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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Mar 24. 2024

좀 웃길 수도 있는데, 나는 하나도 안 웃긴 이야기.

<1>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나는 주차하느라 따로 올라갔는데,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사람이 잡아줘서 서둘러 탔다.

"고맙습니다. 몇 층이야. 3층인가? (3층 누른다) 엇. 5층이네. (3층 지우고 5층 누른다) 아니. 5층은 별관이구나. 6층. 아 눌러져 있네. (같이 탄 젊은 남자가 날 이상하게 바라본다) 아, 5층. (5층 지운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남자가 이상하게 본 이유를 알았다. 생각을 모두 말로 떠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2>

이사 며칠 전이었다. 아내는 창고에 있던 여행 가방을 모두 베란다에 꺼내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에 속옷을 담고는 말했다.

"베란다에 있는 여행가방 좀 창고에 넣어줘."

왜? 나는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냥 베란다에 놔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이사 갈 때 다시 꺼낼 텐데. 왜 번거롭게 내놔라 넣어라 하는 거야.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내가 말했다.

"어차피 이사 갈건대?"

"뭐?"

"아니, 그러면 어차피 또 꺼내야 하잖아."

"무슨 말이야?"

"이사 가면 어차피 꺼내야 하는데 창고에 왜 넣냐고."

이제 아내의 얼굴에도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나도 입이 하마만큼 나왔다. 그러자 참다못한 딸이 결국 내게 소리쳤다.

"아빠 창고에 넣는 게 아니고, 마루로 가지고 나오라고. 아빠 왜 그래?"

"아!"

나는 재빨리 여행 가방을 가지고 들어왔다. 물은 이미 엎질러져 버렸다. 어째서 나는 가지고 나오라는 말을 왜 창고에 넣으라는 터무니없이 다른 말로 알아 들었을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설거지를 할 때에도 그랬다. 딸은 물병을 찾는데 나는 물 잔으로 알아듣고 괜히 요기! 요기 있잖아. 이 녀석아! 타박을 했다가 “아빠 왜 그래? 물 잔 아니라 물병 찾는다고!”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점점 내가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있다. 이렇게 지극히 주관적으로 상대의 의중을 판단한다면 아마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우기는 힘들 거다. 그나저나 혹시 누가 내게 고백을 했는데 “제가 뀐 방귀 아닌데요.” 라던지, “불교 믿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으면 어쩌나. 아휴 큰일이다.

  

<3>

그와 함께 변한 사소한 몇 가지.

손톱이 엄청 빨리 자란다. 세월이 빨리 가서 그렇다. 나이 들었다는 걸 알겠다.

슈퍼 여사장님이 내 인상이 참 좋다고 한다. 하마터면 손을 잡을 뻔했지만 이제 안다. 못생겨서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만만하단 뜻이란 걸.

용와대 앞을 지나다가 경찰에게 어디 가냐고 추궁을 당했다. 그걸 왜 묻냐고 따져야 하는데, 밥 먹으러 가는데요. 했다. 이제 겁 많은 쫄보가 됐다. 사람이 나이 들면 만만해지고 겁 많은 쫄보가 되나 보다. 벽에 똥칠하도록 살아야 할 텐데... 정말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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