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남매의 우애 찾기

형제의 우애를 목숨처럼 귀히 여긴 아버지를 그리며

by 모니카


아버지가 스케이트 한 켤레를 사 오셨다.

제일 맏이인 언니 발에 맞췄지만 둘째인 나와 첫째 남동생까지는 끈을 꼭 조이면 그런대로 신을 수 있었다.

썰매만 타던 시절에 날이 번쩍번쩍한 스피드 스케이트는 지금의 초최신 핸드폰만큼이나 입이 딱 벌어질 물건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탈 줄 몰랐다.

우리는 언니의 지휘 아래 매일 이불을 깔아놓고 양쪽에서 잡아주며 균형 잡는 연습을 했다.

며칠의 연습 끝에 셋째까지는 방바닥 위에서 비틀비틀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오 남매는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차서 스케이트를 어깨에 메고 겨울이면 썰매장이 되는 근처 논으로 갔다.

얼음 위에서도 잘 설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예행연습을 철저히 해서 동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멋지게 타고 싶었다.


언니와 나는 막내 손을 꼭 잡고 앞장서고 두 남동생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나서 따라왔다.

논은 우리 집에서 제법 멀리 있었다.

드디어 볏둥지가 군데군데 솟아있지만 하얗고 차가운 달빛이 가득 찬 반짝이는 논에 도착했다.


언니가 먼저 스케이트 끈을 조였다.

동생들이 달려들어 붙들었지만 엉덩이를 들자마자 보기 좋게 뒤로 넘어졌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일어섰지만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큰 누나 작은 누나가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스케이트 연습을 하는 동안 동생들은 얼음 위에서 뛰고 넘어지며 놀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막내가 밀어준다고 달려와 내 등을 잡았다.

이제 나도 스케이트를 신고 쪼그리고 앉는 것은 자신 있어서 용기를 내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비틀거리기는 하지만 똑바로 일어서기에 성공했다.

순간 한 손을 뒤로하고 허리를 굽혀 얼음 위를 지치는 멋진 폼을 상상했을까?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한쪽 발을 스르르 앞으로 밀며 다른 쪽 다리를 뒤로 굽혔다.

동시에 뒤에 있던 동생이 이마를 잡고 뒤로 넘어졌다. 달빛 아래에서도 동생 이마에 흐르는 피가 보였다.

동생 울음소리에 언니가 뛰어와 언 볏짚을 정신없이 모아 문지르고 나도 잠바를 헤치고 속옷을 끄집어내 동생 이마에 대고 눌렀다.

첫째 둘째 동생도 뛰어와 벌어진 상황에 놀라서 울먹울먹 했다.


우왕좌왕하며 모여있는 오 남매 위로 겨울 찬바람이 불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겨울 들판이 갑자기 춥고 무서워졌다.


언니가 막냇동생을 업고 힘없이 걸었다.

터벅터벅 뒤따라 걷는 네 동생들 머리 위로 창백한 겨울달이 걱정스럽게 따라왔다.


그날 일은 비밀로 하자고 서로 약속을 했고 엄마한테도 들키지 않았다.

다행히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그 사건은 막내 동생 이마에 희미한 흉터를 남겼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말은 아버지가 '단신 월남' 하셨다는 말과 '군대식'이라는 말이었다

외로우셔서 일까? 아버지는 형제애를 유달리 강조하셨다.

일요일이면 접힌 국어사전 모서리를 일일이 펴 주시는 자상한 분이셨지만 언니와 내가 다투고 등을 대고 자면 호되게 나무라셨다.


우리 오 남매가 아버지한테 크게 혼나는 날은 싸운 날과 별명을 부른 날이었다.

남동생들에게는 영감, 깜둥이, 쨈보 라는 별명이 있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행동이 굼뜬 큰 동생은 영감, 피부가 좀 가무잡잡한 둘째는 깜둥이, 막내는 뭣 때문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쨈보라고 불렸다.

별명을 부르면 혼이 나니까 무지 조심했는데 약이 오르거나 수세에 몰리면 튀어나왔다.


부대에 계시던 아버지가 낮에 우리들이 싸운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엄마가 스파이었다.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엄마는 돼지고기김치찌개를 상에 올려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요리 솜씨가 좋았는데 특히 적당히 신 김치에 돼지비계와 큼지막한 두부가 어우러진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일품이었다.

엄마의 낮으막한 말소리 뒤에는 항상 우리 오 남매를 부르는 아버지의 호령소리가 따라왔다.

잔뜩 겁먹고 있던 우리 오 남매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누가 잘못했던지 우리는 항상 단체기합을 받았다.

다섯이 쫄로리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 훈계를 들어야 했다.

맏이인 언니는 항상 잔소리를 배로 들었다.

낮에 크게 싸운 기억도 안 나고, 그까짓 별명 부른 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그렇게 혼을 내시는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삐쭉거리고 밖에 있는 엄마한테 눈을 흘겼다.

어떨 때는 언니가 대표로 매를 맞았는데 흉터가 안 생긴다며 발바닥을 때리셨다.

우리는 엄마 말만 듣고 혼내는 아버지가 미웠고 일러바친 엄마는 더 미웠다.


그러나

술을 드시면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를 구슬프게 부르시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족이 최우선이었던 아버지는 우리가 다 자라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흩어질까 억지로라도 묶으려 했던 아버지의 강한 두 팔이 사라졌지만 우리 오 남매는 우애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뼈에 사무쳐 저절로 똘똘 뭉쳤고 언니는 맏이의 책임감이 몸에 배었다.

언니는 50대에 뇌출혈로 쓰러졌었는데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도 자식이 아니라 동생들 이름을 불렀다.


그런 오 남매도 자라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옆에 있던 형제애를 잠시만이라고 변명하며 저만치 밀어놓았다.

엄마생신과 추석과 겹친 아버지 기일, 설날에만 엄마 집에 모여 외로운 형제애를 다독였다.



90이 되도록 아버지 바라기였던 엄마가 작년에 돌아가셨다.

사랑보다도 더 힘이 센 '정'까지 가볍게 다운시킨 '돈'이라는 것이 우리 오 남매에게도 힘을 과시해서

약해진 형제애를 위태하게 했다.



곧 설이 온다.

12주년을 맞은 '강상사네 5남매' 가족밴드가 조용하다.

매년 모이던 엄마 집도 얼마 전에 처분했다.


형제애가 주인공인 무대는 조용히 커튼을 내려야 할까?


지금 우리 오 남매의 현주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노엽고 슬퍼하실까 아니면 넓게 이해하실까?



나는 이번 설에도 두 아들의 세배를 받으며

'형제끼리 서로 이해하고 아끼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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