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NETFLIX,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스티븐 연
영화 <더 립 The Rip>은 재키라는 마이애미 경찰 팀장이 복면 사내들에게 사냥을 당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총격을 피해 숨으면서도 문자를 보내려 애쓴다. 자리를 피하거나, 구조요청 전화를 하는 대신에 말이다. 충분히 달아날 수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그녀는 결국 문자를 다 보낸 뒤에 죽임을 당한다. 이 첫 씨퀀스는 그래서 의아하다. 왜 액션 시퀀스가 저렇게 맥이 없는 걸까? 엔딩의 액션도 성기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더 립>의 액션씬은 내내 제 역할을 못 한다.
또 벤 애플렉의 등 뒤로 권총을 든 커다란 그림자가 나오는 장면 같은 건 민망해서 보기가 괴로웠다. 영화의 주연을 맡은 맷 데이먼(데인 경위)은 사려 깊고 침착한 역할을, 벤 애플랙(제이디 경사)은 그보다 단순하고 거친 역할을 맡았다. "굿 윌 헌팅"에서부터 시작된 이런 두 사람의 역할 나누기도 무성의하게 보일 뿐이다.
팀장이 죽자 마약팀은 FBI의 내사를 받는다. 재키의 죽음에 마약 자금을 훔치는 부패한 경찰이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이 와중에 맷은 어느 집을 수색하고 어마어마한 마약 자금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상부에 이를 보고하지도 않고 현장에서 돈을 세라고 지시하면서 벤의 의심을 받는다. 스티브 연도 돈을 빼돌리자는 모의를 알게 되면서 맷을 두려워한다. 의심이 극에 달한 벤은 맷과 몸싸움을 벌인다.
팀장은 죽기 직전 애인인 벤이 아니라 맷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렇다면 팀장은 벤을 의심한 것일까? 팀장이 보낸 문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재키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만한 일화도 하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립>은 마지막 액션이 끝나고 이 일의 마무리에 대한 설명을 무려 8분이나 붙여 놓았다. 앞에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설정을 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8분을 보아도 재키가 어떤 사람이었고 그녀가 맷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어렴풋할 뿐이다. 나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왜 영화는 팀장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걸까?
흔히 글을 쓰다 보면 설정의 지옥에 빠지곤 한다. 여기에 쿨해지고자 하는 강박까지 끼어들면 어느새 작가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모조리 깎아 내기 시작한다. 설정의 지옥에 빠진 작가의 눈에는 인물의 감정이 이미 설정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설정의 지옥에 빠지면 액션은 감정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의 엔딩은 온갖 고생 끝에 악당을 붙잡는 장면이다. 악당은 변호사를 부르며 절대 자기에게는 손대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한다. 그러자 성룡은 그에게 마지막 분노의 주먹을 날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여기에 8분짜리 마무리는 필요 없다. <더 립>에서 벤이 자신의 연인을 죽인 남자를 쏠 때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재키도, 두 사람의 사연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팀장에 대한 설정을 앞에 두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미스터리가 생기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이번에는 설정은 앞에 두고 벤을 단독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연인의 복수를 하는 흔하디흔한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맷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어떨까? 이번엔 연인인 벤이 어정쩡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애인의 복수를 남의 손에 맡기다니 얼마나 덜떨어져 보이겠는가.
만일 내가 작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FBI는 아들의 죽음으로 어려워진 맷을 추궁하고, 맷이 거액의 마약 자금 앞에 수상한 행동을 하자 동료들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재키가 맷에게 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벤의 감정이 폭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야기의 본류에서 벗어난 맷과 아들의 에피소드가 필요해진다.
<더 립>은 분명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난관이 생기는 온갖 함정이 숨어 있는 설정이다. 그래서 작가가 설정의 지옥에 빠지고 만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The Rip>일까? 더 립은 마약, 현금 등의 탈취, 횡령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RIP는 Rest In Peace, 망자에 대한 명복을 비는 말이기도 하다. 맷은 죽은 아들을, 벤은 죽은 연인을, 팀원들은 팀장을 기리는 이야기라는 의미일까? 그러나 이 명복에 관객은 동참할 수 없다. 팀장 재키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뱀발. 맷은 현장에서 돈뭉치 중에 숫자가 기록된 것은 놔두고 그렇지 않은 것만 세라고 지시한다. 그래 미국도 그렇구나. 관봉권 띠지는 그대로 둬야지. 그러니 띠지 분실은 분명 내부자의 소행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