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 시대유감

2025년 4월 18일

by allen rabbit

어젯밤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한산한 도로변에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조화(弔花)를 든 젊은 남녀 대여섯이 울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에는 쓰러진 사람 모양의 흰색 락카가 칠해져 있었다. 이곳에서 누군가 유명을 달리하셨나 보다. 나도 자주 자전거로 오가는 길이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어쩌면 내게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었으리라.


문득 내가 죽는다면 내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행복했으면 좋겠어.”다. 인생은 누구나 살아 내기 힘들다. 그래서 사는 동안 행복한 순간이 많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는 여러 불행 중에도 마침내 이를 극복해 낼 때, 오랫동안 추구하던 것을 마침내 이룰 때 행복을 느낀다. 혹은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뜻밖의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취업이 안 되다 마침내 되었을 때, 수없이 연습하던 퍼팅이 필드에서 성공했을 때, 지친 어느 날 방긋 웃는 내 아이의 미소를 보았을 때, 우리는 삶의 온갖 노고와 불행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맞는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아주 잠깐씩 행복을 맛본다. 그리고 그 덕에 모두 이렇게 살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만일 우리가 매일 매 순간 행복을 계속 느낀다면, 행복은 우리를 서서히 죽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에 그리 큰 기대를 거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때때로 살면서 우리는 억울하게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상식에 호소한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아주 드물게 법에 이 문제를 가지고 가기도 한다. 법으로 가 봐야 질 게 뻔하다면, 혹은 이 번잡한 송사를 겪느니 그냥 고개를 숙이고 말기도 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법으로 가는 일은 매우 심각한 상황일 경우가 많다.


그렇게 법에까지 호소했는데 마침내 판결에서 졌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이러저러해서 법적으로 진 겁니다. 한다면 억울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만일.

“상대가 전관예우를 써서 졌어요.”

“아시잖아요. 저쪽 집안이 좀 있는 집이라.”

한다면 패배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너무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내 존재가 사정없이 짓밟혀지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송두리째 빼앗기기 때문이다. 겨우 아주 잠깐의 행복을 맛보는 것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게 되고 만다. 우리 삶에 남은 것은 원망과 분노뿐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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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온갖 뉴스들이 그렇다. 법 따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자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매일 뉴스에 나온다. 기득권자들이 기세등등하게 호통치는 것을 본다. 의미 있는 삶이라는 표찰은 오로지 그들만의 것 같아 보인다. 이들이 우리 삶과 행복에 점수를 매긴다. 낙제점을 매긴다. 그저 작은 행복을 바랄 뿐인데, 늘 행복하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우리를 매일매일 모욕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원망과 분노에 휩싸이게 만든다.


누군지 모를 그분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리고 부디 고인도 그런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그리고 우리가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날들이 어서 빨리 되돌아 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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