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중국 현대문학
이제 보니 조카 며느리가 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먼. 고모가 말했어요. 다시 한 번 말해 주지. 그런 약은 정말 없어! 있다고 해도 줄 수 없고! 공산당원이자 정치협상 위원회 상무위원이며, 계획생육 지도분과 부과장인 내가 어떻게 먼저 법을 어기겠어? 나는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지만 당원이 지녀야 할 마음만은 일편단심이야. 나면서부터 당의 사람이자 죽어서는 당의 귀신이 될 거니까. 당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출격하리라! 샤오파오! 네 마누라가 정말 좀 모자라나 보다, 도무지 콩인지 메주인지 구분을 못 하는구먼! 하지만 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알고 절대 허튼짓을 해선 안돼! 지금 사람들이 내게 붙여 준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란 별명 말이야, 이 고모는 이 별명을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해! 계획생육 정책에 따라 태어나는 아이라면 고모는 향 피우고 목욕재계하고 받겠어. 하지만 정책을 위반한 임신이라면……. 고모가 허공을 향해 손을 내리치며 말을 맺었습니다. 절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대게 책을 읽을 때는 눈으로 읽게 되는데 그러다가도 가끔은 소리 내서 책을 읽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성우처럼 목소리가 좋지도 않고 아나운서처럼 글을 잘 읽어 내려가는 것도 아니라 썩 듣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조용한 방 안에서 책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우선 방안을 가득 메운 내 목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고, 한 문장을 매끄럽게 읽는 것에 성공만 한다면 누가 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깨가 으쓱해진다.
문제는 대화체가 없는 비소설류의 책들은 읽기 편한데 반면에 소설류의 책들은 그렇지가 못 하다. 대화가 포함되어 있어서다. 아무리 혼자 소리 내서 책을 읽는다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살려서 읽는 것까지는 하기 힘들다. 이번에 읽게 된 모옌의 <개구리>도 소설인지라 그냥 눈으로 읽어 내려가야 하나 했다.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책의 서술 형식을 기존 소설의 서술 형식과는 좀 다르게 서간체를 택했고 그 덕분에 본문 속에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서간의 형식을 하고 있어 소리 내어 읽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내 수집 책들 중 첫 근현대 중국 소설인 모옌의 <개구리>는 500여 쪽이 좀 넘는 얇은 편의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서간체 형식을 택하고 있어서 그런지 크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무엇보다도 작가가 주제를 통해 독자에게 본인의 의도한 바를 참 자연스럽게 풀어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중국의 ‘계획생육’을 다루고 있다. 나는 중국이 한 가정에 한 자녀만 가질 수 있는 정책이 ‘산아제한’ 정책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계획생육’이라는 것에 놀랐다. 뭐 결국 같은 결과를 가져오겠지만 어쨌든 출산을 제한한다는 의미보다는 낳고 기르는 것을 계획적으로 한다는 것이 좀 더 포괄적으로 느껴진다.
소설은 계획생육이라는 중국 정부의 국가 시책이 한 마을, 한 가정,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펄벅의 <대지>나 박경리의 <토지>가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극 중 자아를 통해 그 주변의 사람,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은 이후 한동안 일본 전후 문학 작품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때 읽었던 소설들이 다른 주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개구리>는 나의 첫 중국 현대문학인데 꽤나 인상적이다. 그리고 과연 중국의 현대 작가들은 소설에서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내가 작가를 위주로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옌의 작품을 더 읽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 현대문학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다만 <개구리>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점이라 한다면 ‘계획생육’을 다루는 만큼 소설 속에서는 우리가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많지만 그 점에 대해 그다지 부정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계획생육’은 현재 진행의 중국 정부의 시책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지만 굳이 아쉬운 점을 뽑자면 책을 읽은 현재에도 그 부분이 조금은 찝찝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