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인연을 억지로 붙잡지 않기로 했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가 났다.
창문을 열자 훅 끼쳐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나는 미뤄왔던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철 지난 반팔 티셔츠들을 개어 넣고, 두꺼운 니트와 코트를 꺼내던 중이었다. 옷장 가장 구석, 방습제 냄새가 배어있는 깊은 곳에서 낯익은 남색 카디건 하나가 툭 떨어졌다. 보풀이 조금 일어난, 유행 지난 디자인의 얇은 옷.
그 옷을 집어 드는 순간, 나는 하던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옷감 사이사이에 박혀 있던 몇 년 전의 공기, 그때의 온도, 그리고 유난히 뜨거웠던 '우리'의 시간이 먼지처럼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네가 내게 선물했던 옷이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싶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았을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만나서도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고, 스마트폰 배터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서로의 연애사, 직장 상사의 뒷담화, 그리고 거창하고도 허무한 미래에 대해 떠들었다.
너는 나의 대나무 숲이었고, 나는 너의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했다.
네가 울면 나도 울었고, 내가 웃으면 너도 웃었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그것은 청춘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오만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우리는 싸운 적이 없다.
서로에게 험한 말을 한 적도, 돈 문제로 얽힌 적도, 삼각관계에 빠진 적도 없다. 거대한 사건이나 사고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듯,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시작은 사소했다.
이직을 하고, 사는 동네가 멀어지고, 각자의 연애가 바빠지면서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 보던 것이 한 달에 한 번이 되었고, 계절에 한 번이 되었다가, 어느새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사이가 되었다.
"언제 밥 한번 먹자."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한다는 그 거짓말 같은 인사가 우리 사이에도 맴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심이었으나, 나중에는 침묵을 메우기 위한 습관이 되었고, 끝내는 그 말조차 꺼내기 민망한 시점이 찾아왔다.
지난 내 생일, 너는 모바일 메신저로 커피 쿠폰 하나를 보내왔다.
[생일 축하해! 잘 지내지? 나중에 얼굴 한번 보자.]
복사해서 붙여넣은 듯한 건조한 문장. 그렇게 쌓인 '나중'이 몇 번이었더라. 한손에 세기도 어려웠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전화를 걸어 "야, 이게 뭐냐? 당장 나와!"라고 소리쳤을 텐데, 나는 그저 [고마워, 너도 잘 지내지?]라는, 똑같이 건조한 답장을 보냈다.
그 짧은 텍스트가 오가는 사이, 나는 직감했다.
아, 우리의 시절은 끝났구나.
처음에는 서운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곱씹어보기도 했다. 혹시 그때 내가 했던 말이 거슬렸을까? 내가 너무 내 얘기만 했나? 관계의 소멸을 내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는 밤들도 있었다.
억지로 관계를 되살려보려 먼저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미지근했고, 억지로 이어진 대화는 뚝뚝 끊겼다. 마치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옷장 앞에 멍하니 앉아 카디건을 만지작거리다 깨닫는다.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아니, 조금 더 근사하게 말하자면 사람마다 서로에게 필요한 '계절'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의 나에게는 너라는 '여름'이 필요했다.
뜨겁게 공감해주고, 같이 화내주고, 밤새도록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는 그런 열정적인 계절이. 그리고 너에게도 나라는 계절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변했다.
나는 이제 시끄러운 술집보다는 조용한 찻집을 좋아하게 되었고, 밤새워 통화하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너 또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혹은 더 중요한 커리어를 쌓으며 너만의 환경에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기온과 습도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 우리 관계의 계절도 자연스럽게 바뀐 것이다.
여름옷을 입고 겨울을 살 수 없듯이, 과거의 관계를 지금의 나에게 억지로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소홀해서가 아니라, 그저 각자의 인생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달라졌을 뿐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불교의 말처럼,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는 법이니까.
나는 가디건을 다시 곱게 갠다.
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기로 한다. 지금 당장 입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옷이 내게 주었던 따뜻함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멀어진 인연을 억지로 붙잡으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나를 괴롭히는 일이고, 어쩌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다. 대신 나는 '느릿한 이별'을 연습하기로 한다.
그것은 연락처를 차단하거나 사진을 지우는 물리적인 이별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현재 진행형'의 방에서 '추억'의 방으로 옮겨주는 일이다. 부채감이 아닌 고마움의 이름표를 달아서.
옷장 문을 닫으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너에게 안부를 건넨다.
"잘 지내니?
우리가 함께였던 그 시절, 너는 나의 가장 찬란한 여름이었어.
덕분에 나는 외롭지 않게 그 시간을 건너왔어.
이제는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아가겠지만,
네가 있는 그곳의 날씨도 늘 맑기를 바랄게."
빈방에 먼지가 가라앉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람은 떠나도 추억은 남아 나를 지탱한다.
그걸로 되었다.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