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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uCHO Dec 19. 2023

일본 드라마와 소설에서 언급되는 ‘캐리어’는 누구인가?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 문화


“조금 전 만난 두 명의 간부 경찰, 둘 다 ‘캐리어’ 인가요?”

“아니, 키 작은 사람이 ‘캐리어’이고, 키 큰 사람은 ‘논 캐리어’야.”

 

일본 드라마 또는 소설을 보다 보면 가끔씩 ‘캐리어’ 또는 ‘논 캐리어’라는 용어가 나온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일본 고위 공무원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위 용어를 알지 못했다. 최근 일본 드라마와 소설을 보다가 일본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캐리어’는 일본 정부를 이끌어 가고 있는 고급 공무원을 말한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국가고시(행정/외무/기술) 출신의 엘리트 공무원.


강력한 관료 국가인 일본에서 ‘캐리어’가 누구인지 알아본다.

 

‘캐리어’ · ‘논-캐리어’는 누구인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점령국 미국의 영향 아래 1947년 새로운 공무원제도를 시행했다. 이와 함께 신분제는 폐지되었으나, 현재도 이른바 ‘캐리어(career)’로 지칭되는 ‘고등관’ 지위의 특수 관료 계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관료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캐리어’로 불리는 고급 관료 집단.
 

일본의 관료(공무원)는 크게 2 종류로 나누어진다. 국가공무원 종합직 시험’에 합격하여 중앙부처에 근무하고 있는 ‘캐리어(career)’와 ‘국가공무원 일반직 시험’에 합격하여 중앙부처에 채용된 ‘논-캐리어(Non- career)’.


‘캐리어’와 ‘논-캐리어’는 채용 시점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가는 길이 다르다.


‘종합직 시험’은 우리나라의 고시(행정/외무/기술)와 같이 난이도가 높고 명문 대학 출신 응시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고, ‘일반직 시험’은 ‘종합직 시험’보다 난이도가 낮고 폭넓은 대학 출신자가 응시한다.

 

일본 공무원 중 ‘종합직(캐리어)’의 비율은 약 7%.

[공무원 구성비]

고졸 일반적 42% / 대졸 일반직 30% / 전문직 등 21% / 종합직(캐리어) 7%


‘캐리어’와 ‘논-캐리어’는 어떤 차이가 있나


맡는 업무가 다르다


 ‘캐리어’와 ‘논-캐리어’의 신입 시기에는 업무 내용에 큰 차이가 없으나, 3년째 이후의 업무 내용에는 변화가 나타난다.


‘캐리어’는 국가 정책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중심적인 존재로서 일하며, 각료나 국회의원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또한 1~3년의 주기로 중앙 부처의 관계 부서 내에서의 이동을 반복하는 것도 ‘논-캐리어’와의 큰 차이.


'논-캐리어'는 사무처리 등 정례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캐리어'가 기획·입안한 정책을 실제로 운용하는 것이 '논-캐리어'의 역할.


승진할 수 있는 계급이 다르다


‘캐리어’와 ‘논-캐리어’는 승진 속도 뿐만 아니라 갈 수 있는 위치에 차이가 있다.

 

‘캐리어’는 간부 후보로 채용되기 때문에 대체로 3년째가 되면 국정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되고, ‘캐리어 그룹’에서 우수한 사람은 중앙부처의 ‘국장급'이나 '사무차관급'으로 승진할 수 있다. ‘사무차관’의 연봉은 약 3천만 엔.


반면 ‘논-캐리어’는 국정과 직접 관련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중앙부처의 ‘과장급’까지가 한계로 여겨진다. ‘과장급’의 연봉은 약 1,200만 엔.


