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2025)를 보고 한국 사회를 생각한다

by 김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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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중증외상센터》를 보고, 한국에 대해 생각했다. 《더 글로리》 《범죄도시》 《비질란테》 등 근래 한국에서 흥행한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모두 현실의 제도적 절차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거대한 악을, 선량하고 유능한 '히어로'가 초법적인 무력이나 간계를 통해 타도해 내는 서사구조를 갖는 데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이 큰 흐름 위에 올라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사 문동은과 경찰 마석도와 경찰대생 김지용과 마찬가지로, 의사 백강혁은 '히어로' 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기성의 제도적 질서를 준수하지 않음으로써 겪게 되는 반발과 불이익을 뒷감당하게끔 하는 서사적 장치라는 것이, 결국 그가 기존에 벌어들인 막대한 부와 그의 '빽'이 되어주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는 절차와 제도를 초월한 히어로가 아니라, 그저 기존의 위계질서에서 더 강한 힘을 쥐고 절차와 제도를 개무시한 채 환자를 치료하는 미치광이일 뿐이다. 그를 제도 내에서 규제할 수 없는 것은 1) 그가 무조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가정과 2) 그가 등에 업은 기존의 힘들에 기대고 있는 덕분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독자들이 백강혁을 '참의사'이자 영웅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두 가지 빈곤에서 기인한다. 제도와 절차라는 것이 대관절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해력의 빈곤과, 기존의 정치질서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떠올리지 못하는 상상력의 빈곤이 그것이다. 가령 영화 《다크 나이트》(2008)에서 경찰에게 쫓기는 배트맨이 미국 대통령을 '빽' 삼아서 그 자신의 '히어로' 활동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빈곤한 주제의식인가? 한국 사회는, 작가는, 독자는, 그리고 나는, 기존의 정치적 힘에 편승하거나 기성 질서를 무분별하게 파괴하지 않고도, 기존의 제도적 결함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보다 섬세하게 사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백강혁의 '사이다' 발언들과 과감한 행동들은 독자로 하여금 쾌감을 준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기존의 질서를 박살내고 다니는 '사이다'에 심취하다보면, 돌아버리기 쉽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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