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반성한다

by 모니카

먹자골목은 밤 9시가 되니 횟집 활어처럼 펄펄 기운이 났다.

금요일 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해방감과 여유로움이 넘쳐 괜스레 해이해진다.

초저녁부터 왔는지 거나하게 취해 기분 좋게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이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가게를 꽉 채웠다.

10시 이후로는 주변 아파트 민원으로 노상 영업이 금지되기 때문에, 벌써부터 하나 둘 실내로 자리를 옮기느라 더 부산스러웠다.



근처 상가에 일터가 있는 한 부부도 아까부터 먹자골목을 기웃거리고 있다.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이 부부는, 거의 매일 일이 끝나는 9시면 서로 묻지 않아도 먹자골목으로 향한다.

집도 먹자골목에 바로 붙은 아파트지만 일 끝나면 어차피 늦은 시각, 저녁밥 겸 한잔 술이 습관이 되었다.


확실히 평일과 달리 활기가 넘친.


"홍어 먹을까?"

남편이 묻는다.


"그게 무슨 홍어야 가자미지"

"그럼 고기 먹을까?"

"이런 데서 파는 고기는 다 안 좋은 수입이야."

"그럼 이 집 들어갈까?"

" 나 이 집 싫어. 순 조미료 덩어리라 먹으면 꼭 배가 아파."


먹자골목을 빙빙 돌며 이것도 저것도 다 마다하는 아내 말에 남편은 묵묵히 뒤따른다.


"그냥 이 집 들어가자."


좀 한산한 횟집이었다.

아내는 못마땅 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 따라 들어간다.


"방어 한 마리?"

남편이 묻는다.


"얼마래?"

" 만 육천 원."

"괜찮네."

"산오징어나 낙지 먹을까?"

"난 산 건 못 먹어."


" ...... 얼른 시키자, 조금 더 있으면 땀나겠다."


배가 고프면 식은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남편은 주문한 방어가 나오자마자 고개도 들지 않고 먹기 시작한다. 소주도 스스로 자작하며.

아내는 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깨작깨작 먹는다. 소주는 먹을 줄 몰라 남편이 따라준 맥주를 홀짝 거린다.

부부는 둘 다 말이 없다.


아내는 중년의 남녀가 이 늦은 시간에, 술집에서 아무런 대화도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인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일터 옆에 맛있는 뽈찜집이 있어 부부는 점심때마다 그 집으로 출근했었다.


"내일 어머니랑 애들 데리고 올까?

대구 지리랑 뽈찜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마침 생신을 맞은 시어머니와 아이들과 같이 먹으러 오자고 아내가 제안했다.


"부부였어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잔뜩 흉 봤네."

반찬을 갖다 주며 엿들은 주인아주머니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말했다.

주인아주머니는 그 부부를 불륜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대낮에 매일 밥을 같이 먹는 좀 의심스러운 사이로.

그러나 진짜 오해의 불씨는 그들의 태도였다.

소곤소곤, 조용조용.

옆사람도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릴까 말까 하는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니, 절대 부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손님이니 반갑게 맞아주는 척은 했지만 정말 꼴 보기 싫었다고 했다.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남편은 밖에 나오면 더 말이 없고, 말해도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그런 오해의 빌미는 순전히 남편 탓이라고 아내는 생각했다.




"주말인데 낼 뭐 할까?"

아내가 묻는다.

"글쎄"


부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만 아내는 수상한 사이로 보이는 것도 싫고, 설사 부부로 보이더라도 한바탕 싸운 부부처럼 보이는 것도 싫어서 말을 붙여본다.

하지만 아기자기 대화를 시작할 남편이 절대 아님을 알기에 크게 떠드는 TV로 눈을 돌렸다.


벽걸이 TV에서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소년이 나왔다.


'12살 소년은 왜 학교를 나왔나!'

크게 자막이 나왔다.


-선생님을 바꿔 주세요. 종교를 강요해요.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잖아요.-


소년 옆에 세워진 피켓에 '학습권한' '종교의 자유' 등의 내용이 담긴 빼곡한 글이 소년을 예사로운 아이가 아님을 짐작케 했다.


"선생님, 쟤는 기도 안 해요."


아이들과 선생님이 나왔다.

소년은 친구들이 이르면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고 말했다.


광신적인 교사가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했나 보군. 하느님을 모르는 불쌍한 백성들이라고 하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겠지.