[일본 중앙부처 관료 계급]

· 大臣(장관) - 副大臣 -政務官 -次官 -局長 -内閣官房(내각관방) - 部長 - 審議官 - 課長 - 参事官

· '大臣, 副大臣, 政務官은' 정치인이 임명되기 때문에 공무원 출신이 갈 수 있는 최고의 계급은 ‘事務次官’

· 고급 관료는’ ‘국장 이상’


‘캐리어’가 이끌어 온 일본

일본 도쿄의 중심부 치요다(千代田) 구의 ‘가스미가세키’는 황궁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가스미가세키'는 지명이지만 '중앙 관청' 또는 '관료 사회'를 지칭하는 보통명사 처럼 사용된다.


'가스미가세키' 일대는 법무성, 경제산업성, 재무성, 국토교통성, 총무성, 내각부, 검찰청, 경찰청 등이 밀집해 있는 최대의 관청가. ‘가스미가세키’ 바로 옆에는 국회와 의원회관, 총리 관저, 집권 자민당과 제1 야당 민주당사 등이 들어선 나가타초(永田町가 있어 이 일대는 실로 일본 정치·행정의 중추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청사, 과천 청사, 대전 청사,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한 군데 모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법무관의 정점인 사무차관은 책상 위에 놓은 그 서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관방 내에서는 비서 과장과 관방장이 결재를 마쳤고, 이제 사무차관의 심사가 남았을 뿐이다. 그가 도장을 찍기만 하면 명령서는 드디어 법무장관실로 전달되어, 그곳에서 열 세 명째이자 마지막 결재자인 장관의 판단을 기다리게 된다. (중략)

저 바보를 어떻게 설득할까. 사무차관은 고민에 빠졌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13 계단’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일본의 고급 관료들은 정치인 출신의 소속 부서 장관(대신)을 내심으로 무시하고 본인들이 국가를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특히 그 정점인 '사무차관'.


일본 중앙부처 정책 형성의 핵심은 부처의 진정한 실력자인 ‘사무차관’이다. 각 부처(성청)의 ‘캐리어’는 사무차관의 말 한마디에 좌우된다.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장관은 관료들에게 ‘손님’으로 불린다. 자리만 채우고 있다 때가 되면 떠나는 뜨내기손님 같은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장관과 함께 총리가 임명하는 정무차관의 별명은 ‘맹장’이다. 있어도 별 도움이 안 되고 괜히 골치만 아픈 존재라는 뜻이다. 부대신 역시 정무차관의 윗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세계 속에 자리 잡은 대국 일본을 만든 것은 부패의 악취가 나는 정치인 집단이 아니라 우수한 행정 관료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패전의 잿더미에서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일사불란한 일본의 관료, 관료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일본 관료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경제 부흥의 공로자로 오랜 기간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관료제 조직 자체가 강력한 정치권력집단으로 변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집권 정당의 정책 실현 책임자인 각 부처 장관(대신)의 기능을 침식하고, 나아가 사실상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는 ‘관료정치’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 일본의 현실이다.


정치와 행정의 주종 관계에 있어 ‘하극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종 법률 제정 시 형식상 의회가 심의를 하고는 있지만 내용은 관료가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관료 기능이 커지면서 ‘관료 망국론’ 또한 만연하고 있다. 특히 ‘관료 왕국’이랄 수 있는 일본의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종합직(캐리어) 시험 합격자 출신대학 순위 (2023년 春)

[国家公務員採用総合職試験(2023년春)合格者 出身 大学 上位10]


1位 : 「東京大」(도쿄대) 193人

2位 : 「京都大」(교토대) 118人

3位 : 「北海道大」(혹카이도대) 97人

4位 : 「早稲田大」(와세다대) 96人

5位 : 「立命館大」(리츠메이칸대) 78人

6位 : 「東北大」(도후쿠대) 70人

7位 : 「中央大」(주오대) 68人

8位 : 「岡山大」(오카야마대) 55人

9位 : 「九州大」(큐슈대) 51人

9位 : 「慶應義塾大」(게이오대) 51人


출처: 日本 人事院 (NPA : National Personnel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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