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선생님은 여기까지야

by 모니카

ㅡ"쟤 왜 저래요?"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아 발을 쾅쾅 구르고 책을 박박 찢어서 바닥에 던지며 짜증을 내는 나예를 아이들이 흘끔흘끔 쳐다본다.


나는 나예한테도, 호기심과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에게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나예가 이럴 때 이유를 묻던가 야단을 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예야, 오늘은 그냥 집에 가라."


낮은 어조로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나예는 아직 분이 덜 삭혀 씩씩 거리면서 나가 버린다.




4학년인 나예는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파란 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예쁘고 통통한 아이다.

학원에 들어올 때는 항상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인사하고 흥흥거리며 기분 좋게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들고 있던 연필로 책이 찢어지도록 박박 긁는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책을 사정없이 찢어서 바닥으로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운다.

어떨 때는 의자를 발로 차고 집어던지려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처음엔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른 아이들을 생각해서 나예를 돌려보내고 나예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나예 어머니는 놀랍도록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끝까지 들으시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해요.

나예와 유주 둘 다 ADHD예요.

약도 먹고 있고 상담도 받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 맡겨서 죄송하지만 잘 부탁드려요.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네? 유주도요?"


사실 나예의 경우 짐작은 했다.

과거에 비슷한 아이가 있었는데 정도가 너무 심해서 몹시 애 먹다가 어머니께 정중히 그만둘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연년생인 나예 오빠 유주는 자리에 앉으면 곁눈질 하나 하지 않고 조용하고 차분해서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유주가 사실 더 무서워요. 항상 나예랑 부딪쳐서 시작되는데, 나예는 금방 풀어지지만 유주는 한 번 폭발하면 말릴 수가 없어요."


그러고 보니 이 남매는 꼭 붙어 앉았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것 같아 떨어져 앉으라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예 어머니 말을 듣고 보니 유주도 이상한 점이 있긴 했다.

머리를 박고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어서 가 보면 총이나 로봇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특히 총은 아주 세밀하게 진짜처럼 잘 그려서 나는 여러 번 칭찬했다.

그리고 공부하기 싫어서 자꾸 딴짓한다 생각하고 약속을 하곤 했다. 어디 어디까지 공부하면 그림 그려도 좋다고.

유주는 일단 약속이 합의되면 철저히 지켰지만 그 이상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가로세로 낱말 퍼즐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착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도 꽤 난이도가 있는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나한테 물어서라도 끝까지 풀어냈다. 다 풀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점도,

낱말 퍼즐 같은 것은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어려우면 금방 포기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긴 했다.


나예 어머니 말을 듣고 관찰해 보니 나예는 두 가지 경우에 폭발하는 것 같았다.


오빠와 둘이 사이좋게 이야기하다 갑자기 나예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오빠를 때리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짐작하건대 유주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하던 짓을 계속하면서 나예를 약 올리고 흥분하게 하는 것 같았다.

둘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과 은근히 속에서 타는 숯불처럼 서로 대치됐다.


나예를 화나게 하는 또 한 가지는 어려운 문제였다.

쉬운 것은 기분 좋게 풀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잘 안 풀리면 그 짜증스러움을 못 참는 것 같았다.

참으려는 노력과 화나는 감정이 서로 싸우다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것 같았다.




나예를 집으로 보내고 나서도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책을 그대로 두었다.

내일 네가 한 짓을 보게 할 심산이었다.

아이들이 수군 거렸다.

한참을 망설이다 엉망이 된 책과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이리저리 맞춰서 투명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다음날 나예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왔다.

자기도 모를리는 없지만 엄마와도 많이 얘기했을 것이고 민망하기도 해서 취한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나는 나예가 차분할 때 다짐을 받아놓을 생각으로 말했다.


"나예야, 이제부터 화가 날려고 하면 하던 것 다 덮고 열까지 세자. 그래도 안 풀리면 그냥 밖으로 나갔다 오기로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나예가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도 안 그러고 싶은데 못 참겠어요. 약도 먹고 오늘 이따가 상담받으러 가요.

엄마도 화나려고 하면 나가서 소아과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다 들어가라고 했어요."


내가 나예의 문제를 알고 있다는 것을 표 내고 싶진 않았는데 나예가 먼저 얘기했다.

엄마와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알았어~ 니가 노력하니까 금방 좋아질 거야. 그러니까 화나려고 하면 선생님한테 먼저 말해."

"알았어요."


그 후로 나예가 흥분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나는 책을 덮게 하고 조용히 앉아 숫자를 세라고 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게 했다.


하지만 그건 작은 노력이고 발버둥일 뿐이었다.


서로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나예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고, 급기야 어느 날 크게 난리를 친 후 엄마는 남매를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오빠 주유가 폭발하는 걸 보진 못했지만 그랬다면 아마 나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다.



20년 학원 선생 경력이지만, 이런 경우는 항상 초짜처럼 겁나고 어렵다.

늘은 거라곤 처음처럼 어쩔 줄 몰라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내막을 어디까지 알아야 하고, 간섭해도 되는 단계는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증세가 좋아지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런 노력을 할 자신도 없지만,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참 어렵다.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엄마가 모든 걸 오픈하고 부탁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남매가 오지 않으니 솔직히 홀가분하다.

하지만 '그런 애들도 있었어.'

하고 가볍게 넘기기엔 뭔가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그저 혼자 위안 삼아 말한다.

'나예야 미안해, 선생님은 여기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