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글쓰기 5. 끝>

by allen rabbit


<24>

소설 <남한산성>에는 척화론자 김상헌이 나옵니다. 이때 그의 형 김상용은 강화도에서 남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루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인 강화성은 활과 화약이 다 떨어지고 마침내 함락되고 맙니다. 그러자 김상용은 남문 성루에 화약을 모아놓고 “나는 대신이니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찌 구차히 살려고 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불 속에 뛰어 들어가 타죽었다고 합니다. 이때의 폭발로 성루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고도 합니다. 참으로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활과 화약을 다해서 하루 만에 항복했다는 말도, 그 뒤에 김상용이 화약으로 자폭했다는 말도 저는 어색해 보입니다.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정황 상 강화도는 수군이 힘을 못 쓰고 관찰사 김경징 마저 도망하면서 맥없이 점령 된 듯합니다. 실록에는 청나라 사령관 도르곤이 성문 아래 와서 항복하라 했고 봉림대군(인조의 둘째 아들)이 응하면서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인조는 김상용의 죽음을 두고 실수로 화약에 불을 놓은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25>

처음에 인조는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봉림대군의 편지를 보자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편지 내용에는 강화도에서 제대로 한 번 싸웠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책임지는 관찰사는 1등 공신 김류의 아들 김경징이었습니다. 인조는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김경징이) 필시 다른 곳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류가 인조에게 말합니다.

“도피하지 않았다면 필시 전사했을 것입니다.”

나라보다 아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눈물 나는 부정(父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이 소식을 전하는 대신 홍서봉은 인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저들이 세자를 보내라고 요청하였는데, 그때 따랐다면 강화도의 백성들이 이런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조로서는 정말 황당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만하라. 강화도에서 자식이(둘째 아들 봉림대군) 화를 벗어날 가망이 있었다. 그런데 재상들이 잘 대처하지 못하여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인데, (아니) 대체 그 말은 공갈인가, 과장인가?”


인조 입장에서는 피가 솟구치지만,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26>

정묘호란에 후금이 내세운 명분 중 하나는 “광해군의 복위”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로도 밤이면 사람들이 몰려 다니며 광해군을 다시 추대하자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또 장안에는 임금이 바뀌었는데도 나아진 게 하나 없다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쫓겨난 북인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역모에서도 종종 광해군이 다시 왕으로 추대되곤 했습니다.


<27>

병자호란 때 함락된 강화도에서 약 천여 명의 고관대작과 왕실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어 있던 광해군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정묘호란 때 청이 “광해군 복위”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의아한 지점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걸까요, 아니면 청의 입장이 정묘호란 때와 달라진 것일까요? 청의 요구는 명확했습니다. “명에게 사대했듯 이제 청에 사대하라.” 제 이야기 속 인조는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재빨리 청에 항복합니다.


<28>

역시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어 있던 광해군의 세자 이지는 토굴을 파고 달아나다 붙잡힙니다. 이 일로 이지는 군졸들에게 큰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수치를 느낀 세자 부부는 모두 목을 매달아 죽습니다. 아들 부부의 소식을 들은 폐비 유씨 역시 시름시름 앓다 얼마 못 가 죽고 맙니다. 하지만 아들과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 광해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살아남았습니다. 미치지도 않았고 비관하여 자진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어쩌면 그는 복위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제 이야기 속의 광해는 그런 인물로 묘사됩니다.


<29. 끝>


“정묘와 병자호란 사이 어느 부부의 이야기.”는 수정을 마무리하면 곧 어딘가에 연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극 글쓰기> 포스팅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살펴본바, 욕심껏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는 통에 혼란스러운 글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야 수정하고 다시 쓰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지난봄부터 써 왔던 글이라 갈아엎는 일에 조금 망설였습니다. 고쳐야 한다 생각하니 맥도 빠지고, 간신히 눌러 놓은 좌절감도 올라와 겁도 났습니다.


하지만 알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얼마나 고쳐야 할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경험할 몇 번의 좌절을 이번의 실패로 조금 대신할 수 있으리라 위안해 봅니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사극 글쓰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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