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를 위한 구원

- 무례함 속에서 헤엄치기

by 누보로망





lucas-schneider-hruPWr3sE9c-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Lucas Schneider




현관문 도어락 덮개를 올리고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 띠, 띠, 띠, 띠리릭.



경쾌하면서도 건조한 기계음이 울리고, 문이 묵직하게 열린다.

안으로 발을 들이고 다시 문을 닫는 순간, 등 뒤에서 '철컥'하고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나는 길게 숨을 내뱉는다.



금요일 밤의 귀가.

세상과의 단절이자, 내가 한 주간 속해있던 거대한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꽉 끼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둘 풀어헤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그 사이에 십 년은 늙어버린 것만 같다.



푸석한 피부, 충혈된 눈, 그리고 아직 미처 지우지 못한 '사회용 미소'의 잔여물.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그 잔여물들을 벅벅 씻어낸다. 타인의 비위를 맞추느라, 혹은 무례한 말들을 웃어넘기느라 억지로 끌어올렸던 입꼬리가 비로소 중력에 순응하며 툭 떨어진다.



무표정.

내가 가장 사랑하는 표정이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병을 꺼내 단숨에 들이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서늘한 감각이 위장에 닿을 때쯤, 나는 거실 소파 깊숙한 곳으로 몸을 던진다.


불은 켜지 않는다. 창밖에서 스며드는 도시의 불빛,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잔상만으로도 거실은 충분히 밝다. 아니, 오히려 이 어스름한 어둠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완벽한 조명이다.



나는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소음과 어지러운 조명 속에 있었다.


오전 8시, 지옥철 안에서 나는 짐짝처럼 구겨져 있었다.

타인의 샴푸 냄새, 땀 냄새, 그리고 눅눅한 숨소리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이어폰을 꽂았지만, 노이즈 캔슬링 기능조차 뚫고 들어오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무실은 또 어떠한가.

의미 없이 허공을 부유하는 회의실의 농담들, 누군가의 타자 치는 소리, 끊임없이 울려 대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이것 좀 확인해 주세요"라는, 정중함을 가장한 독촉의 말들.


그 소음들은 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피부의 모공 하나하나를 통해 스며들어와 내 영혼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내 목소리의 톤을 한 옥타브 높여야 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연기해야 했다.

유능하고, 사교적이며,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인 척.

그 연극이 끝난 지금, 나는 무대 뒤 대기실에 홀로 남겨진 배우처럼 탈진해 있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가끔 창밖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쉭-' 하고 들렸다가 멀어진다. 그 소리는 마치 파도 소리처럼 규칙적이고, 묘하게 안도감을 준다. 나는 저 밖의 속도전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안도감.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해방감.


나는 이 순간을 사랑한다.








이 적막이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적막이 싫어 TV를 켜거나, 유튜브를 틀어놓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다. 침묵이 가져다주는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충만'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감정을 꾸며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가석방된 죄수처럼 나는 이 캄캄한 침묵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다.


고요함에도 온도가 있다면, 지금 내 방의 온도는 딱 적당하다.


너무 차가워서 시리지도 않고, 너무 뜨거워서 데이지도 않는,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온도. 마치 엄마의 양수 속에 떠 있는 태아처럼, 나는 이 침묵의 온도 속에서 안전함을 느낀다.


스마트폰 화면이 번쩍이며 알림이 뜬다.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다. 확인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세상과의 연결을 끊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답장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나를 무심하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결국 그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배터리는 방전되었다.

지금은 충전기 코드를 꽂고 가만히 붉은색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억지로 켜려고 하면 고장이 날 뿐이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 내가 뱉었던 수많은 말들 중, 진짜 내 마음은 몇 퍼센트나 되었을까. 아마 10퍼센트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말,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윤활유 같은 말, 혹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온 방어적인 말들이었으리라.


그 가짜 말들이 입안에 텁텁하게 남아있다.

나는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다짐한다. 지금부터 잠들기 전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오직 내 내면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겠다고.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마음속으로 나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거창한 위로도, 내일에 대한 희망찬 다짐도 필요 없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고, 다시 이 안전한 동굴로 돌아온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 고독한 밤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월요일 아침 알람이 다시 울리면, 나는 다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소음의 전쟁터로 나갈 것이다.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가짜 미소를 지으며, 영혼 없는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나에게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이 침묵의 요새가 있으니까.



어둠이 짙어질수록, 역설적으로 나는 더 선명해진다.
도시의 밤은 소란스럽지만, 나의 밤은 고요하고 단단하다.
이것은 외로움이 아니다. 온전한 자유다.

아, 나는 아직 살아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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