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게 맛있는 커피.

그리고 끝내주는 음악.

by Joon Yoon 연준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오랜만에 모국으로 돌아와 내 귀에 스친 줄임말.

나랑은 거리가 먼 얘기다. 물론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맛있다. 그러나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면 일단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오른다.

커피에 쓸데없이 진심인 내가 이상한 건가? 진지충인 건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지강로 348.

광주시 아래쪽 산과 들에 둘러싸인 곳.

두베이 커피 플랫폼.

베를린, 런던, 그리고 서울 한복판을 거닐던 난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베를린에서 빠져들기 시작한 다양한 종류와 방법의 커피의 맛과 추출방식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궁금했다. 간단히 은유해보자면 한잔의 진한 에스프레소의 강렬함은 맹렬히 귀를 때려오는 바르톡의 현악사중주 4번 마지막 악장​이 떠​오르는 반면 V60(드립커피)의 은은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귀를 매혹하는 슈베르트의 현악오중주 2악장​과 같은 음악이 떠오른다. 장르를 바꿔보자면 에스프레소는 AC/DC의 Back in Black​, 드립커피는 비틀즈의 Blackbird​가 떠오른다. 더 세세히 맛을 파 볼 수록 다양하고 끝없는 음악적 비유가 상기된다. 좋은 영감의 원천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영감의 기본부터 알고 싶어졌다.


요즘 들어 무엇이든 원리가 궁금해진다.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질문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커피도 내 손안에 따라진 한잔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인터넷으로 무한히 연결된 정보화 시대에 방구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끝없이 많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법. 땅에서 솟아오르는 커피나무를 보려면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콜롬비아로 가봐야 하는 건가? 그건 불가능하겠지.. 생각 중, 서울에서 세 시간 떨어진 전라남도 화순군에 에티오피아 기후를 온실로 구현하는 두베이(頭bay)라는 커피 농장이 있다 들었다. 아, 무조건 가봐야지. 무작정 농장을 운영하는 차상화 두베이 커피 대표께 연락해 본 후 무작정 들려 농가와 카페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수없이 읽어봤던 과정과 커피나무를 직접 봤다.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커피 한잔이 나무에서 내 손 안까지 오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서툴게나마 배운 것을 정리해본 과정을 읽어 보시길.


전 세계적으로 상용되는 커피나무의 종은 로버스타(Robusta/robust는 견고하다는 뜻이다)와 아라비카(Arabica)이다. 고산지대(600-2000m)에서 심한 일교차를 지내며 자라는 아라비카는 좋고 다양한 향미와 낮은 카페인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200-800m)에서 얕은 일교차를 지내는 로버스타는 단순한 향미와 높은 카페인이 있다. 경사가 있는 고산지대는 물이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양분이 부족하다. 그런 곳에서 자라는 아라비카는 마치 험난한 여정을 초월 해 견고히 발전해 나가는 사람과 같이 향미가 더 좋다. 로버스타는 경사 없는 저지대에서 물을 머금은 양분에 편히 자라나기 때문에 향미가 부족하다. 단, 저지대는 일교차가 적어 벌레 및 곰팡이 서식에 더 취약하며, 그것으로부터 나무를 지켜주는 것이 카페인 성분이다. 일교차가 큰 고지대는 벌레 및 곰팡이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라 나무가 많은 함량의 카페인을 갖출 필요가 없다. 카페에서 상용되는 원두는 대부분이 아라비카, 싼 맛의 캔커피나 믹스커피는 대부분이 로버스타로 상용되고 있다. (Illy나 코스트코에서 다량으로 공산품으로 나오는 커피 원두가 100% Arabica라고 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제는 아라비카 중에서도 스페셜티 커피를 지향하는 고급 원두가 나오고 있다.


두베이 농장에는 에티오피아에서 온 버번(Bourboun)과 티피카(Typica) 아라비카 종이 자라고 있다. 씨앗부터 줄기와 잎이 자라고 처음 꽃이 피고 진 후 열매(커피체리)가 열리기까지 최소 4년이 지난 후 재배과정에 적합한 열매로 이르기까지 최소 8-9년 이상 자란 나무들까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수년을 자라온 커피체리는 재배 후 과학적이고 수없이 다양한 가공(씻기, 드라잉/발효), 로스팅(roasting/볶기), 그리고 추출(내리는) 과정을 거친다. 가공을 지나고 로스팅 전의 원두를 그린빈(green bean)이라 한다. 드라잉/발효와 가공은 농장에서, 그리고 로스팅과 추출 과정은 “로스터리” 라면 카페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시중에 판매되는 원두는 공장에서 로스팅 과정을 거친다.


두베이에는 직접 키우고 재배한 원두를 무산소 발효 및 가공 과정을 거쳐 로스팅한 뒤 추출까지 한 아리랑 원두가 있다. 강하고 기분 좋은 산미가 특징이다 (두베이 측에서는 복분자와 와인의 향미라 맛을 표현한다). 물론 직접 재배한 원두만 사용하지 않고, 브라질,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농장에서 수입해온 그린빈을 로스팅하고 추출한다.


