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가죽장갑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친해질 수 있을까
시어머니가 별안간 가죽장갑을 내미셨다.
감촉 좋은 털이 손목에 둘러있는 빨간색의 고급스러운 장갑이다. 선물 받은 것인데 몇 번 안 끼고 고이 보관한 것이라 하셨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얼른 받아라~ 나 살아 있을 때 줘야지 죽으면 다 버릴 거 아니냐.'라는 말씀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그 지독한 감기에 온 가족이 걸렸다가 우리 부부와 아들은 거의 나아가는데
시어머니는 아직 힘들어하신다.
고혈압과 심근경색 약을 드셨었는데 해마다 골다공증, 변비, 소화불량, 연골약 등 새로운 약이 점점 추가돼 매 식전 식후마다 약이 한 움큼이다.
밥 보다 약이 더 많은 느낌이다.
그래서 감기약도 먹는 약은 피하신다.
한 1년 전부터는 귀도 잘 들리지 않으셔서 일상대화도 마주 보고 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들으신다. 그래서 그런지 말소리가 점점 커 지신다.
그동안 동네 이비인후과는 물론 대학병원의 노인난청 전문의 검진도 받아봤지만 노화로 인한 것이라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보청기인데 그건 또 완강하게 거부하신다.
적응하기도 쉽지 않고 보청기를 낀 주변분들도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라고 하시며 당신이 못 듣는 건 귀 때문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나는 여러 가지 소리 때문이라 보청기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도 교회에 가실 때는 머리 전체를 헤어롤로 단장하시고 옷도 이것저것 입어 보시며 꾸미고 가시는데 보청기 낀 노인으로 보이고 싶지 않으실 거다.
여전히 동네에서 시어머니는 '곱고 예쁜 할머니', '항상 조용하시고 점잖으신 분', '허리가 꼿꼿하신 할머니'로 통한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붓글씨 쓰기와 책 읽는 것이 일상이셨으며 지금도 하루의 대부분은 성격책 읽기로 시간을 보내신다.
목소리도 소녀처럼 가냘프고 항상 조용조용 말씀하신다.
이제 90이 되셨다.
남들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같이 사는 며느리에게는 몽땅 빠진 이빨과 기름기 다 빠진 깡마른 몸, 밤마다 악몽을 꾸고 소리 지르는 모습을 매일 보여주신다.
자존심도 상하시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함도 다 드러났지만 며느리에게는 그래도 시어머니의 위엄을 놓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아프다는 하소연도 아들이나 손자들에게만 하시고, 심지어 벗은 등에 연고를 바를 때도 나 대신 손자를 부르신다.
30년을 같이 살면서 같이 목욕을 하는 것은 물론 등을 밀어달라고 부르신 적도 없다.
한 집에서 살면서 같이 늙어가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여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자주 내 속마음 때문에 불편하다 못해 괴로울 때가 있다.
시어머니가 연약해지는 모습, 치아로 난청으로 고통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고도 마음이 그냥 덤덤해 놀랄 때가 있다.
친정 엄마가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픈데 말이다.
엄마가 심한 백내장으로 수술도 불가능하고 거의 실명위기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정신 없이 온 정보를 다 동원해서 기어이 수술시켜 드리지 않았나!
그래서 시어머니를 대하는 나의 정 없는 마음이 첫 번째 회개할 일이다.
시어머니와 나는 성격이나 성향이 똑같은지
어머니는 며느리가 딸처럼 애교 부리는 것이 어색하다고 하시고, 나도 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부담스럽다.
거리를 두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가장 좋은 사이를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결혼 직후 같이 살기 전에는 친정 식구들한테는 물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좋은 시어머니'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었다.
고부간이란 특수한 관계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조금 가까운 타인'
일본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라고 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oo상(씨)으로 부른다고 한다.
보통 고부간에 연락은 1년에 두어 번 생일이나 연말연시 때만 주고받는다고 한다.
정 없고 삭막한 관계 같지만 자주 연락한다고 절대 살가운 사이가 되지는 않는다고 일본의 며느리들도 믿는 가 보다.
유물처럼 예쁜 가죽장갑을 주셨다.
감기로 몸져 누어 계신 어머니를 보며 무덤덤한 며느리는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