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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Mar 27. 2024

넷플릭스 <삼체> 굉장하다.

(경고한다. 스포일러 탑재했다. 읽지마라)

넷플릭스의 드라마 <삼체>. 1편을 보자마자 나는 재빨리 TV를 껐다. 그리고 혼자 다짐했다. “아껴서 볼 거야. 이제부터 천천히 아주 조금씩 아껴 볼 거야.”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나흘 만에 8부작을 다 보고 말았다. 마지막 7부와 8부를 아침부터 내리 본 날은 저녁을 먹고 난 뒤에도 여전히 드라마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삼체에 대해 뒤적이고 있었다. 처음 드라마를 보고 흥분했을 때 본 어느 기사에 <쿼런틴>을 <삼체>와 더불어 이 시대 가장 뛰어난 SF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 인터넷 서점을 뒤졌고 내가 이미 <쿼런틴>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니, 그럼 진작에 사 놓고 안 읽어본 거야?” 하고 한참 동안 책을 뒤적였다. 그제야 소설 <삼체>를 보고 곧바로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 머릿속에는 <삼체>만 남고 <쿼런틴>은 없었다. <쿼런틴>을 간단히 잊을 만큼 <삼체>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으로 아버지를 잃은 천체물리학자 예원제는 온갖 배신을 당한 끝에 어느 군사시설에 유폐된다. 그곳은 외계문명과 통신을 시도하는 비밀 군사시설이었다. 소련과 미국이 우주개발에 뛰어들던 시절 중국은 외계문명과 첫 번째로 통신을 한 국가가 되고자 했다. 예원제가 간 비밀 군사기지는 그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느 날 예원제는 정말 외계인의 신호를 수신하고 태양을 증폭기로 이용해 통신을 시도한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녀는 외계인의 답신을 받는다.

“너희에게 경고한다. 회신하지 말라. 회신하면 우리가 갈 것이다.”

그러자 그녀가 답신을 보낸다.

“와라, 우리 문명은 이미 자구력을 잃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세계의 모든 입자가속기 연구소가 엉망이 된다. 실험 결과가 엉터리로 나오는 것이다. 과학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전대미문의 상황.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하나둘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노섬유를 연구하는 과학자 오기의 눈에 카운트다운이 보이기 시작한다!     


4편에서 드러나는 이 사건의 정체는 바로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수십 년 전 예원제의 답신을 받았던 바로 그 외계인이었다. 삼체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태양이 세 개 있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때문에 들은 지구를 새로운 정착지로 택했다. 그리고 무서운 기술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전 인류에게 알린다.

“우리는 지구에서 살기 위해 가고 있다. 우리는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너희들은 벌레다.”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문명을 가진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 인류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어떤 이는 자포자기해 죽음을 택하고, 어떤 이는 두려움에 삶을 방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외계인을 숭배하고 기꺼이 따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4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외계인들이 지구에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400년이 남아 있다. 어쩌면 그사이 인류는 어마어마한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계문명의 기술을 따라잡아 맞서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외계인들이 제일 먼저 한 조치는 지구의 과학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외계인들은 지자라는 감시 장치를 지구에 미리 보내놓았다. 그래서 최첨단 물리 실험을 하는 입자가속기의 결과를 믿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럼 어떤 결과가 생기게 될까? 지난 수백 년간 일궈왔던 과학과 문명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다. 더 이상 문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다. 이 뿐만 아니다. 삼체인들은 이 지자를 통해 전 지구와 전 인류를 감시하고 있었다. 지구인의 말과 행동이 모두 감시 당하는 이 상태에서 도대체 어떻게 싸워 이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껏 상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삼체>의 설정과 이야기는 매회 충격적이다. 소설에는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삼체인들이 자신들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지자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삼체인들은 우선 자신들의 행성을 뒤덮는 크기의 4차원 공간을 만들고 칩을 만들 듯 그곳에 필요한 모든 장치를 심는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2차원의 광자로 만들어서 하나는 지구로 보내고 하나는 삼체에 남겨놓는다. 두 개의 지자는 양자 얽힘으로 엮여있어서 4광년 떨어진 지구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조정할 수 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었다. 다이슨 구(球)라는 개념이며 카르다쇼프 척도 같은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은 있지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런 행성 규모의 거대 구조물을 만드는 장면을 읽고는 정말 제대로 실감했던 것 같다.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도 장대하고 직관적인 장면으로 연출되어 나온다.      


