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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May 08. 2023

좋은 글을 판단하는 방법. 글의 무게

고 3 때 담임은 국어였다. 그는 참 말이 많은 사내였다. 특히 우리의 유쾌 발랄함에 화가 날 때면 폭포처럼 말을 쏟아내곤 했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다정하게 하나씩 불러내 엉덩이에게 마대자루 맛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때 그가 쏟아내던 말들의 대부분을 난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이었으리라. 그땐 틀린 것을 틀렸다고 하는 자. 불평 불만하는 자. 말 많은 자는 공산주의자였다. 빨갱이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말 많은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 나는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어찌어찌 국문학과에 들어가고 말았다. 담임은 국문과에 들어간 내게 자신의 시집 <폭포>를 선물로 주었다. 정말 다정한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폭포>는 당시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게 된 첫 시집이 되었다.     


그 시집을 읽은 것은 첫 학기의 <문학개론> 수업 시간이었다. 시집을 한 권씩 분석해 오라는 과제였다. 그래서 나는 그때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시집 <폭포>를 분석해서 과제로 제출했다. 물론 나는 시를 잘 모른다. 그때는 전혀 몰랐고, 지금은 그저 띄엄띄엄 조금 아는 체를 할 뿐이다. 각별히 좋아하는 시집 같은 것도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어떤 시는 내게 암호 같고, 문학을 포기하게 하는 코브라 트위스트 같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시를 읽다가 종종 기절하곤 한다. 내 첫 시집 <폭포>를 다시 보게 된 건 군 제대 후였다. 그때 내 책장에는 이전과 달리 수십 권의 시집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다시 본 <폭포>는 시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그냥 시의 형상을 가진 다른 무엇 같았다. 다른 시집들과는 무게가 달랐다. 뭔가 아주 가벼웠다.  하지만 1학년 <문학개론> 학점이 D게 가벼웠었던 건 시집 탓이 아니다. 시집 읽다 혼절이나 하는 내 탓이었다. 

 

요즘 수필을 쓰게 되는 바람에 다른 작가의 글을 자주 본다. 정말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이렇게나 많은 글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이 세계에도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작가는 ‘시간을 달리는’ 작가인 듯 매 순간의 세세한 것들을 모두 그대로 글로 옮기기도 한다. 그때 본 것. 그때 들은 것. 그때 생각한 것. 그때의 공기까지. 정말 그 기억과 솜씨에 놀라울 때가 많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별로 문학적이지 않다. 인간이 풍선처럼 가볍다. 내가 하는 말에 피와 살이 될만한 건 한 조각도 없다. 그러니 이 수많은 이야기들 틈에서 괜히 쓸데없는 소음만 더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고3 때 담임 같은 사내가 된 게 아닌가 두렵다. 좋아요 하나 받자고 마대 자루나 휘두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어떤 글이 좋고 어떤 글이 나쁜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그래도 대학에서 배운 게 조금 있다면 글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글은 분명 무겁다. 가볍고 신나도 좋은 글이라면 언제나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내가 쓰는 글도 조금이나마 무게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을 코브라 트위스트로 기절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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