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큰 규모라 물리치료실이 길게 연결돼 있어 칸막이 커튼 속 제법 많은 환자들이 기기치료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을 기다린다. 아침 시작 시간에 가도 무조건 대기는 기본이었다. 게다가 그 무렵 원장선생님이 모 방송국에 출연하심으로 인해서 상황은 더 심해졌다.
밖에서 대기는 물론 칸막이 침대 안에서도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원장님을 만나기 전 전기 치료, 물리치료, 온열치료 등을 진행하며 누워서 대기해야 했다. 이 무료함을 달래주는 것은 치료사 님과의 잡담이었다.
-원장님 네 고양이가 사라져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었어요.
-어쩌다가요?
-아니 에어컨 청소하는 사람들이 왔었대요. 근데 고양이가 없어진 거예요.
-이를 어째.
-그니까 낯선 사람이 오면 고양이는 숨잖아요. 그게 어디 숨은 지를 몰라서 온 집을 다 뒤지고, 학교 갔다 온 원장님 따님은 막 울고 난리도 아니었던 거죠.
-세상에. 얼마나 놀래요.
옆에서 온열치료를 받고 있던 할머니가 슬쩍 대화에 끼어드시는 것이었다.
-아이고 찾았대? 어쨌대?
나는 커튼 뒤에 목소리에 내심 놀랬다. 중년의 치료사 님은 신이 조금 난 건지 목소리가 한층 들떠서는
-그게 옷장 서랍 안에서 발견된 거예요. 무서워서 젤 깊숙한 대로 숨은 거죠. 누가 서랍을 닫은 거고. 못 찾았으면 큰 일 치를 뻔했대요.
마지막 말에 등허리에 소름이 잔뜩 돋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너 커튼 뒤 할아버지가 참전하셨다.
-아 우리 고양이도 택배 받고 보니 없는 거지.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꽤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 아이고. 삼색이그거.
-하루종일 찾다가 혹시 밖으로 나갔나 해서 애들이 아파트 입구 CCTV를 보니 나가는 게 안 나와 주변을 한 시간을 찾았는데도 없는 거야. 혹시 모른다고 고양이 탐정인가 뭔가를 부른다는 거야.
-아이고 그게 한두 푼인가?
-그래도 어째. 다시 집에 가서 뒤집은 거지. 싱크대 밑에 막아놓은 거 있잖아. 그거 뭐지?
-걸레받이
두 어르신은 환상에 만담 콤비... 였다.
-그래 그거 들어내니까. 아니 그 속에 떡하니 들어앉아 있는 거야. 어찌나 놀랬던지.
-세상에 못 찾으면 거기서 굶는 거 아니야?
-송장 치는 경우도 더러 있대. 애들이 다 울고 그러니까. 어찌나 미안하던지. 거기를 딱 막아뒀지. 아주 요물이여.
그날 진료는 만담 콤비의 활약으로 엄청 짧게 느껴졌다.
그 얘기를 들을 때는 집사가 아니었었다. 그러기에 신기한 이야기정도로만 들었던 기억이다.
몇 개월 후 나는 갑작스레 집사가 되었고 제리는 너무도 하찮은 몸을 하고 있어서 모든 것에서 위험을 느꼈다. 다행히 어릴 적은 낯선 이를 마주칠 일이 생기면 방에 미리 데려다 놓는 방식으로 별다른 일을 겪지는 않았다. 그렇게 불안하면서도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옷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서랍에 올라가 보고 옷장에도 기어올라갔다가 떨어지고를 반복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옷장 정리를 마치고 빨랫감을 들고 이동하는데 졸졸 뒤를 따라오던 제리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등골이 시원해졌다. 다시 옷장으로 가서 모든 서랍을 확인하고 옷장 각 칸을 살피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범위를 넓혀 침대 밑, 베란다, 각 방 어디에서도 없었다.
분명 나를 따라 거실로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걸까?
패닉이었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가슴 한편이파도를 맞은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몇 달 전 그 할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했다.
싱크대 밑에 그 거. 걸레받이
그래 거기다. 걸레받이를 끌어내고 핸드폰 플래시를 켜자 먼지 속에서 눈만 깜박이고 있는 제리가 보였다.
-나와. 나오라고.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눈만 깜박일 뿐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 속은 제법 넓었다. 손을 길게 뻗어 녀석의 발을 잡고 서서히 끌어 목덜미를 잡아 들어내야만 했다.
얼마나 그 속이 맘에 들었는지. 녀석은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버둥거렸지만 하찮은 몸짓은 이내 목덜미를 잡히자 단념한 듯 축하고 늘어졌다.
남편이 퇴근하고 제리의 은신처는 봉쇄되었다. 종이 상자를 접고 잘라 미세하게 들뜨는 공간을 막았다.
숨어서 지켜보기
낯선 사람이 집에 온다는 사실은 고양이에게 큰 공포로 작용한다.
집을 영역으로 하는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게 일종의 침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터폰이 울리면 제리는 소파 뒷 공간으로 피신한다. 거기가 요즘 은신처다.
상대가 생각보다 오래 머문다 싶으면 슬쩍 나와서 상대를 탐색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낯선 이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좀 귀찮은 존재가 된다. 안방 장 슬라이드 문이 고장 났을 때 온 아저씨는 일보다 고양이를 후치는 일에 더 진심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