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누 리브스, 킬러, 세계관, 액션, 영화, 넷플릭스
“Kill them all!”
나는 존 윅을 이 말로 기억한다. 이제 어떡할 거냐는 말에 다짜고짜 죄다 죽이겠다는 존은 치사량의 cool 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진짜로 죄다 죽인다. 가끔 이 시리즈를 보다 보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 건지 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존윅 4>는 전편보다 더 많이 죽이겠다는 게 목표라는 듯 러닝 타임도 어마어마하게 길다. 게다가 존은 말도 별로 없다. 이제 싸움을 그만하자는 말을 peace 하나로 퉁 친다거나, 복잡한 감정을 그냥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갈음하곤 한다. 소믈리에가 건네는 총을 들고 검은 슈트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총을 쏘는 존은 그야말로 간지가 폭발이다.
존 윅은 온 세상의 킬러들이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kill them all 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는 4부에 이르는 동안 자신이 속한 세계의 규칙을 모조리 부순다. 이 세계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콘티넨털에서는 살생 금지, 피로 맺은 약속의 준수. 이것이 이 시리즈를 단순한 액션물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장치였다. 그런데 존은 그걸 죄다 부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무시무시한 규칙 때문에 다른 기회를 노렸겠지만, 존 윅은 규칙을 깨고 콘티넨털에서 살인을 한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이 존 윅의 매력이지만 그 때문에 그는 무법자가 된다. 이 규칙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존재들로 인해 곤란에 처하지만 존 윅은 이걸 모조리 부수며 시리즈를 관통해 간다.
무법자로 인해 규칙이 손상된다면 다른 이들은 이제 이 규칙을 무용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존 윅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화의 첫 장면에서 다시 이 세계의 규칙을 말하는 장로를 존 윅은 “꼭 그렇진 않지.”라며 죽인다. 이 혼란 속에 존 윅의 오랜 친구인 코지는 파문당한 존 윅을 도우려 한다. 한편, 또 다른 친구 케인은 최고회의의 명령에 따라 존 윅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다. 규칙을 따를 것인가 우정을 지킬 것인가.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을 따르는 것이 맞는가.
한편, 지금 세계는 미국 이스라엘 이란 전쟁으로 시끄럽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세계의 질서를 세우고 스스로 국제 사회의 경찰을 자임했던 나라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그저 힘센 무법자임이 드러났다. 반면 오랫동안 악의 축으로 손가락질을 당하던 중국은 도리어 국제 사회의 규칙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학교를 폭격하고, 교량을 부수고, 민간인을 죽이고 있다. 전쟁에도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그런 규칙을 모두 부수고 있다. 마치 존 윅이 이 킬러 세계의 규칙을 부수듯 말이다. 마침 영화에서 존 윅을 두둔하는 코지는 일본인이고 응징하는 케인은 중국인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며 더욱 이 전쟁이 떠올랐다.
어릴 때 본 영화들은 말했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명제는 야만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들은 잔혹한 20세기 초 대량 학살 전쟁의 교훈을 아직 잘 기억하고 있던 시절의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경찰은 잔혹한 살인자를 직접 처분하지 않고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그때는 그것이 멋진 일이었다. 영화 <세븐>에서 브래드 피트가 범인을 쏘아 죽일 때 그를 안타깝게 여겼던 이유였다. 하지만 존 윅은 그런 규칙을 모조리 걷어찬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그런 그를 응원하고 cool 하다고 치켜세우는 중이다.
존 윅은 재미있는 오락영화이다. 이 영화의 첫 등장은 세상을 바꿨다. 벌써 10년이 된 이 영화 프랜차이즈의 성공은 세상이 확실히 변했음을 증언한다. 우리는 국제 사회이든 우리 일상이든 고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규칙으로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힘센 자의 폭거를 알량한 규칙으로는 막을 수가 없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는 규칙 따위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적 복수가 필요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적 복수가 쾌감을 주는 세상. 우리의 시대가 지난 세기의 교훈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존 윅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씁쓸하다.
영화 <세븐>에서 브래드 피트가 받은 마지막 죄목은 Wrath (분노, 증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