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에 대한 회상

넓적사슴벌레 이야기

by 모니카

방충망 매미


맴맴맴맴맴맴 매~에 맴 쓰르르...

장마가 끝났다고

동트자마자 울어댄다

곧 사라질 운명이라

그렇게 필사적이니?

내 너가

땅속에서 수년을 버티다 나와

힘겹게 허물을 벗고

여름 한철 살다 간다 하니

시끄러워도 참으마

다만 방충망 말고

저 나무에 가서 울면 안 되겠니?


털매미 깽깽 매미 쓰름매미 참매미 세모배매미 호좀매미 애매미...


갑돌이 갑순이 간난이 돌쇠 점순이 막둥이..가 생각나

너를 미워할 수 없구나


방충망에 매미가 붙었다. 무성한 나무도 많건만 하필 13층까지 올라와서 울까?

우는 건지 , 노래하는 건지, 소리를 지르는 건지... 악을 쓴다.

짧은 생을 산다 하니 참기로 한다.

여름을 여름답게 해 주니까 눈 감아 주기로 한다.




2024년 기록적인 폭염도 슬금슬금 꼬리를 빼기 시작한다.

한낮은 아직 뜨거운데

밤바람은 살갗을 상쾌하게 한다.

아파트 무성한 나무에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더워도 가을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다.

요란했던 밤 풀벌레 소리가 스러졌다.

어디로 갔을까?

하릴없이 높은 나무를 올려다본다.



소리 없이 사라진 것들이 생각을 잡는다.





나는 오늘 한 마리의 벌레를 부르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곤충이겠으나 곤충이 벌레에 속한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나에겐 기어 다니고 징그러운 것은 다 벌레이다.

사라진 벌레들이 내 생각 속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것들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 주변 대다수가 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 정도가 심하다.

사탕 싼 비닐만 밟아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날 보고 유난을 떤다고 했으나 내 사연을 들으면 고개를 크게는 아니지만 끄덕여 주었다.


나의 이런 벌레 기피증은 먼 옛날 어떤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어린 날, 양 옆으로 높은 울타리가 쳐진 음습하고 좁다란 시골 골목길을 걸을 때였다.

저 앞에 작은 검은 물체가 축축한 땅 위에 있었다. 생각 없이 다가갔더니 그 검은 물체는 죽은 쥐였다. 죽은 쥐 복부에 수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쥐라는 것만으로도 비명을 지를 노릇인데 그 시체 속에서 수백 마리도 넘을 것 같은 구더기가 바글대고 있었다.

징그럽다, 놀랍다, 혐오스럽다, 끔찍하다, 메스껍다, 공포스럽다... 그 순간을 표현하기란 이 모든 말이 부족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라 도망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을 되새는 것 만으로 힘겹다.


금도 TV를 보다 조밀하게 몰려있는 장면(예를 들어 벌 떼, 개미 군락, 바닷속 작은 물고기 떼, 특히 꿈틀거리는 밀웜)만 나오면 식구들은 나를 쳐다본다.

공포증까진 아니지만 하여튼 마주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엄마는 그러면서 어떻게 시골에서 살아요?"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 부르는 엄마한테 아들이 묻는다.

"시골은 다르지. 자꾸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뭘 모르는 소리라고 타박을 듣지만 변명은 못한다.

교회 수련회 때 시골에서 본 손바닥 만한 나방도 적응이 안 되니까.

시골에 가서 살 확률도 적지만 그래도 '적응'이라는 말을 신뢰하기 때문에 뭐 살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장황한 시작은 실은 한 곤충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 매미와 풀벌레들이 내 생각에 들어오자 덩달아 따라 들어왔다.


