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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May 15. 2024

지하철 다반사. 당신은 어쩌면 보도듣도 못한 이야기들.

지하철을 타면 종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볼 때가 있다. 유튜브를 빛내는 노래하고 춤추는 빌런이나, 단소 살인마 같은 종류가 아니다. 며칠 전에 내가 지하철에서 겪었던 역대급 일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보통 나의 지하철 다반사는 이런 거였다. 2호선을 타고 다니던 대학시절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탔다가  깨니 처음 탔던 그 역이었다. 그래서 "아, 내가 자는 동안 순환선이 한 바퀴 돌았나 보다."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깼는데 또 처음 탔던 역이다. 이번에는 잘 내려야지 하고 다시 잠들면 이번엔 역장이 깨운다. "손님 지하철 운행 끝났어요."  화들짝 깨 보면 사실 내가 지하철을 탄 게 아니라 플랫폼 벤치에서 자고 있었다는 류다. 수십 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가 정말 한 무더기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이렇다. 보통 나는 객차에 자리가 많이 있어도 대체로 서서 가는 편이다. 그런데 꼭 그럴 때 다른 데 다 두고 바로 내 옆에 와서 나란히 서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경험상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앉을 데도 많고, 객차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 뿐인데도 꼭 내 옆에 바짝 다. 정말이다. 겉으로 내색은 못하지만 그게 나는 정말 몸서리쳐진다. 왜 사람도 없는데 내 옆에 서는 거냐 도대체! 

이뿐만이 아니다. 종종 이런 경우도 있다. 아무런 예고나 전조 없이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거다. 기억나는 사람중에는 원치 않은 권고사직을 당하고 환송식을 했다며 울먹이아저씨도 있었고, 연기를 하다가 덜컥 아이가 생겨서 택배를 한다는 청년도 있었다. 그럴 땐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긴 한데, 정말 정말 내가 먼저 그분들에게 말을 건 게 아니다. 희한하지만 이렇게 그냥 슬쩍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있다.

그리고 좀 다른 경우로 이런 일도 있었다. 지하철에서 술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저씨 앞에 가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으며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랬더니 처음에 아저씨는 자기변명을 거칠게 하더니 어째서인지 곧 조용해졌다. 그렇게 아저씨 앞에 서 있다가 내릴 때가 되어서 출입문으로 다. 아저씨 그렇게 조용히 가세요. 하고 돌아보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향해 손짓몸짓으로 이런 내용을 전달하는거다.

'새끼야. 나도 머리 박박 밀면 너 보다 더 무서워!'   

정말이다. 분명히 그런 말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마침내 지하철에서 지금껏 최고랄 수 있는 정말 대급 빌런들을 봤다. 그날 나는 지하철 문이 열리는 맞은편 도어기대어 있었다. 그때 한 사내가 지하철에 타더니  곧바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  내 옆에 서려는 그런 종류의 빌런인가 보다... 했다. 사내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좌석 끝에 있는 봉을 등지고 섰다. 우리 둘 사이는 한 뼘도 안 됐고 사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자칫 으로 뛰어들 판이었다. 나는 짜증이 났다.

"이 새끼 나를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리기만  봐. 이번엔 나 진짜 가만 안 둬! 그리고 아니,  자꾸 다들 에서 알짱데?!"

순간, 사내는 갑자기 돌아서더니 자전거 타는 자세로 몸을 굽혔다. 그러더니 아뿔싸! 엉덩이 골에 봉을 끼우는 것이 아닌가! 양손으로는 핸드폰을 조작하면서 엉덩이로 봉을 잡고 있는 것이다! 만화에서 짱구가 그러는 건 봤지만 실재는 처음 다! 정말 역대급으로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힘을 잔뜩 쓰고 있는 엉덩이가 봉을 놓친다면? 그래서 방귀라도 나온다면? 나는 사내를 피해 서둘러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 정거장에서는 커다란 버킨백을 든 중년 여성이 탔다. 내 옆에 선 그녀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그러듯 단정한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정장차림이었다. 우리 앞에 빈자리가 없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커다란 버킨백을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웠다. 응? 진짜다. 사람들 사이에 가방을 끼웠다! 그녀는 양해를 구하거나, 그 비슷한 행위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당당했다. 난데없는 가방의 침탈을 받은 좌석의 사람들은 감히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대신 사람들은 조금씩 옆으로 몸을 움직여 가방에게 자리를 내줬다. 내가 흘끔 돌아봤지만 그녀는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곧 가방을 쥐적거리더니 노트북을 꺼냈고, 선 채로 노트북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노트북을 집어넣고 주섬주섬 타블릿을 꺼냈다가, 또 대학노트와 펜을 꺼내 뭔가를 적기도 했다. 중년 여성이 가방을 뒤적일 때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조금씩 더 옆으로 비켜 앉았다. 자리를 차지하려고 가방을 집어던지는 아주머니를 본 적은 있어도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사람이 앉은 자리 틈에 제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넣는 사람과, 지하철 봉을 엉덩이로 붙잡고 있는 사람이 내 옆과 뒤에 있었다. 정말 역대급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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