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할머니와 이모들.
아버지가 퇴근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셨다. 엄마는 잔뜩 화가 나서 아까부터 할머니한테 푸념 중이다.
-내가 못 살겄네. 또 어디서 술타령인 거여.
엄마, 요즘 강서방 맨날 그라네~.
.........
할머니는 별 대꾸가 없으셨다. 어쩌다 말씀을 하셔도 조용조용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하얀 얼굴에 머리는 쪽을 지시고 몸집이 자그마하신 외할머니는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셨다. 엄마는 그중 둘째 딸이었다.
할머니는 나의 막냇동생 출산 때 오셔서 한참을 계셨는데 몸이 약한 엄마 때문에 아버지가 광주에서 또 모셔 왔다.
할머니가 다시 오시기 전에는 엄마 사촌인 숙자 이모가 있었다. 숙자 이모가 가고 나니 할머니가 또 오셨고, 그 후엔 할머니의 막내딸, 그러니까 엄마보다 10년은 더 어린 막내 이모가 오기도 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 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데리고 오셨다.
할머니야 딸이니까 어쩔 수 없으셨겠지만 이모들은 가실 때 그리 좋은 감정으로 간 것 같지 않다.
어떤 조건으로 그분들을 모셔 왔는지 모르지만 약속한 기한이 넘었는지 이모들은 자주 집에 간다고 했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곱슬곱슬하고 숱이 많은 단발머리에 얼굴이 좀 검고 입술이 도톰한 숙자 이모는 말없이 집안일을 척척해 주었다. 그러나 자꾸 해를 넘기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실 숙자 이모가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진 우리에게 그런 이모가 있는지도 몰랐다.
이모는 하루 일을 마치면 언니와 내가 자는 방에 와서 같이 잤다. 그 당시 겨우 스무살이나 됐을까? 아직 어린 이모 마음에 숨겨져 있을, 남의 집(사촌 언니이지만) 일을 하는 서러움을 나는 알지 못했고, 약한 엄마를 위해 우리 집안 일 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숙자 이모가 집으로 돌아간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미안하고 너무 고마웠다고 꼭 말하고 싶다.
야무진 막내이모는 어린 나한테도 종종 엄마 흉을 보았다.
한 번은 개울로 빨래하러 간 이모에게 엄마가 옷 하나를 내밀며 갖다 주라고 했다.
빨랫감을 내밀자 이모는 눈을 흘기며 쏘아 붙였다.
"흥, 아주 없는 빨랫감을 만들어서 주는구만."
하며 거칠게 낚아챘다,
나는 이모가 나에게도 화가 난 것 같아 아무 말도 못 하고 터덜터덜 돌아오며 생각했다.
엄마는 앓아누운 것도 아닌데 왜 할머니와 이모들에게 일을 시킬까?
엄마와 이모는 친자매인데 왜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엄마는 왜 할머니가 두고 온 막내 이모를 안쓰러워하면 싫어할까?
왜 친정에도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고, 큰 이모나 외삼촌 하고도 그리 친하지 않을까?
나는 의구심이 생겼다.
혹시 엄마는 친 딸이 아닌 걸까? 그래서 자랄 때 차별 대우를 받은 걸까?
그러고 보니 엄마 어릴 때의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어릴 때 얼마동안 외갓집에서 지낸 언니 말에 의하면 엄마의 성격이 참 유별나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지 외할머니나 이모들 모두 "니 엄마 같은 사람도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추운 겨울날, 개울에 빨래 간 어린 동생에게 빨랫감을 더 찾아서 보낸 언니라는 것만 보아도 엄마와 이모 사이는 여느 자매들 하곤 좀 달랐다. 아니, 엄마의 성격이 평범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지만 혹시 모르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만의 상처가 있었는지도.
막내 이모는 엄마가 요양병원에 계실 때도 면회를 오지 않았고, 엄마 장례식에서도 그리 슬퍼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오직 아버지한테만 특별했던 것 같다.
