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축 제작자 군인 아저씨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전축

by 모니카

흠흠...

바람결에 진한 향기가 실려온다.

저 멀리 논 둑에 우거진 나무가 새하얗다.

꽃송이가 눈처럼 휘날릴 때마다 꿀 벌들이 어지럽게 헤엄쳤다.

가까이 다가 갈수록 더 짙어지는 향기에 숨이 멎을 거 같다. 속이 울렁거렸다.

아침부터 온몸이 따끔따끔했다.

내 몸은 아카시아 향기를 감당하기 힘에 겨웠다.


'아카시아 향이 너무 짙네. 나무 냄새도.. "

나는 1교시 후 조퇴를 하고 얼굴이 새하얘져서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들어서니 군인 아저씨 한 분이 뭔가를 만들고 계셨다. 귀 뒤에 연필을 꽂고 나무를 이리저리 눈어림으로 재고 나서 연필을 빼서 직각자를 대고 선을 긋고 다시 연필을 입에 물고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잇고...

나무의 비릿하고 진한 냄새가 코로 들어와 머릿속으로 흩어졌다.


"아저씨, 그게 무슨 나무예요?"


"아카시아 나무야. 최고급 나무지!"


꽃내음보다 더 진한 나무 냄새에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아저씨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잔병치레를 안 하는 나지만 일 년에 두세 번 진하게 몸살을 앓았다.

아카시아 나무 탓이 아닐지도 몰랐다.

마침 짙은 아카시아 향이, 비릿한 나무 냄새가 모든 냄새를 거부하는 몸살 때문에 누명을 썼다.

이틀을 앓아누웠다.

엄마가 쑤어 주는 북어죽이 맛있을 때면 몸살은 거의 나은 거다.

몸살도 막바지에 달해 기운을 차렸지만 아저씨가 이리저리 재단하는 나무 냄새는 여전히 속을 울렁이게 했다.


아저씨는 크고 작은 부품 여러 개를 사 오셨다.


-아저씨 뭐 만드세요?

나는 나무 냄새에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


-응, 전축!


-그거 다 아카시아 나무예요?


-응, 다 아카시아 나무야. 이게 단단하고 잡음을 잡는 데는 최고야. 이제 거의 다 됐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좋아하시는 나무 냄새가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저씨는 아침에 오셔서 온종일 전축을 만드시다 저녁에 부대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퇴근하시면 아직 미완성품을 이리저리 살펴보시고 두드려 보시며 흐뭇해하셨다.

요즘 아저씨들이 휴가 갔다 오시면 소년중앙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레코드 판이다.

아버지는 시간 나실 때마다 하시는 일이 있었다.

둥글고 새까만 레코드 판 가장자리를 손 끝으로 잡고 조심스럽게 골 하나하나를 꼼꼼히 닦으셨다. 그러고 나서 눈높이로 들어 올려 실눈으로 보시고는 다시 닦으셨다.

먼지 한 올 없이 윤이 나는 새까만 래코드 판을 턴테이블에 놓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올려놓으셨다. 레코드 판이 춤추듯 빙글빙글 돌면 노래가 흘러나왔다. 치지직 소리나 나거나 바늘이 튀면 음악을 멈추고 다시 닦으셨다.

휴일이면 그 일을 오랫동안 하셨다.

아버지는 가요 듣는 것이 취미이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가수는 이미자, 배호, 김세레나, 펄시스터즈. 봉봉사중창단, 최희준, 김상희...

아버지가 계시는 날은 집안에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 가수들의 노래를 2절까지 다 외워서 어른들 앞에서 불렀다.

김세레나의 까투리 타령은 가사가 재미있어서 혼자 있을 때도 흥얼거렸다.

<까투리~ 까투리 까투리 까투리 까투리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후여 후여

전라도나 지리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까투리 한 마리 푸두둥 하니 대바구니 떨렁 후여 후여 ...>

지금도 기억나는 가사다.


날이 갈수록 레코드 판이 늘었다.

이태까지는 조그만 주홍색 야전 전축이 열이 나도록 레코드 판을 돌렸다. 이제 가운데 턴테이블 양쪽으로 스피커와 레코드판 수납공간이 있는 커다란 전축이 안방 제일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아버지는 슬라이딩 도어를 열었다 닿았다 하며 흡족해하셨다.


전축이 완성되자 군인 아저씨는 서운해하셨다. 부대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하셨다. 점심으로 대접한 엄마의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좋아하셨다. 무엇보다 전축 제작은 아저씨가 정말 즐기시는 일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전축은 열어보는 사람이 없고 레코드 판들에는 먼지가 쌓였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일부러 멀리 하기도 했을 거다.

몇 번 이사를 하는 동안 전축과 그 많던 레코드 판이 어디론가 다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소중한 것도 알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가 아끼던 물건들을 챙기기엔 엄마의 충격이 너무 컸고 자식들은 어렸다.


얼마 전 시골에 갔었다.

산 중턱에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잎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새어 나오고 꽃잎은 금빛으로 반짝였다. 달큰하고 고요한 향기가 그리움과 아픔을 몰고 왔다.




남편은 오디오 광이다.

결혼 초엔 오디오 제작에 빠져 나를 힘들게 했다.

좁은 신혼 방에 수많은 부품들과 솜뭉치가 굴러다녔다. 해외배송도 심심찮게 도착했다.

고시공부를 한다며 돈도 벌지 않으면서 오디오 제작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나는 배가 남산 만하게 불러서 까지 아이들 과외를 해야 했다.

레코드 판도 수없이 사들였다. 아버지가 가요광이라면 남편은 클래식 파였다.

싫든 좋든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큰아들은 음악을 전공했다.


지금도 우리 집 책꽂이 한 칸은 낡은 LP판으로 채워져 있다. 진작 턴테이블이 고장 났는데 아직 장만하지 못했다.

남편의 모습을 보면 늘 아버지가 생각난다.

살아계셨다면 장인과 사위가 얼마나 죽이 잘 맞았을까!

만약이라는 말은 늘 가슴을 쓰리게 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