나도 그랬었지.. 고등학교 때 영어담당인 담임 선생님은 수업하기 전에 항상 영어 성경 구절을 외우게 했지. 권유가 아니라 강제로.

외우는 게 소극적이면 선생님은 히스테리를 부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

그때는 혼나기 싫어서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 외웠더랬지.


옛날까지 떠올리며 아내는 시끄러움 속에서도 고독을 느꼈다.

TV 내용에 몰두하려고 애썼다.

남편은 이제 배가 좀 찼는지 TV로 눈을 돌렸다.

역시 아무 말도 없다.


들어올 때 썰렁했던 횟집이 시끄러워졌다.


"저거(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TV속 아이) 어떻게 생각해?"

아내는 말없는 남편한테 뜬금없이 묻는다.


"........"

남편은 대답이 없다


"인격적인 신이라고 우리가 즐겨 말하잖아. 그것이 신을 가장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처럼. "

"......"


"근데 신이 인간처럼 제한적인 존재라면 기도가 너무 허무해지지 않아? 그동안 신의 응답에 감동하고 울기도 했는데."

계속 아내 혼자 떠든다.


".......맥주 한 병 더 먹자."

듣기만 하던 남편이 드디어 말했다.


"심각해졌어?"

"응"


아내는 안다.

남편은 밖으로 나오는 말보다 몇백 배 많은 생각을 담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그 생각이 조금씩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시간도 늦었고 한 잔 들어가니 말문이 열린 남편이 갑자기 짜증이 나서 아내는 벌떡 일어났다.


"가자"


남편이 아쉬워하며 일어난다.


잔뜩 부어 있는 아내 팔을 잡으며 남편이 말한다.


"길 건너 세계 맥주집이 생겼는데 맛보러 갈까?"


언젠가 독일 맥주의 은근함에 즐거웠던 기억이 나기도 했지만 화가 잔뜩 난 아내는 단박에 말한다.


"싫어! 돌부처처럼 앉아 있으려면서 뭘 자꾸 가재!"


씩씩 거리고 앞장서는 아내 뒤를 남편이 아무 말 없이 따라간다.




맞다.

과거에 쓴 나와 나의 남편 이야기이다.


남편은 한 마디로 '도(道)'를 찾는 좀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세 가지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받들고 소중히 여기는데,

첫째가 자애로움이요,

둘째가 자기 절제요,

셋째가 함부로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 책상 위에 펼쳐진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남편을 잘 대변해 주는 말이다.


'도'말고 '돈'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허우대가 커서 작은 나를 20kg 쌀 포대 들 듯 번쩍 들 체구이다.

결혼 생활 30년 동안 남편이 앓아누운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건장하다.

학창 시절 기계 체조를 해서 그런지 특히 상체가 다부지다.

접촉 사고 시 씩씩 거리고 나온 조폭 같은 사람도 남편의 체구를 보고 기가 죽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항상 남편을 내 신변 보호자로 생각했다.


그런 남편이 나이가 드니 이곳저곳이 무너지고 있다.

이빨 대공사가 시작됐고, 산악자전거로 단련된 무쇠 같은 다리는 연골 침을 맞고 있고, 혈압과 당뇨도 경고를 받았다.

나는 아직 그 흔한 고지혈 약도 먹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참고로 우리는 동갑이다.


오늘 글 제목이 왜 '나는 오늘 반성한다' 일까?


지난날 글을 다시 보니 남편과 관련된 모든 글에서

나는 항상 남편한테 쏘아붙이고, 타박하고, 공격하고, 싸움을 걸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항상 벽처럼, 돌부처처럼 있었고, 그게 더 내 짜증과 화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나도 대화를 하려는 태도가 아니었다는 게 이제야 보인다.


그런데

요즘 속절없이 무너지는 허우대를 보니 '아차' 싶다.


진짜 화나면 잠수 타는 고질병이 있었는데 그것도 사라졌다.

언제나 의지 할 수 있는 산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똑같이 보호도 받아야 할 나약한 존재였다.

부드럽게 대하니 어린애 같기도 하다.

아프다는 소리는 안 하지만 행동이나 표정에서 힘듦이 다 드러난다.

자기 무릎에 스스로 침 놓고 뜸뜨는 모습이 애처롭다.

기도 죽고 풀도 죽어 보인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게 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라도 따야 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역시 부부는 서로 맞붙들고 한쪽이 기울지 않게,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깨닫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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