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까지 온전히 주어진 내 시간에 알찬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결심한 것이 '요양보호사 지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이 자격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브런치스토리 꽃보다 예쁜 여자 작가님의 '꽃 피운 엄마, 꽃 피우는 나' 연재를 읽은 후이다. 그전에는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5년 동안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님을 접하면서도 그 일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나의 일로 연관 시켜 본 적이 없었다.
꽃작가님 말씀처럼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로 모른다.
아직은 정정하시지만 시어머니도 90세가 되셨고, 우리 부부도 늙어간다.
누가 언제 어떤 보살핌을 주어야 할지, 받아야 할지 모를 일이다.
마침 집 앞에 '요양보호사교육원'이 있어서 상담을 하고 12월 30일 개강반에 바로 등록했다.
내일 배움 카드가 있어서 약간 할인을 받았는데, 자격증을 취득하고 6개월 이내에 취업하고 6개월 이상 근무하면 결제한 금액도 다 환급해 준다고 한다.
점심시간 50분을 빼고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 30분까지 8시간을 연이어하는 타이트한 과정으로 2월 28일에 수료하고 3월 초에 바로 시험이 있다.
이번 기수는 연말에 시작해서 그런지 수강생이 15명으로 다른 기수보다 훨씬 적었다.
주로 50~60대이지만 70대도 세 분 계시고 남자분은 두 분 계셨다.
자기소개 시 자격증을 따려는 목적이 대부분 가족 요양이라고 했다.
앞으로 이론 126시간, 실기 114시간, 현장실습 80시간으로 총 320시간을 수료해야 하고, 과목으로는
요양보호와 인권, 노화와 건강증진, 요양보호와 생활지원, 상황별 요양기술, 치매전문요양보호사 교육이라는 내용을 배우게 된다. 그중 치매전문요양사 교육은 2023년 까지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후에 별도로 수료해야 했는데 2024년부터 교육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노인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치매에 대한 전문교육이 요양보호사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생소하고 새로운 내용이라 그동안 내 머릿속에 아이들과 부대끼면 쌓였던 자료와 정보가 새것으로 세팅될 것 같다.
한 달 동안 실컷 쉬고 맘껏 자는 세상 편한 생활을 해서 첫날이 무척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딱딱한 의자에 8시간 시달렸던 엉덩이가 조용할 만큼 뭔가 뿌듯했다.
배우는 나이 많은 학생들도 그렇지만 학생들과 버금가는 연배의 교수님(호칭을 강사는 교수님, 학생은 선생님으로 불렀다))도 전 기수와 똑같은 내용을 8시간 동안 처음 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것에 감탄했다.
전직 간호사나 사회복지사들 이신데 은퇴를 하고 강의를 주로 하시거나 재가요양센터나 요양교육원을 운영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12월 30일 31일 이틀과 1월 2일 3일, 이제 겨우 4일 강의를 들었지만 교재 내용으로 보니 엄청난 양이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터이니 혹시 복습한다고 교재를 가져가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원장님의 우스개 소리가 아니더라도 교재가 너무 두꺼워서 집으로 가져올 엄두가 안 났다.
강의를 듣고 바로 문제를 풀 때는 거의 다 맞는데 집에 와서 배운 내용을 되새겨 보려면 지우개로 지운 듯 깜깜해졌다. 한 강사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날 배운 것 중 세 개의 단어만 기억해서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게 하라고 하셨다.
아닌 게 아니라 배운 것 중 생소한 저잔여식, 비가역적, 통합대 절망, 이런 단어들을 기억하니 관련된 내용이 이어져 생각나기도 했다.
교수님들도 나이 든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이나 관련 사례를 중요 내용마다 삽입해 넣으셔서 기억에 도움이 되었다.
4일 동안 매일 다른 교수님들을 봐서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들은 이야기들은 생생하게 기억났다.
3일째 되는 날 수업은 치매요양 교육이었는데, 3월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강의 내내 마음이 무겁고 눈물이 났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으며 얼마나 냉정하게 엄마를 대했는지 너무나 죄스러웠다.
엄마는 넉넉한 미망인 연금으로 밝고 자신 있고 당당하게 혼자 잘 사셨다.
자식들한테 절대 손을 벌리지 않으셨고, 용돈은 주실지언정 큰돈은 말도 못 꺼내게 하시며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돈을 쓰셨다. 자식들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엄마의 처사에 찬성했다.
80 중반 어느 날 소변 실수 하신 것을 발견했다.
자식들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엄마가 받았을 심리적 영향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요실금, 변실금 하시는 것이 엄마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아니, 씩씩했던 엄마가 그렇게 됐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기저귀를 한사코 거부하시는 엄마를 야단치며 몰아세웠던 무지한 딸이었다.
그렇게 당당했던 엄마가 풀이 죽어 있는 것이 더 싫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노화를 엄마도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하루라도 더 빨리 인정했더라면 좋았을 것이었다.
마침내 요양병원으로 가셔야만 했을 때는 얼마나 초라해지셨는지.
엄마의 목숨이고 아버지였던 연금 통장과 도장을 당신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순간 엄마는 삶의 의욕을 잃으셨을 것이다.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한들 끄덕거리는 엄마의 고개는 이미 영혼이 없다는 걸 자식들은 깨달았어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엄마의 뇌가 빠른 속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치매전문요양사교육 강의를 듣는 8시간 내내, 지금 엄마가 내 옆에 계시다고 생각했다.
마네킹 머리를 감기며 엄마 머리를 감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양치를 시키고 얼굴을 닦아주고 몸을 닦아주는 방법을 배우면서 엄마 얼굴과 몸을 닦아드린다고 상상했다.
그때는 그런 것은 당연히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딸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왜 내 엄마를 내 손으로 닦아드릴 생각을 못했을까!
치매 있는 분을 대할 때는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무조건 수용하고, 공감하고, 인정하고, 관심전환시키고, 부정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여기저기라는 지시대명사를 쓰지 말아야 하고, 주어를 꼭 말하고 명사를 써야하며, 항상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내가 진작 이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엄마를 더 잘 이해하고 편하게 해 드렸을 것이다.
.
.
.
이제 시작이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엄마께 용서를 구하며 나머지 교육을 받을 생각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 중 단 10%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케어를 받아야 할 대상자는 늘어가는데 모두 장롱 자격증이라,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는 거의 중국동포이고 부족한 인원 충당을 위해 동남아시아에서 인력을 수입을 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남자 대상자(보호받을 사람을 환자가 아니라 대상자라고 부른다)들은 시설요양이나 방문요양에서 모두 요양보호사들이 꺼려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한다.
남자 대상자를 케어하거나 운전을 하는 등 힘을 써야 하는 부분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남자 요양보호사들은 시설이나 방문 어디서나 환영받는다고 한다.
나도 남편에게 야간반도 있으니 시간을 내서 교육을 받도록 적극 권해 볼 생각이다.
같이 교육을 받는 남자 두 분 모두, 아내를 케어하기 위해 왔다.
가족요양의 경우 대상자는 65세 이상이며 등급을 받아야 하고, 케어할 사람은 요양보호사 자격을 반드시 취득해야 가족요양을 할 수 있다.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족요양으로 일부 급여를 받으며 가족을 돌볼 수 있는데, 이번에 신청한 두 분 중 한 분은 아직 그 연령에 도달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했다.
'요양보호사'
누구는 한마디로 '똥 치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아직 시작이라 내 생각을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똥 치우는 일'이 눈살 찌푸려지는 일에서 '고귀한 일'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