도 전혀 없고, 우리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데.
애들 말대로 비밀이니까 얘기하지 못하는 거야.
코코, 사실 너도 아직 나한테 말 못 한 비밀이 있잖아?
내가 물어봤는데, 네가 비밀이라고 했잖아.
그렇다는 건 네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 아니야?
지금 우리도 그런 비밀이 있는 거야..
네가 그동안 속상하고 서운했으면 미안해.
근데,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말해줄 준비가 되면, 너한테도 꼭 말해줄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코코?
언니의 이야기에 나는 조금 숙연해졌다.
언니 말이 맞다. 나는 내가 인간으로 변해서 언니를 도와줬다는 걸 언니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도 이건 비밀로 해야지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예나 언니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그때는 1대 1이었고, 지금은 3대 1이다.
지금은 나만 "혼자" 모른다. 게다가 나만 쏙 빼놓고 침대에서 웃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따돌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언니는 내가 언니니까 이해하라는 옛날에 우리 부모님이 했던 소리나 하고 있고,
동생들은 언니는 몰라도 돼, 우리끼리의 비밀이야, 그러니까 혼자 놀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다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기로 하고, 더 화를 냈다.
"몰라, 그게 알 게 뭐야!
언니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다들 정말 너무해!
나 그동안 많이 참아왔어. 그리고 정말 외로웠어.
다들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안 껴줘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언니가 없을 때 루루, 나나는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서 나랑 떨어진 곳에서 뭔가 하고 있고,
언니가 있을 때는 이렇게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스케치북으로 그림이나 그리면서 웃고 있고!
비밀얘기도 안 껴주는데, 그림 그린 거 보여달라고 하면 당연히 안 보여 줄 거잖아! 다들 많이 변했어!
특히 나한테 잘해줬던 예나 언니가 변한 건 루루, 나나 모두 다 너희 때문이야! 다들 정말 미워!"
나는 모두에게 그동안 느꼈던 서운함을 큰 소리로 화내면서 이야기한 뒤, 벽에 붙여져 있던 그림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 그림은 내가 언니 집에 처음 온 날, 내가 언니의 동생이 된 기념이라며 나를 예쁘게 그려준 그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저 그림도 있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림 속 밝게 웃고 있는 나의 모습에 잠시 멈칫했지만, 너무 화가 나서 나는 책상에 올라가서 벽에 있는 그림을 떼서 그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벅벅 찢어버렸다.
"코코!"
"언니!"
"코코 언니!"
그런 뒤 나는 옷장으로 틀어박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