그린빈의 상태와 특성에 따라 로스터의 재량으로 세밀한 로스팅 과정을 거친 원두는 우리 눈에 익숙한 여러 빛깔의 밤색 형태를 띠게 된다. 보통 더 짙은 색의 진한 로스팅 과정을 거친 원두는 주로 높은 압력과 짧은 추출 시간(대체로 30초 이내)을 지내는 에스프레소의 형태로 내려지고, 얕은 색의 상대적으로 약한 로스팅 과정을 거친 원두는 얇은 물줄기와 긴 추출 시간(대체로 3분 이내)을 지내는 드립커피의 형태로 내려진다. 조금 더 오랜 추출 시간을 지내는 침지 형식의 프렌치 프레스, 터키시 커피 등도 있다.


재배, 가공, 로스팅 모두 세밀한 과정이지만, 결국 로스팅된 원두로 연주를 하는 것은 바리스타이다. 마치 피아노를 만들고 연주하는 과정이 교차적으로 생각난다. 커피체리의 재배와 가공은 피아노 나무의 손질과 같고, 로스팅은 피아노 제작, 바리스타는 피아니스트와 같다. 로스팅된 원두는 매일 달라지는 온도와 습도에 따라 상태가 변화한다. 예를 들자면 원두 내 가스(이산화탄소)가 로스팅 후 서서히 밖으로 새어 나간다. 바로 볶은 원두가 최상이 아니고 일정의 가스가 빠진 며칠 된 원두가 최상의 상태라 한다. 바리스타는 그 상태에 맞춰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 기준에 입각해 매일 원두의 분쇄도와 추출 시간 및 압력을 조절한다.


바리스타는 로스팅된 커피 원두가 갖고 있는 맛의 색상(色相/hue)은 바꿀 수 없겠지만, 그 색의 채도(彩度/saturation)와 명도(明度/brightness)는 능숙하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매일 로스팅된 커피 원두의 변덕스러운 상태를 봐가며 항시 다르게 적응해가는 참된 바리스타의 모습에서 참된 음악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장르 불문, 그것이 팝이던, 락이던, 재즈이던, 클래식이던, 참된 연주자는 그날, 그 공간과 관객, 그리고 변덕스러운 나 자신의 상태와 감정에 항시 다르게 적응해간다. 매번 같은 연주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재창조 일 뿐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변덕스러운 원두의 상태는 무시한 채 일관된 추출 법만 따라 하는 바리스타처럼.


커피 한잔도 진지해지면 끝이 없다. 이론과 원리도 팔수록 깊어진다. 근데 왜? 굳이 이렇게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몇 그람의 수량 차이와 물줄기의 굵기 차이에 굳이 집착해야 되나? 그것이 집착에 멈추지 않으면 된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 특별한(specialty) 커피가 되는 것 아닐까. 특별한 커피란 어떤 맛일까? 일단 맛있는 것은 무엇일까? 맛있음은 개인마다 천지 차이 나기 마련이어서 정의할 수 없을까?


우리는 보편적인 맛있음을 감칠맛에서 느낀다. 한자로는 선미(鮮味), 일본어로는 우마미(うま味), 영어로는 savory라 표현한다. 미국에서는 주로 일본어를 빌려 umami라 표현한다. 그 뜻을 풀어 얘기하면 기본적인 맛이다. 보편적인 맛있음을 표현한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수많은 라면 장인들이 육수의 우마미를 위해 일생을 바친다. 그러나 우리는 화학의 도움을 받아 그 맛있음을 MSG(Monosodium glutamate/글루탐산 일 나트륨)으로 쉽게 구현한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감칠맛에서 오는 기쁨도 있지만 장인 정신을 통해 그것을 초월하는 조화로움에서 오는 맛의 기쁨이 있다. 그것은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며 느끼는 향미와 여러 가지의 향미를 조화롭게 섞는 과정에서 찾는다. 무한한 향미의 조화로움을 쫓아가는 커피의 세계를 통해 그 과정의 절정을 경험한다. 더 나아가 이런 조화로운 맛의 기쁨을 선사하는 음악인이 되고프다.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사소하지만 정교한 기쁨에서 마음의 안정과 치유를 받을 수 있다 믿는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서문 마지막 문장이 떠오른다. Art is quite useless (예술은 그다지 쓸모없다). 쓸모없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나는 이상적으로 살아 보려 한다. 나 같은 인간이라도 이상적으로 살아야 쓸데없는 것으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서울로 돌아오기 전 날 밤 차상화 대표가 한 말이 뇌리를 스친다.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00%는 없다. 다만 어울림에서 그 부족한 나머지, 또는 오차를 채우는 것일 뿐.


나 자신의 내면과 외면의 어울림,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상대의 어울림에서 공존, 소통, 예술, 그리고 삶이 지속되는 것 아닐까? 차 대표의 마지막 한마디가 마음에 남는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사랑과 진심 가득한 커피 한잔. 진심 가득한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한 맛.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것이 끝내주게 맛있는 커피 한잔이다.


커피에서 이상적인 연주가의 예술관을 찾아본다.

단 한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연주. 그것이 진정 끝내주는 연주 아닐까?



9月14日 2021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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