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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Jul 09. 2023

이제 죽어도 상관없는 아버지와 행복한 가족

병원 나들이

이제 여든이 넘은 아버지는 매일 드셔야 하는 약의 종류가 정말 많다. 병원에 갈 일도 참 많다. 병원에 모시고 갈 때마다 나는 자주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어제 저녁에 뭐 드셨어요?”

“글, 뭘 먹었더라? 모르겠는데?”


결국 아버지는 치매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약을 드시고 얼마 뒤 다시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 어제 저녁에 뭐 드셨냐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어제 저녁? 엄마랑 나가서 삼겹살 먹었지.”

아버지가 어제 저녁에  드셨는지 기억하시다니! 나는  드시고 확실히 좋아지신 것 같다며 어머니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툴툴대며 말씀하셨다.

“무슨 소리야? 어제 저녁에 집에서 김치찌개 먹었는데.”


아버지는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 어떤 자리에서든 거리낌 없이 해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마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두 분은 젊어서부터도 자주 언성을 높이며 싸우시곤 했다. 종종 싸움이 격해질 땐 무서운 일도 생기곤 했다. 그래젊어서는 어머니가 많이 양보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양보 따위 없다. 아버지가 항복할 때까지 몰아붙이신다. 지난번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의자를 집어던지시려는 걸 본 적도 있다.


그런데 두 분이 이제 많이 바뀌셨다. 며칠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였다.

진료가 끝나고 약을 사야 해서 잠깐 기다리시라고 말했다.

병원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어머니는 따로 떨어져  앉아계셨다.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엄청 당황하며 말했다.

“니들 엄마 어딨 나? 엄마 없다! 엄마 어딨나?”

아버지가 두리번거리자 내 뒤에 서 있던 어머니가 소리치셨다.

“여깄어. 여기!”  

두 사람이 마치 다정한 노부부 같아서 나는 괜히 낯설었다.  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니네 아빠 요샌 딱 일곱 살짜리 같애. 저렇게 맨날 찾으면서 말은 드럽게 안 듣는다고."


우리는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이 당신이 83살 됐다며, 이만하면 많이 살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죽어도 상관없지. 우리 아버지는 46에 죽었는데, 난 두 배나 살았는데.”

아버지가 계속 그런 말을 반복 하자 결국 어머니의 화가 폭발했다.

“하지 마! 하지 말라니까! 좋은 얘기도 두 번 들으면 싫은데. 왜 죽는다는 소리를 그렇게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 하냐고! 하지 마!”

“뭐 그렇다고 소리를 질러. 아니, 나이가 그렇게 먹었다는 거지.”

“염병. 90 먹고도 펄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쎄고 쎘어!”

“그 사람은 그렇고. 내가 83살 맞잖아 내가 틀린 말했어?

죽는다는 말을 하니까 그러지! 그 말하지 말라고 내가 하루에도 몇 번을 말해!”

“알았어. 그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까먹네...”

“혼자 있을 때 하든지! 내 앞에선 죽는단 소리 하지 말라고!"

"안 한다면서도 금방 까먹고. 까먹고... 러니까 늙으면 죽어야지."

"또! 또! 금방 안 한다고 하고 그 소리를 왜 또 하냐고! 하지 말라고!"

아버지가 꼬리를 내리고 입을 닫았다.  조금 뒤 아버지는  휴지를 찾다가 내가 차 안에 둔 돈을 발견하고는 느닷없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너 돈 귀한 줄 몰라? 누가 세상에 돈을 차에 놓고 다니냐? 제정신이야? 어떻게 돈을 이렇게 막 굴리냐? 어?! 니가 돈을 그렇게 막 두니까 되는 게 없지!"

언제 어디서든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한참을 내게 큰 소리로 나무라셨다. 어쩐지 청계천 다리밑의 돌멩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난 가만히 듣기만 했다. 아버지는 내게 한바탕 잔소리를 하고 마음이 좀 풀리신 듯 차에서 흘러나오는 60, 70년대 히트곡을 따라 부르기 시작하셨다. 어제 저녁을 기억 못하는 아버지지만 아직 화는 내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 분은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뒤라 그런지 점심도 맛있게 드셨다.

아버지는 혹시나 종아리라도 맞고 사실까 걱정했는데, 화도 잘 내시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젊은 시절 양보만 하던 어머니는 이제 수틀리면 누구라도 의자로 후려칠 듯 기세등등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난 쫄보라 누가 욕해도 잘 받아 넘긴다.


이렇게 행복한 가족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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