나는 치와와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오랫동안 슬픔에 젖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름이 둘리였다. 옆집 잡종 진돗개한테 두 번이나 물려 피로 범벅된 것을 세숫대야에 담아 가깝지도 않은 동물병원으로 슬리퍼가 벗겨졌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내달렸다. 두 번째는 결국 살려내지 못했다. 나는 안양 가는 버스 길 가 노루표 페인트의 노루를 보면 노루를 닮은 둘리가 생각나서 울었다. 그리고 둘리 이야기를 쓴 일기장도 찢어 버렸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개에게 정을 주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살았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넘게 지난 어느 해,

나는 강아지도 아니고 그렇게 싫어하던 벌레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아들이 벌레 한 마리를 주워왔다.

아파트 상가 벽에 붙어 있는 것을 가져왔다고 했다.


우리 아들은 벌레 기피자 엄마와는 다르게 곤충에 호기심이 많고 무척 좋아한다.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손잡고 걷다 벌레(지렁이, 풍뎅이, 개미 등 모든 벌레)를 만나면 그날은 산책 시간이 배나 길어졌다. 쪼그려 앉아 벌레들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며 벌레들과 이야기까지 나눴다. 나는 멀찌감치 앞서서 관찰력이 뛰어난 아들을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빨리 오라고 독촉해야만 했다.

그저 엄마로서 '파브르 곤충기'를 사주었고 아들은 책이 헐도록 보았다.




검색해 보니 '넓적사슴벌레'였다.

한 7~8센티미터 정도 되는 광택이 없는 검은색 벌레였는데 납작한 몸에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뿔인지 더듬인지가 있었다.

멋있게 생겼다고 인정은 하지만 그것도 벌레인지라 처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흥미 있어하는 아들이 기특하기는 해도 벌레까지 만지고 쓰다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이 집도 사고, 먹이(젤리)도 사고, 놀이 통나무도 넣어주고 애지중지하는 걸 보니 슬슬 관심이 갔다.

그놈 집이 거실에 있어서 가끔 잘 노나, 밥은 다 먹었나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놈이 '으쌰' 하고 놀이 통나무를 드는 걸 보고는 신통해서 웃음까지 났다.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막대기 같은 것을 대면 공격자세를 취하고 대번에 꽉 물었다.

식성도 좋아 단감이나 수박 같은 과일도 넣어주면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조용한 밤이면 그 녀석이 통나무 사이를 노니는 소리도 났다.


뒤치다꺼리야 아들이 맡아했지만 그렇게 한 식구가 되었다.




그런데 그놈이 죽었다.


5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팔팔하던 녀석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비실비실 움직이며 쉽게 목숨줄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삼사일을 버텼다.

죽는 과정이 보기 싫어 애써 외면하기는 했지만 온 신경이 쓰였다.

간혹 뒤집어져서 발을 까딱까딱하면 아들이 얼른 바로잡아 주었는데 그런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밤, 플라스틱 집 벽을 치는 딱딱 소리가 유난히 컸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 바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보니 녀석이 발랑 뒤집어져서 심하게 버둥대고 있었다. 얼마나 버둥댔는지 다리도 몇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곧 움직임이 멎었다.

뒤집어지면 발버둥 치다 기진해서 죽는다고 하던데 너무 늦게 들여다봤나? 벽을 치는 딱딱 소리가 유난히 컸는데 살려 달라는 신호였나?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은 칫솔로 몸을 닦아 줬는데 그 칫솔이 주방에서 쓰던 거라 혹시 세제 때문이 죽은 게 아닌가 자책했다.


우리는 잠시 그 녀석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어떻게 해 줘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수명이 1~2년 이라니 명대로 살고 간거라고 서로 위로했다.

빈 화분에 묻어 주려다가 아들이 지꾸 생각날 것 같다 하여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주인이 사라진 물건을 없애는 일이 가슴 아픈 건 곤충도 똑같았다.


비록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마음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정이 들었나 보다.

정이란 내가 모르고 있던 감정까지도 뒤늦게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벌레가 좋아진 건 아니다.

다만 나와 인연을 맺은 것들은 그 속에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빠져나온다.


세상에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내가 불러주지 않으면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요,

아무리 하잘것없는 것일지라도 내가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다가와 큰 의미가 되어준다.




이전 06화수사님의 오카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