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 건너 앞동네는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아침 잠결에 우르릉 쾅쾅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내다보니 5층 빌라가 무너지고 있었다.
포클레인이 거대한 집게발로 쾅쾅 찍어 누르고, 다지고, 지붕과 벽을 들어 올려 내동댕이 친다.
36도를 육박하는 폭염 때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세 달째이다.
대부분의 집들은 사라졌고 군데군데 덩치 큰 빌라들만 이제 다 포기한 듯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반쯤 허물어진 벽을 아직도 움켜쥐고 있는 담쟁이가 애처롭다.
저곳도 한때는 밤늦도록 포근한 불빛과, 새벽까지 졸던 가로등과 푸른 십자가가 있었다.
몸속의 혈액처럼 골목 굽이굽이 사람과 자동차가 누볐다.
생명이 있는 곳이었다.
생명의 장기가 다 빠져나가고 죽어가는 건물 반지하에서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는 안나 할머니가 혼자 남아 우셨다.
"어디로 갈꼬 어디로 갈꼬.
신부님, 좀 알아봐~ 어디 갈 데 있나 알아봐~"
"갈 데 다 해놨다니까!"
걸걸한 여사제님이 안심하라고 다독여도 두려움과 절망에 우셨다.
저 속에 쌓여 있을 희망과 기대와 절망과 슬픔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황색 포클레인은 천천히 쉴 새 없이 헤집고 다닌다.
베란다 앞에 서서 내 시야가 모자라게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나는 3월에 돌아가신 엄마를 불러본다.
아직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거나 같이 찍은 사진을 찾아보는 것이 힘들다.
엄마와 특별히 애틋했다거나 너무 큰 슬픔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자주 뵐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좀 오랫동안 못 뵙고 있을 뿐인 것 같다.
곧 다시 만날 것 같다.
엄마 이야기를 내가 언젠가 글로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말하자면 나의 엄마는 철저히 꿋꿋하게 끝까지 외롭게 사신 분이다.
아버지가 남긴 '미망인 연금' 만이 당신의 자존심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단단히 움켜쥐고 사신 분이다.
외할머니가 '니 엄마는 온실 속의 화초야'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아버지는 엄마를 위해 사셨다.
그래서 미망인 연금은 엄마한테는 아버지였다.
섭섭하지만 자식보다도 더 우선이었다.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도 도와주지도 않으셨다.
자식들이 결혼하여 뿔뿔이 흩어져 살아도 양평에서 혼자 미망인 연금과 함께 씩씩하고 당당하게 사셨다.
그런데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게 되자 연금 통장과 도장을 다 큰아들한테 맡겨야만 하셨다.
그건 엄마의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똑같았다.
연금 통장이 엄마한테 없다는 것은 그때까지의 자존심과 당당함이 다 무너진 것과 같았을 거다.
더 이상 엄마를 지탱해 줄 원동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심장의 파동이 멈출 때까지도 아쉬운 소리, 죽는소리 하나 안 하시고 조용히 돌아가셨다.
아마 다 포기하고 40 초반에 갑자기 이별한 아버지를 만난다는 일념만 있으셨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폐에 물이 차서 요양병원과 상급병원을 오가며 셔틀 치료를 받으실 때 주치의는 엄마의 모든 장기 기능이 최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때 주입했던 약물이나 수액, 인공영양은 엄마에게 이미 아무 소용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몸속에 들어오는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 텐데, 요양병원에서는 계속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겠지.
엄마에게는 그것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재개발 결정이 나고도 한참 동안 동네는 살아 있었다.
밤이면 켜지는 불들이 있었다.
점점 불빛이 줄어들고, 가로등도 십자가도 사라져, 칠흑 같은 어둠을 실감하게 했다.
어느 날
강한 것들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엄만 괜찮아'
전화할 때마다 늘 낮게 말씀하셨는데
엄마의 폐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쪽 폐가 안 보일 정도로 물이 차 상급병원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옆 장기들도 하나 둘 빠르게 무너졌다.
엄마는 더 이상 살 것을 포기하고 그냥 죽음을 기다리셨는지도 모른다.
허용된 한 달에 한 번 면회에서도 그저 무표정으로 조용히 힘들어하셨으니까.
그리고
아직은 엄마와 이별할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
90 평생 육신이 몸만큼 작은 관 속에 푸르고 고요히 누워있었다.
불길 속에 엄마 관이 들어가고 흰 단지가 되어 나와 50년을 기다린 아버지 옆에 나란히 누우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엄마는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부활절에 가셨다.
연로한 목사님은 부활절에 발인예배를 드리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며
엄마는 곧 예수님을 만날 거라고 하셨다.
재개발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희고 높은 아파트로 부활할 거다.
나는
더디게 진행되는 재개발처럼 엄마의 죽음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저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처럼 휘황하지는 않을지라도
머지않아 엄마는 내 마음속에 하얗고 곱게 피어날 것이다.
그때는
엄마 휠체어를 밀며 언니와 남동생과 병원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예쁜 꽃밭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