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남, 류경수, 스테파니 리 주연
<비밀일 수밖에>의 시작은 마루 창문을 향해 선 아버지의 프로필 얼굴로 시작한다. 영화를 시작하는 첫 번째 커트는 언제나 야심차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아버지 얼굴로 영화를 열었을까? 모든 비밀이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때문일까? 비밀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저마다의 이유가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영화는 끝날 때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히치콕은 말했다. 영화는 인생이라는 케익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만 관객에게 주는 것이라고. 진부한 것은 버리고, 극적이고 인간적인 것을 담아야 한다는 히치콕의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비밀일 수밖에>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비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소소한 비밀들을 예상 가능한 이야기에 실어 전한다.
춘천의 고등학교 교사 정하는 유방암 치료를 이유로 휴직한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캐나다에 살고 있던 아들 진우가 여자친구 제니와 함께 나타난다. 함께 사는 정하의 연인 지선과 곧이어 캐나다에서 날아온 제니의 부모까지 모두 정하의 집에 머물며 하나둘 각자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비밀은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을 뜻한다. 지선과 정하의 비밀을 살펴보자. 죽은 남편은 첫 시퀀스에서 정하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처신 똑바로 하라고 말한다. 작업실에는 지선을 그린 그림이 있고, 진우는 몇 번이나 지선에게 엄마와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지선과 정하의 애정 행위가 학생들에 의해 폭로된다. 마지막으로 지선의 누드화를 발견한 사둔이 두 사람의 관계를 캐묻자 정하는 지선과의 관계를 고백해 버린다. 이건 비밀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다. 관객에게 이래도 모르겠어? 하는 식으로 계속 지분거린다. 때문에 관객은 정하의 비밀이 궁금하지도 않다. 비밀이 드러나는 방식도 너무나 예상가능해서 맥이 빠진다.
제니의 아버지는 마구 산을 오르는 기행 끝에 마침내 어머니를 찾아간다. 허세 가득했던 그가 마음을 바꾼 것은 할아버지가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는 제니의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비밀인지, 또 제니의 한마디가 폭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마음을 고쳐 먹는 일은 폭로 때문만은 아니다. 비밀이 드러난 뒤 공감하고 위로하는 상대의 마음이 있어야 겨우 제 마음을 조금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아들 진우의 경우는 어떤가. 그의 “비밀”은 번듯한 직장이 아닌 요리 유튜버를 하겠다는 계획일까, 아니면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일까? 그는 유방암 수술을 앞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캐나다로 돌아간다. 가족이기 때문에 “비밀”이 생겼지만, 정작 엄마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둔 어른이 무턱대고 산에 오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전혀 예상 밖의 전개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정하가 돌멩이를 집어 들고 쓰러진 사둔에게 다가가는 장면도 뜬금없었다. 배우들은 모두 위험에 처한 것처럼 연기하지만 긴장감이 없다. 배우들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왕좌왕 연기하는 배우들이 도리어 안타까울 정도였다.
맛있는 부분만 잘라낸다고 해서 꼭 지루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영화에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경 이야기>나 <퍼펙트 데이즈>처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 반짝거리는 영화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밀일 수밖에>는 이 영화들처럼 새로울 것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길어 올리는 것도 아니다.
<비밀일 수밖에>는 등장인물 모두가 비밀을 안고 있다는 밑자락을 계속 깐다. 이야기는 비밀을 까발리는 데에 집중할 뿐 정작 비밀이 만들어진 이유는 외면한다. 왜 그것이 비밀이 되어야 했고, 그 비밀이 폭로되었을 때 얼마나 아픈지, 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첫 장면을 아버지의 얼굴로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두 사람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맛있는 케익 조각이 되어야 할 부분은 단연코 “비밀”이다. 하지만 <비밀일 수밖에>에는 정작 그 “비밀”이 없다. 진부하고 지루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