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FLIX 영화 변요한 고아성 문상민
멜러 영화는 늘 그랬었다. 두 남녀의 사랑을 잇고, 그들의 사랑이 숨 쉬고 자라도록 돕는 감초가 있었다. <겨울 나그네>, <고래 사냥>의 안성기가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이경영이, <건축학 개론>의 납득이가 그랬다. "사랑은 오해다." 극 중 요한이 하는 말이다. 요한이 바로 이 영화의 감초다. 그는 내 사랑은 남들과 다르다는 오해, 그 사람은 지금 외로울 거라는 오해, 내가 전부일 거라는 오해, 그리고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오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비극적인 시도를 함으로써 거꾸로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흔하지 않은 것인지 스스로 증명한다. <파반느>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고전적이고 아주 잘 만들어진 멜러 영화였다.
사랑은 오해다. 틀림없는 오해다. 그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거기 있을 것이라고 믿는 용감함이 필요하다. 영화 속 두 사람은 한 번씩 용기를 잃고 물러선다. 미정은 언젠가 이 사랑이 깨질 것을 두려워해서 물러나고, 경록은 버림받았던 기억 탓에 다시 다가가길 주저한다.
원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을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은 대개 이렇다. 미남 배우였던 아버지는 못생긴 엄마와 자신을 버린다. 주인공은 굉장한 미남으로 자라 백화점에서 만난 아주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여주인공은 벨라스케의 <시녀>들의 못생긴 난쟁이처럼 생겼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남자는 버림받은 자신의 과거와 싸우고, 여자는 이렇게 잘생긴 남자와의 사랑이 과연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싸웠다.
영화를 볼 때 무엇보다 대사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었다. 조금 멋을 부리면 문어체스럽기 쉽고, 너무 힘을 빼면 또 대사가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대사는 모두 훌륭했다. 무심하게 경록이 미정에게 "그렇게 뛰지 않아도 되는데." 하고 나면 나중에 미정이 경록에게 "뛰지 않아도 되는데" 하고 돌려준다. 뛰어오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을 이렇게 한 번에 설명하는 대사라니. 미정이 뜨개질해서 니트를 짜주면 경록은 그 옷을 입고 대입 시험을 치른다. 나중에 경록이 미정에게 다시 보고 싶다고 편지를 쓸 때 경록은 같은 색 목도리를 짜서 보낸다. 미정이 편지를 한 번 보내면, 경록도 편지를 한 번 보낸다. 데칼코마니처럼 잘 짜여진 극은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연출도 굉장히 좋다. 경록이 미정을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을 계단에서 내려오는 미정이 재채기를 하는 것을 미소로 보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행여 그 마음을 관객이 모를까 감독은 바로 뒤에 요한이 똑같이 재채기했을 때는 인상이 굳어지는 장면을 넣었다. 미정이 경록을 좋아하게 됐을 때의 아침 묘사는 또 어떤가. 경록의 말대로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든 미정이 언덕을 내려오면 마치 새 장이 열리듯 연막을 뿌리며 소독차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버스를 향해 힘차게 달리다 자빠지는데 다음 장면에서는 기차에서 자기도 모르게 싱긋 웃고 있다. 사랑의 마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연막을 뿌리는 소독차는 경록이 미정을 찾아 나섰을 때 다시 한번 반복된다. 감독은 이런 데칼코마니를 끝도 없이 펼쳐놓았다.
영화적인 연출뿐만 아니라 곳곳에 감독은 짓궂은 개그도 심어 두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무전기 씬은 모든 백화점 직원들이 남자 여자로 나뉘어 무전을 훔쳐 듣게 한다. 또 경록이 “우리 좋은 데 갈래요?” 하고는 호텔이 즐비한 골목에 들어서며 미정을 오해하게 만든다. 감독은 여기에 더해 여자가 남자를 들쳐 업은 커플이 슬쩍 지나가게 한다. 술 취한 남자가 말한다. “야, 너 힘 좋구나!” 경록은 미정에게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도 같이 듣자고 약속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장면의 마지막은 제야의 종소리 대신 폐지를 끌고 가는 노인의 종소리로 끝난다.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술집에 세워둔 커다란 인디언 상은 또 어떤가. 곳곳에 보이는 세심한 소품과 극적 장치들은 보는 내내 즐거움을 준다.
사랑은 정말 오해일까? 과연 경록은 자신의 사랑이 오해가 아님을 어떻게 깨달았을까? 미정은 경록의 사랑이 오해가 아닌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영화는 그러나 사랑이 오해라는 요한의 말에 대답을 회피한다. 영화가 이 부분을 더 파고들었다면 어땠을까? 자신과 어머니가 버림받은 과거를 미정을 통해 극복한다거나, 세상의 편견에 맞서 미정이 이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영화는 대답 대신 사랑이 서로에게 빛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나는 이점이 조금 아쉬웠다. 미정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경록의 얼굴이 환해지는 장면에서 아쉬움은 더해진다. 사랑의 결과라 생각했던 이 장면은 사실 비극의 전조였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결국 서로에게 빛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비극적인 결말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경록은 자기가 가짜 같다고 느끼던 불안을 미정을 만나면서 진짜가 됐다고 느낀다. 미정은 대 놓고 자신을 무시하던 명품관 여자에게 용기를 내어 말한다. “너만 특별하다는 착각을 버려.”라고. 그렇게 경록과 미정은 사랑으로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추는 춤은 얼마나 달콤하고 아름다웠던지.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정말 오해라 해도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사랑은 감초 요한을 통해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
지독한 추녀와 모두가 선망하는 미남과의 사랑이라는 소설의 설정을 <파반느>는 모두 수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랑이 과연 오해인가? 하는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 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 <파반느>는 멋진 대사가 가득한 대본과 위트 넘치는 연출로 정말 너무나 응원하고 싶은 영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