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Ballerina

존윅 스핀오프, 2025, NETFLIX

by allen rabbit

<발레리나>를 보면서 아주 오래전에 내가 기획하던 아이템이 생각났다. 거짓말 같지만 내 아이템의 제목은 <발레리노>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발레리노가 경찰이 되어 복수를 하고 다시 발레리노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영화는 주인공 이브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전혀 덜컥거리는 곳 없이 매끈하게 복수의 대상까지 달려간다. 악당의 손목에 있는 X자 표식을 쫓고,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소녀를 알게 되고, 그 흔적을 쫓아 악당들의 근거지를 찾아가고, 온갖 액션 끝에 악당을 처치하고 소녀를 구한다. 액션 영화답게 모든 브릿지는 액션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관객은 자동차 액션, 맨손 격투, 칼싸움, 수류탄 전투와 화염방사기 액션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보는 내내 나는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째는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관객이 모른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악당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후반에 펼쳐지는 화염방사기 액션에서 이브가 상대하는 사내는 악당에게 따로 지시받는 거의 유일한 하수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관객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레이드 2>에서 망치를 든 선글라스 여자와 야구 배트를 든 남자는 단 한 번의 액션을 위해 미리 얼마나 무서운 남매인지 보여준다. 때문에 주인공과 남매의 싸움은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화염방사기를 든 이 악당은 얼마나 위협적인 인물인지 관객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브의 아버지를 죽인 주적도 마찬가지다. 이 조직이 재미로 사람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브가 온 마을을 불태우는 것을 통쾌하게 관람하기는 쉽지 않다. 마을에도 아이들이 있었고, 타죽는 저들도 누군가의 부모일 텐데,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죽인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언제나 악당을 만드는 것이다. 악당이야말로 이야기의 진짜 모습을 비추는 빛이기 때문이다. 내 <발레리노> 기획이 결국 좌절된 이유도 결국 악당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브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킬러가 되었다. 모든 무기를 다루는 것은 좋지만 액션의 아이덴티티가 없어 보였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이브가 우아하게 춤을 추듯 악당을 물리친다면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더 부각되지 않을까? 내가 <발레리노>에서 노린 점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제목이 <가라테 키즈>인데, 댄스 대회에 나가면 속은 기분이 들테니 말이다.


하지만 액션 영화의 정석이라는 게 있을까?


이 영화는 존윅의 스핀오프 격인 영화다. <존윅>은 처음 나왔을 때는 손가락질을 당했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이 엄청난 전쟁을 벌인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존윅>은 액션 영화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 있다. 이제는 <노바디>처럼 아주 사소한 이유로 전쟁을 벌이는 영화들도 많아졌다. 그러니 <발레리나>가 이런저런 액션 영화의 정석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 봐야 잘못된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즐겁게 보는 사람은 즐겁게 볼 테니. 다만 발레리나다운 액션으로 이브의 정체성을 만들고, 영화의 절반이 될 악당을 잘 세웠다면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아쉬울 뿐이다.

발레리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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