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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Jun 26. 2024

챕터 엔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영화 일을 하면서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책을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영화는 이상하게 손이 안 가. 죄다 날아다니고 쳐부수는 만화 영화뿐이야.”

“요즈음 드라마는 1회를 다 보기 힘들어. 내가 멜러는 젬병인 데다가 환생물은 좀 지겹네.”

“소설은 너무 자의식 과잉이라, 난 요새 과학책을 많이 읽는 편이야.”

이런 걸 변명이라고 하고 다니지만 누가 봐도 한심한 태도입니다. 이 말들에는 그 분야에 대한 존경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함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난 체. 아는 체하는 건방진 태도가 있을 뿐입니다.      


몇 년 전 유명한 만화가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을 때였습니다. 반갑게 만난 녀석은 자기 이야기를 한참 했고, 저는 녀석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녀석은 자기 하는 일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밀린 이야기도 많았을 것입니다. 반면 저는 그럴싸한 변명을 하면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손가락질이나 해대는 빈둥대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맹렬한 녀석을 만나서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1차 술자리가 끝나고 2차를 가는 택시 안이었습니다. 친구는 화가 잔뜩 나서 갑자기 제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 안 되겠구나!”

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꾸도 못 하고 사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녀석의 이 말 안에 다 있었습니다. 녀석을 다시 만나기까지 그 몇 년의 제가 그 안에 다 있었습니다. 다시 녀석이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야, 새끼야. 너 내려.”

“뭐?”

“내리라고 새끼야!”

저는 결국 차에서 내렸고, 갑자기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저는 전에 없이 소지품을 몇 가지나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너 안 되겠구나!” 맞는 말이었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었습니다. 그 밤 녀석은 택시를 타고 달려 나갔고 저는 낯선 곳에 버려졌습니다. 그 순간에도 녀석과 저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녀석은 사과했고, 어떻게 어떻게 무마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날만했다고 느꼈고, 이 일을 계기로 뭔가 바뀌어야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짐은 잠시였고 이후에도 저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요즘 영화들은 왜 그 모양인지 몰라.” 여전히 거들먹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작품들은 모두 실패했고, 새로운 계약도 새로운 의뢰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해야지 했던 작품들은 여전히 몇 년째 서랍 속에 있었고 여전히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꼴이 났습니다.

폐업 신고. "내 이랄 줄 아랐다!"

2022년 9월부터 근 2년간 한 번도 쉬지 않았던 브런치를 당분간 쉬려고 합니다. 줄곧 제 글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시던 고마운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브런치의 내 서랍에도 완성되지 못한 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아무런 기약 없이 물러나려 합니다. “바보는 여행에서 돌아와도 현명해지지 않는다.”라고 니체는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니체에게 묻겠습니다.

“너 나 알아?”     

제 글에 좋아요는 평균적으로 30개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글을 올리지 않는다고 연재를 계속해 달라는 항의가 빗발친다거나, 그 여파로 브런치가 망한다거나, 행여 작가가 글 안 쓰고 어디 갔는지 경찰이 찾는다거나, 트로이 전쟁처럼 저를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나라와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잠시 물러나 있으려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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