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막론하고 소위 '학술적인' 글을 쓸 때는 1인칭 주격 대명사로 "나" 대신 "필자"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 표현이 얼마간 적절치 않다고 본다. 글을 쓰고 머지않아 똥오줌을 눌 당신과 '글을 쓰는 이'인 '필자'로서의 당신은 구분되는가? 당신은 무엇이 두려워 당신으로서 독자와 직접 만나는 것을 꺼리는가?전근대 한국의 군주들은 때때로 스스로를 과인(寡人; 부족한 사람)이라 칭했지만 실상 이 겸손은 레토릭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라는 말의 자아를 가리키는 속성을 모두 빼놓고 "필자"라는 말로 글을 쓰는 나의 '부족한 모습'만 가리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