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고슬링, 산드라 휠러, 소설원작, 2026년 작품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인류가 죽어가는 태양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11.9 광년 너머로 던지는 롱패스다. 그렇게 던져진 우주선에서 주인공 그레이스가 혼자 깨어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왜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던 승무원들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말았다. 그레이스는 그들을 캄캄한 우주공간으로 떠나보내며 혼자 남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린다.
태양의 빛을 잡아 먹는 아스트로파지 때문에 지구는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인류는 태양을 살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먼 우주로의 편도 여행을 계획한다. 그 말은 우주인들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우주인들은 지구에서 출발하기 전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긴다. 그때 이 일의 총책임자인 에바 스트라트는 "시대의 징조 (Sign of the Times)" 라는 노래를 담담하고도 처연하게 부른다. "그만 울음을 그쳐요 / 이것이 우리 시대의 징조니까요"
그레이스는 편도 여행을 각오하는 우주인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가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난다. 이제 그에게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다! 정말 놀라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외계인 로키를 만난다. 로키 역시 자신의 태양이 죽어가고 있어서 떠나온 길이었다. 그레이스는 로키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우정을 키워간다. 로키와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션>과 무인도에서 톰 행크스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윌슨을 잘 섞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시종 유쾌한 둘의 티키타카는 적막한 이 우주공간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혼자라면 틀림없이 무섭게 보였을 저 알록달록한 행성도 더없이 아름답고 장엄하게 보이게 만든다.
그레이스가 로키에게 자신이 지구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이야기할 때의 먹먹함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관객은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궁금하게 된다. 이 계획의 총책임자 에바 스트라트는 이 탐사에 적합한 사람으로 그레이스를 꼽았다. 그레이스는 이 일이 옳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자신은 도저히 용기가 안 난다며 제안을 거부하고 도망친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주선에 강제로 태워졌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번번이 울지만, 또 기꺼이 몸을 던져 지구를 살릴 새로운 생명체를 채집한다.
나는 SF를 좋아하지만 어떤 영화는 때때로 맥락을 놓치고 영화를 즐겁게 보는 데 실패하곤 한다. 이 영화에서는 "아스트로파지" 와 "로키" 이 두 가지 때문에 맥락을 종종 잃곤 했다. 처음에는 태양과 금성을 잇는 띠로 발견되었다가, 사실은 그것이 태양 빛을 흡수하는 “아스트로파지”라 명명되는 미생물로 밝혀진다. 우주공간을 이동하는 미생물이라니! 나는 그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미생물이 엄청난 에너지원이 되는 데까지 가자 나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로키도 마찬가지다. 비정형체인데다가 눈도 없고, 돌 같은 외형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또 영화의 호흡을 놓쳤다. 아스트로파지는 무생물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생명체의 지위를 얻고, 도무지 무생물 같은 돌멩이 외계인은 뛰어난 지능의 생명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작가는 이 점을 노렸겠지만 나는 안타깝게 반대로 돌아서는 바람에 종종 길을 잃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훨씬 재밌게 봤을 텐데 아쉽다.
그레이스가 우주공간에서 고군분투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레이스의 회상을 제외하면 지구가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태양 빛의 10%가 줄면 대재앙이 올 거라고 했다. 영화의 후반부에 그레이스가 보낸 메시지를 받는 스트라트는 쇄빙선을 타고 있다. 그 사이 지구는 혹독하게 추워진 것이다. 아마 원작에는 이것과 관련해서 많은 설명이 있었겠지만, 과감히 생략한 것은 아주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만일 이것까지 더했다면 나는 영영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레이스는 돌멩이 같은 외계인을 로키라고 부른다. 그리고 로키의 여자친구는 영화 <록키>에서 따와 에드리안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처한 두려움과 외로움에 지지 않겠다는 듯 이런 싱거운 농담을 끊임없이 하는데 지금까지 봐왔던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배우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그레이스가 로키를 향해 비행선을 돌렸을 즈음에는, 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가 한없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 여정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침내 로키와 헤어져 지구로 돌아가는 그레이스! 하지만 곧 새로 채집한 미생물로 인한 비상사태를 맞이하고 그는 이 문제가 로키에게 더 치명적일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때 세상을 등지고 살던 그레이스는 지구에 아무 연고도 없어 잃을 것조차 없었지만, 그래도 겁이 나서 달아났었다. 언제나 그렇듯 옳고 해야 할 일을 머리로 아는 것과 정말 그 일을 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다르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지구로 돌아가던 그는 로키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시 우주공간에 던져 넣는 것이다. 그가 마음을 정했을 때는 우주에서 혼자 깨어났을 때만큼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이런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우는 대신 지구로 보내는 비행선에 농담을 잔뜩 적고는 우주선을 돌린다. 이제 영영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놀랍게도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그 점이 매우 좋았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던 내 바람도 거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