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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y 18. 2024

생각과 반대의 움직임

생각이 전부

잠이 깨 머리 옆에 두고 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3시 20분쯤. 부엌에 나와 냉장실에 넣어 둔 발효 중인 반죽을 실온에 꺼내두고 들어갔다. 잠이 오진 않았고 여러 번 시간을 확인했다. 불 꺼진 방에 누운 채 오늘 글쓰기 주제인 '나의 일탈'에 대해 생각했다.


어제 오전 실습수업 후. 건물밖으로 나와 본 오월의 밖은 그림 같았다. 파란 하늘과 무성해진 초록 잎의 큰 나무가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대로 좋음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풍경이었다.

수업이 다 끝난 금요일 오후, 내일은 토요일, 다음 날은 일요일. 휴일 전날 일정 없는 금요일 오후 어디론가 바람 쐬러 훌쩍 떠나고 싶었다. 신랑에게 전화해 같이 차 타고 드라이브 갈 생각이 들고, 아니야 혼자가 났겠지. 학교 앞 산으로 나있는 골목길을 걸어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 쓸 주제글 '나의 일탈'이 생각났다. 이박 삼일. 풀빌라에서 쉬는 여행을 가고 싶다. 발리 풀빌라로의 이박 삼일동안 가면 좋겠다. 일탈이라는 생각에 떠나고 싶어 졌고 쉬고 싶어 풀빌라에서의 휴식을 떠올렸다.

잠시 일탈에 대해 생각하고 미로 같은 학교건물에 나있는 길을 따라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침에 쓴 스케줄대로의 이동이었다. 도서관에서 책 읽기. 도서관은 이층이었고 한 층을 더 내려오면 학생식당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배고파와 메뉴가 뭘까 궁금해졌다. 메뉴보고 오자는 생각에 일층으로 내려갔다. 제육오징어볶음. 괜찮은데. 학생식당으로 들어갔다. 같은 반 동생이 혼자 식사 중이었고 같이 앉아 점심을 먹었다. 편한 동생과 편한 대화가 더 많은 식사자리였다. 식사 후 건물 로비에 놓인 카페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학교 교정이 이렇게 예뻤던가. 좋은 날씨가 한 달은 지속되는 것 같은 요즘. 삼월의 추운 공기로 처음 만났던 교정의 차가움은 거치고 따뜻하고 푸르른 오월의 교정은 신록이 더해 아름다웠다. 딱 좋은 아름다움이었다. 안정감 있고 평안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날씨. 그게 오월이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의 현실 구현이었다. 문어체의 표현을 현실로 느낀 날이었다.

날씨 따라, 계절에 따라 체온이 변하듯 감정의 출렁임이 큰 내게 지금은 황금연휴기간이다. 그때를 어제 오후에 에스프레소 샷 추추가보다 더 진하게 느꼈다.

또 다른 오후 일정. B형 예방 접종 후 그다음 일정으로 책 읽기가 있었다. 집 근처 도립 도서관으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이층 창가자리에 앉아 그곳에서의 습관대로 앱에 사진과 함께 글을 썼다. 창밖에 보이는 버스정류장, 기다리는 사람, 어디에 가는 걸까? 떠난다는 생각에 여행이 떠올랐고 어디에 가는 걸까 생각을 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근거리를 가는 사람일 테지만. 그 사람은 사라지고 떠나는 버스만 남았다.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에 혼자 떠나는 글을 브런치에 썼다. 녹차밭에도 가보고 전주 한옥마을에도 가보고, 경주 한옥마을에도 가보고,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하고 왔다.

그리고 책으로 안착했다. 일요일에 있을 독서모임 책 <퓨처셀프>를 다 읽고, 다음 주에 있을 독서모임 책 <나와 마주하는 용기>를 이어 읽었다.


오전 수업 후 건물밖으로 나와 바라본 밖은 일탈을 꿈꾸기에 좋은 날씨였다. 한낮에  따뜻하게 타오르는  공기는 마음을 부유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의 일탈' 주제글이 생각나 그럴 수 있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정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고 오늘 할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루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에 쓴 스케줄과 점심때의 뱃속 시계로  나의 일상을 제자리 행진을 했다. 점심밥을 먹었고 예방접종을 맞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그 사이 글쓰기와 생각기록을 틈틈이 하면서.


주제 글쓰기 당일인 오늘 아침. 4시 20분 알림에 맞춰  부엌으로 나왔다. 배가 썩썩하다. 배고픔이 느껴졌다.

알람 전에 깨고서 잠이 들지 않아 머릿속으로 오늘 주제 글에 대해 생각하며 뭘 쓸까를 생각했다. 일탈. 어떤 걸로 쓸까. 과거 고등학교 때 학교 안 간 거. 지금 일상에서 벗어나했던 어떤 일 등 자꾸만 머릿속 기억을 뒤졌다. 글감을 찾았다.


어제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던 때부터가 생각났다. 그 시간부터 기록해야겠다. 일탈을 생각하며 떠나고 싶다는 생각부터. 그리고 그 이후 나의 시간은 일탈이 아니라 스케줄에 기록한 대로의 반듯한 일상을 지키며 살았다는 걸. 안온한 감정으로. 이게 중요하다. 안온했다는 것.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일탈을 생각했고 그러길 꿈꿨는데 실제 살아진 건 안온한 일상이었다.

 

시험시작 전 공부시작을 못하고 스트레스 부하를 최대치로 키워만 가는 시기를 항상 거친다. 그러다 발등에 불 떨어진 지점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결국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시험 끝나고 후련함을 느낀다. 그 반복은 매번 같았고 시험기간이면 일상처럼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번엔 그 반대인 충실한 일상이었다. 일상탈출을 생각하고 오늘 할 일을 생각 안 하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계획한 대로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원하는 편안한 감정 속에서.


평소 청개구리 같은 성격을 느끼곤 하지만 그건 시험기 간 공부로부터 탈출이나 해야 한다는 기피감에서 느끼던 것, 하라면 하기 싫은 것 등. 대부분 해야 할 것에서 느끼던 하기 싫은 것이었다면 어제는 좋은 것, 즉흥적인 것, 도파민에 취해 기분 좋을 만한 것을 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행동으로 연결됐다는 게 신기했다. 감정이 만든 반작용인 걸까. 일탈을 꿈꾸고 일상을 살았다. 몰랐던 행동의 발견이다. 그 발견이 재밌었다.


p.s

오늘 아침 주제 글 쓸 생각에 속이 석석함을 느끼고서 스트레스를 받는 걸 알았다. 스트레스로 이른 시간에 배고픔을 느끼는구나 싶었다. 생각나는 대로 일기형식으로 주제글을 써오다가 어제오후와 오늘 아침에 어떤 걸 쓸까를 미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되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일탈하자고 생각했다. 토요일 아침이면 일기장에 주제글을 쓰던걸 하지 않고 브런치에 '속이 석석'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주제 글인 일탈을 하자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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