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디자란 깐 마늘 2kg 꼭지를 따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은 마늘 껍질을 어떻게 깠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로 작았다. 주로 내 새끼손가락 굵기인데 콩만 한 것도 많았다.
작은 마늘을 산 까닭은 자르지 않고도 통째로 마늘 다지기에 넣을 수 있고 값도 굵은 것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었다.
마늘을 물에 씻어서 건지니 작은 채반에 산같이 쌓였다. 이 많은 양은 평소 같으면 꼭지 따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오고, 반은 어머니한테 넘겼겠지만 지금은 나에게 고된 단순 노동이 필요하다.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작은 마늘을 하나씩 집어 꼭지를 따서 다지기에 넣고 다져서 조금 큰 그릇에 옮기고, 그곳에 다진 마늘이 차면 작은 비닐팩에 넣어 넓게 펴서 칼등으로 3등분 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한꺼번에 꼭지를 다 딴 후에 다져서 소분하면 더 능률적이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미련한 과정으로 손과 몸이 고된 노동이 나에게 필요하다.
꼭지를 하나씩 따고 있으면 생각의 나래가 훨훨 날아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더 날아가기 전에 얼른 잡아들이면 금방 또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럴 때는 마늘을 하나씩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직 지금 내 손에 있는 마늘만 생각하며 헤아린다.
산같이 쌓였던 마늘이 들판처럼 평평하게 되었다.
성경책을 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못 보겠다는 듯 합류하신다.
"딸 게 많네. 왜 이렇게 작은 마늘을 샀니?"
요즘 귀가 어두워져서 설명을 해도 잘 못 알아들으시니까 대충 이유를 얘기했다.
고부가 말없이 자디잔 마늘 꼭지를 딴다.
훨씬 속도가 빨라져 마늘 들판이 마늘 골짜기가 되었다.
나는 이제 꼭지 따기를 그만두고 다지기만 한다. 다지기 핸들을 50번 잡아당겨서 소분을 했다.
"너무 성글지 않니?"
"이게 나아요. 마늘 맛도. 지금까지 이랬는대요."
갑자기 다지기 핸들이 당겨지지 않는다. 세게 당기니 줄이 헛돈다.
그동안 가끔 말썽을 부려도 달래 가며 3년 동안이나 잘 썼는데 드디어 명을 다했나 보다.
마늘은 아직 바닥을 보이려면 멀었다.
"다이소에 갔다 올게요."
"......"
패딩을 챙겨 입고 나서니 뜬금없이 물으신다.
"어디 가니?"
"다지기 사러요."
"지금? 어디로?"
"다이소 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 나는 나중에 산다고 하는 줄 알았지."
아마 내 목소리를 못 들으시고 상황을 넘겨짚는 것 같다.
그리 멀지 않은 다이소이지만 갔다 와서 나머지 마늘 작업을 다 마치니 1시에 시작한 일이 3시가 넘어서 끝났다.
이제 화장실로 걸어둔 패딩을 가지고 들어갔다.
목과 소매 부분을 손빨래하려던, 며칠째 미뤄둔 일을 시작했다.
미온수에 담가 찌든때용 비누로 조물조물한 후 헹궜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패딩을 대야에 담아 세탁기로 옮긴 후 패딩전용 세제를 넣고 돌렸다.
'세탁소도 망하겠군'
작년부터 패딩과 오리털 잠바도 전용 세제로 빨았는데 속도 안 뭉치고 더 깨끗하게 세탁되는 것 같아 세탁할 때마다 세탁소를 지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탁기가 도는 동안 화장실 청소를 했다.
힘이 들어 변기와 바닥만 하려다가 욕조까지 세제를 다 뿌렸다. 박박 문지르고 수채구멍 머리카락까지 다 빼내고 물을 좍좍 뿌렸다.
옷도 다 젖고 몸도 지쳤다.
생각도 지쳤는지 마음이 잔잔해졌다.
어제는 모두 말을 아꼈다.
실은 딱히 할 말이 없어서였다.
뭐라 말해야 하는지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가로젓는 고개와 엑스자 손모양으로 모든 의사소통이 끝났다.
이번엔 기대와 희망을 가졌었는데
성탄절 날 밤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교환했다.
26일 아침 10시, 아들의 가로젓는 고개 하나로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한 문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도, 안타깝게도... 이런 말들은 아무 의미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머니는 내가 말해도 응? 응? 하시다가 X자를 만든 손 모양을 보시고 금세 눈에 눈물이 가득해졌다.
공대 출신 작은 아들은 군말이 필요 없다.
종료된 상황의 결과를 알게 되자 금방 현실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남편은 원래 어떤 일에 쉽게 의견을 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별 말이 평소처럼 행동했다.
나는, 이게 쓰리고 아픈 건지 슬픈 건지 절망스러운 건지 마음이 무거운 건지 구분이 안 돼서, 이럴 때 늘 그러는 것처럼 바삐 몸을 움직였다.
눈물 글썽이던 어머니가 급히 정신을 수습하시고 손자들에게 저녁에 뭐 먹고 싶냐고 물으셨다.
그리곤 큰 닭 두 마리와 한약재, 전복까지 사 오셔서 백숙을 하라고 하셨다.
전복에 한약재, 마늘과 대추까지 듬뿍 넣은 백숙을 저녁에 별 말없이 다섯 식구가 푸짐하게 먹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6시에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간절히 빌으셨을 것이다.
대림절 온라인 새벽 기도 중 나도 소원했다.
불가능한 몸과 축복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을 한 두 여인, 엘리사벳과 마리아처럼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기도했다.
곧 100세가 되시지만 아직도 맑은 정신으로 기도하시는 시이모님이 이번 일에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고 해서 불안하기도 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윗이 병든 아들을 살려달라고 금식하며 울고 기도했건만 하느님이 기어이 그 아들 생명을 거둬가시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음식을 먹었던 것처럼,
던져진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으니 이제 하느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몸을 혹사하는 동안 생각과 감정도 제정신을 차렸다.
실패한 당사자가 더 힘들 것이니 에미가 감싸 안을 차례다.
긴 인생에서 1년은 찰나일 수도 있다.
"속 썩이는 자식들도 많다는데..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힘내."
늘 한결같은 남편이 고맙다.
실패의 아픔을 대신 울어주는 친구도 있고, 일부러 찾아와 오랜 시간 같이 있어준 친구도 있고, 위로의 치킨을 쏴 준 이종사촌 누나도 있고 여전히 기도해 주시는 이모할머니와 할머니 이모, 사촌누나들이 있으니 부러울 게 없는 아들이겠다.
나도 아들도 사흘 만에 무겁고 어두운 마음을 털고 일어났다.
"이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시겠지."
-아들이 임용고시 3수에 미역국을 먹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