황해도에서 혼자 월남하신 아버지가 저 남쪽 전라도 광주까지 오셔서 엄마를 만났는데, 두 분은 그 시절 흔치 않은 연애를 하시며 외할아버지에게 혹독하게 야단을 맞기도 하고, 외할머니 속을 꽤나 썩여드린 모양이다.
17대대와 도라무깡.
강상사!
아버지 이름보다 더 자주 불리는 친근한 호칭이다. 동네에서도 강상사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제법 잘 생긴 아버지는 통쾌하고 시원시원해서 술집에서도 인기였다.
참 알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한테는 그렇게 엄하고 무섭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엄마한테는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고 호탕할 수 있을까?
엄마는, 엄마한테 하듯 다른 사람, 특히 다른 여자들한테도 그럴까 봐 저렇게 민감한 것일 거다.
특히 요즘 새로 생긴 술집이 있는데 아버지가 퇴근하면 자주 들르시는 것 같아서 더 신경을 곤두 세우셨다.
그 술집 주인은 아주 뚱뚱해서 엄마는 그녀를 도라무깡이라고 불렀다.
-희야, 아부지 찾아와라~
이윽고 엄마가 큰 소리로 언니 이름을 불렀다.
언니는 내 손을 잡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다.
이전에 살던 강원도 시골 동네만큼은 아니지만 경기도 면 단위인 이 동네의 밤도 그 못지않게 어두웠다.
가게들 앞만 동그랗게 불빛이 비쳤다. 도라무깡 집은 그래도 주변에 술집들이 모여 있었서 그런지 꽤 밝았다.
언니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술집 안을 기웃기웃 들여다봤다.
뚱뚱하고 키도 큰 도라무깡이 저 안 쪽에 앉아있고 술 먹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하나도 안 이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뚱뚱한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지.... 엄마가 훨씬 젊고 예쁘지.'
엄마는 아침마다 화장대에 오래 앉아 화장을 하는데 마지막으로 빨갛게 바른 입술을 오므려서 색을 고르게 하고 나서는 한참을 만족한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거의 매일 미용실에 가서 머리끝을 밖으로 둥글게 고데했다.
아무리 봐도 얼굴 하얀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호탕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도라무깡 집에 아버지 없어.
-그라문 이 인간이 어딜 가불었을까?
엄마는 우리에게 부대로 가 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17 대대는 신작로를 한참 걸어 올라가야 했다. 동네를 벗어나 면사무소를 지나고 복지관 건물을 지나면 논이 펼쳐진다. 논이 끝나는 곳부터는 중턱에 큰 성당이 있는 산이 시작된다. 아버지 부대는 성당이 있는 산 맞은편에 있었는데 산 밑은 더 어두웠다.
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강원도에 살 때처럼 부대에 가보진 않았지만 우리에게 부대는 항상 우리를 지켜주는 친근하고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아버지 직장 찾아가는 기분으로 갔다.
17대대는 신작로 오른편에 있었다.
입구에 위병소가 있고 위병소 앞에 초소가 있었다. 초소에는 항상 철모 쓴 군인 아저씨가 한쪽 옆구리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어두운 신작로를 손을 꼭 잡고 걷던 언니와 나는 위병소 안의 흐릿한 불빛을 보고 길을 건넜다.
그때, 점점 초소를 향해 다가오는 검은 물체를 향해 보초 서던 군인아저씨가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손들엇!
동시에 밝은 후레시 불빛이 우리를 조준했다.
사실 언니와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저씨~
후레시 불빛 속에 손을 꼭 잡고 아저씨를 부르는 계집아이들을 보고 아저씨가 다가왔다.
우리는 입을 맞춰
-강 ㅇㅇ 상사 아버지를 찾으러 왔어요.
하고 말했다.
당연히 아버지는 이미 퇴근하셔서 부대에 안 계셨다.
어디서 드셨는지는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셔서 폭풍 같은 엄마 잔소리에도 허허허 웃으셨다.
표현은 안 하시지만 아버지는 이북 고향이 그리우셔서 술을 자주 드신 것 같다.
엄마의 잔소리 때문인지 나중엔 엄마와 같이 술을 드셨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잔소리하는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그리움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니 아버지가 다 가르쳤다. 술 하고 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