소설 <삼체>와 넷플릭스의 드라마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상당 부분 다르다. 소설은 카운트다운 숫자를 보기 시작한 주인공에게 형사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류는 이미 삼체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국제적인 기구도 만들어 놓은 상태다. 처음 소설을 보고 너무나 흥분한 나는 중국에서 만든 <삼체> 드라마를 찾아봤었다. 하지만 1편을 보고는 그대로 손을 떼고 말았다. 소설에 따라 충실하게 진행되지만, 드라마를 보는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달랐다.

소설 1, 2, 3부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모두 다른 시대와 다른 배경의 사람들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옥스퍼드의 절친 5인방으로 이들 모두를 헤쳐 모아놨다. 나는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드라마가 소설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특별하게 멋진 선택이었다.

2화에서 옥스퍼드 5인방 중 하나인 윌이 불치병에 걸린다. 그는 역시 5인방 중 하나인 청을 짝사랑하고 있지만 한 번도 그 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한편 외계인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청은 외계인을 향해 탐사선을 보낼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기술의 한계로 인해 탐사선에 실을 수 있는 무게가 2킬로그램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이래서는 삼체 세계로 위성을 보낸다고 해도 정찰할 수가 없다. 그러자 그녀의 상관은 사람의 뇌를 적출 해 위성에 실어 보내려 한다. 그리고 그 뇌의 후보로 윌이 지목된다. 하지만 친구 윌을 차디찬 우주공간에 보낼 수는 없었다. 결사반대하는 청. 윌에게도 절대 허락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윌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도 윌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하지만 윌은 알고 있었다. 청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 일을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때문에 윌은 청의 염원을 기꺼이 돕기로 한다. 마침내 윌의 뇌가 위성에 실려 삼체 세계를 향해 발사된다. 하지만 청의 계획은 실패하고 위성은 우주공간의 미아가 되면서 첫 번째 시즌이 끝난다. 마침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그 둘을 갈라놓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차디차고 광활한 우주였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시즌 1의 몰입감이 이 정도이니, 핵융합 기술로 우주함대를 만든 인류가 면벽자를 선발해 검은 숲 작전을 펼치는 소설 2부나, 삼체인이 인류를 절멸하는 전쟁이 시작되고, 다른 한편 더 높은 차원의 존재들이 더욱 끔찍한 전쟁을 한다는 3부까지 펼쳐질 것을 상상하니 그 기대감에 가슴이 너무나 뛴다. 원제 <3 body problem>은 천체물리학에서 세 개의 항성이 함께 작용할 때 어떤 궤도 움직임을 보이는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제의 주체가 하나일 때는 해결 할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주체가 둘이 되고 셋이 되면 해법은 점점 어려워지는 법이다. <삼체>는 그것을 인간 사이의 내부 문제에서, 외계의 문명이 간섭하는 문제로 확대하고, 다시 두 우주 문명 간의 문제에 또 다른 문명이 개입하는 문제로 계속 확대한다.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설 <삼체>에 따르면 빛의 속도가 지금처럼 고정된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 누가 이런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정말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위화의 소설이나 영화 <패왕별희>에서도 문화대혁명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만일 지옥이 있다면 어쩌면 <문화대혁명>이나 <제주 4.3> 같은 모습일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 시대의 광기에 휩쓸려 끔찍한 희생을 치러야 하는 일은 배경이 중국이든 한국이든 언제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문화대혁명은 <삼체>라는 대서사시의 시작이자 끝이다. 문화대혁명의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은 예원제는 그녀의 사랑과 호의마저번번이 배신당하고 버림받는다. 벌목꾼이 되어 숲을 베어내는 강제 노역을 할 때 그녀는 광활한 숲이 모두 파괴되는 모습을 무기력하고 안타깝게 지켜본다. 그리고 그때 한 남자에게 책을 한 권 받는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적혀 있다.

“다시 한번 깨닫지만, 자연의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원제는 다시 한번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에게 고발당하고 유배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깨닫는다. 인류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파괴하리라는 것을. 자신이 배신당한 것과 같이 지구도 언젠가 인간에게 배신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 그녀에게 삼체인의 통신이 당도한다.

“회신하지 말라. 회신하면 우리가 갈 것이다.”

“와라, 우리 문명은 이미 자구력을 잃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이전 29화 좀 웃길 수도 있는데, 나는 하나도 안 웃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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