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진이 순직이 아저씨

추억 여행 떠나기

by 모니카

오랫동안 미루던 일을 실천했다.

식탁 의자를 갖다 놓고 장롱 위에 있는 무거운 박스 하나를 꺼냈다.

뚜껑에는 찾지 않았던 세월만큼 먼지가 쌓여있었다.

먼지를 닦고 꽃무늬 상자 뚜껑을 여니, 얌전하게 놓여있는 오래된 앨범들이 감춰 놓은 보물처럼 반갑다.

낡은 흑백 사진 속의 어리고 젊은 모습들은 그 시절을 지나온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생소하다.

볼이 터질듯한 백일 사진, 그 살이 쏙 빠지고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눈물을 글썽이며 큰 꽃병을 들고 찍은 '첫돌기념' 사진.

돌아가신 엄마의 새댁 사진, 팔순 이모의 여중생때 모습. 언니와 나를 안고 찍은 잘생긴 아버지의 젊은 모습.

한 장을 넘기면 기억을 잃어버릴 것 같아 오래오래 들여다 보얐다.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

명함 크기만 한 흐릿한 흑백 사진 속에 여섯 명의 소녀들이 웃고 있다. 뒷 줄은 동네 언니들이고 앞 줄은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들(나를 포함한)이다.

소녀들 옆에는 키 큰 군인 아저씨가 서 있다.

흑백이지만 국방색 각진 모자와 군복, 검은 군화가 보인다.

지금 만나도 알아볼 것 같은 친근한 얼굴이다.

서른 개도 넘어 보이는 콘크리트 계단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높이 선 집이 있다.

아저씨는 교회 선생님이다.

일요이면 언니들을 따라 교회에 갔다. 가사가 쓰인 큰 전지를 넘겨가며 찬송가를 불렀다. 과자와 사탕도 주어서 일요일이면 동네 개구쟁이들도 다 모였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면 모르는 아이들도 많이 왔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엔 동네 어른들도 오셨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 연극이 끝나면 촛불을 들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다. 나는 탄일종이 땡땡땡 독창을 했는데 3절에서 가사가 엉켰다. 울음보를 터트리며 안긴 은 군인 선생님 품이었다.


인생의 등장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다 멈추는 때, 그중에 하나가 군인아저씨들이 등장하는 순간들이다.

사진 속의 친구들이나 동네 언니들과 쌓은 추억보다 군인 아저씨들과 보낸 기억들이 더 정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문득 내게는 즐거운 추억이 된 그 시간들이 꽃 같은 젊은이에게는 얼른 보내고 싶은 의무적인 시간은 아니었을까 마음이 쓰였다.

그 당시 군 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다.

나와 함께 해준 그 젊은이들의 36개월은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내 아들은 21개월을, 그것도 서울에 있는 육사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매주 면회도 가능했다. 일요일이면 부대안 장교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반주를 했다.

내가 보기에 비교적 편한 군 생활에 좋아하는 피아노도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아들은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내게는 즐거운 추억이 된 그 시간들이 꽃 같은 젊은이에게는 스쳐가는 의무적인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선생님인 아저씨는 입대 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어느 교회 전도사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힘든 군 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심을 유지하려고 애썼을지 모른다.

한편으론 교회가 고된 훈련과 격리된 생활의 도피처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꼭 알려드리고 싶다.

한 조그만 계집아이에겐 소중하고 귀한 추억거리를 선사하셨다는 것을.


많은 군인 아저씨들 중에는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다.

재진이 순직이 아저씨.

재진이 아저씨는 고려대를 다니다 입대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재진이 아저씨를 언니 과외 선생님으로 붙여주셨다.

가끔 저녁에 우리 집에 오셔서 언니 공부를 가르치셨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크고 비쩍 마른 재진이 아저씨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언니를 붙잡고 공부를 가르쳐 주셨다.

순직이 아저씨도 연세대를 다니다 입대한 아저씨였다. 조용한 성격의 재진이 아저씨와는 달리 말하기를 즐기는 밝은 성격의 아저씨였다. 몸집이 좋은 순직이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를 깔깔 웃게 만들고 엄마를 기분 좋게 했다.

엄마도 조카처럼 재진이 순직이 라고 불렀다.

참 그립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까마득한 옛날 일들을 떠올려 보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

혹독한 훈련과 고립된 생활을 견뎌야 했을 아저씨들이 우리 가족과의 인연을 통해 눈곱만큼이라도 위로와 위안을 받았기를 하는 바람이.


최근 브런치 현루 작가님이 연재하시는 '인연'을 읽으며 인연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인연은 때로 멀리 떠난 듯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본질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소중한 인연은 끊어지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