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아무것도 모를 때라 아이들의 친구들은 그냥 고양이가 보고 싶다는 이유하나로 방문하고는 했다.
청소년들이기에 짓궂은 장난을 하거나 그런 일을 적었다.
집사 출신 방문객들은 츄르를 챙겨 오는 성의를 보이고는 했기에 별 문제가 있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다.
집사 경험이 전무한 방문객들은 고양이의 성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강아지를 대하듯이 고양이를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안아 본다든가 하는 시도로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고양이에게 스트레스를 잔뜩 안겨주고 가고는 했다.
아이들의 방문은 내가 없을 때 기습적으로 진행되기도 했기에 집에 도착해서 침대 밑에 몸을 구겨 넣은 제리를 발견하고 특단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들에게 친구 방문은 이제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기들도 고양이의 스트레스 증상을 목격하고는 거절하는 법을 터득했는지 횟수가 급격이 줄었다.
그래도 사람에게 하악질을 하거나 으르렁 대거나 하는 위협적인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리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가 병원 방문인데, 이 걸 얼마나 싫어하냐 하면 내가 씻고 옷을 입고 다가오면 병원 방문으로 받아들여 숨고는 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외출할 때 제리의 배웅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병원 데려가는 줄 알고 숨기에 급급했다. 보통 침대 밑에 돌돌 말아 버린 휴지처럼 구겨 넣어져 있고는 했다.
"애는 엄청 순해요."
주치의 선생님이 제리를 검진하시면서 말하셨다.
"근데 이런 애일수록 집에서 상전 노릇하는 경우가 많아요. 집에서 대장 노릇하죠."
"아 그래요?"
"집사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 그러니 순하죠. 위해를 받은 적이 없으니 대응도 잘 안 하는 거죠."
고양이는 집사를 닮는다고 했다. 제리가 온 지 1년 늘 좀 부족한 집사였다. 가끔 그릇 소리나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 숨을 때마다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우리 애가 순하다는 말이 왜 그리도 뿌듯한지.
근데 우리 순둥이 제리가 본색을 드러낸 날이 도래했다.
여동생 강아지 보리
여동생이 고양이를 보러 우리 집에 온 날 여동생의 반려견 보리도 방문했다.
보기에도 딱 순둥이라고 적혀있듯이 얘는 정말 순둥이다. 같은 개를 무서워할 정도로 겁이 많고,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방문할 때마다 주인처럼 반겨준다.
아파트 산책로에 산책도 시킬 겸 같은 서울 안에서도 40분이나 걸리다 보니 여동생이 방문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언니와 여동생이 같은 동네라 내가 가는 일이 잦았다. 그러기에 큰맘 먹고 온 나들이 길이었다.
당연하게도 고양이를 만난 적이 없는 개와 개를 만난 적이 없는 고양이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자 극단의 태도로 일관했다. 제리는 캣 타워, 소파 등받이 등 개가 올라오지 못하는 공간만 이동했고, 보리는 아래에서 계속 내려오라고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어 댔다.
보리가 누나였다. 체구도 보리가 더 컸다.
그런데 보리의 접근이 계속되자 제리는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온몸을 둥글게 말고 내는 으르렁 거림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보리는 일시적으로 뒷걸음을 치며 여동생에게 달려갔다. 무서웠던 것이다.
깜짝 놀랐다. 제리가 이상한 생물체인 보리를 향해 접근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엄포를 놓은 모양새였다.
그 후에도 보리는 몇 번의 친밀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상대는 무시로 일관했다.
여동생은 하악질이나 양펀치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입장이었지만, 한 번도 제리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내 입장에서 얘도 맹수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보리에 방문은 제리에게 저녁 꿀잠을 선사했다.
가스검침원이 방문했을 때 원래 인터폰이 울리면 자동으로 숨는 제리는 여자 검침원 분과 맞닥 뜨린 적이 있었다.
"고양이가 있네요."
"어 어딨던 가요?"
처음부터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이전에 없었기에 신기한 일이었다.
"방에 딱 서 있던데, 제가 고양이는 무서워해서. 물잖아요."
"아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말하고 흠칫했다. 뭐지 이 클리셰 같은 대답은
손을 무는 제리
발톱을 세워 손가락을 무는 제리
제리는 집사를 문다. 머리를 좀 길게 쓰다듬으면 그만하라는 의미로 가볍게 문다. 작은 집사는 종아리를 물리며 사냥놀이를 해준다.
이 무슨 뜬금없는 거짓말인지. 나도 모르게 그분의 긴장도를 낮춰줄 공산이었던 건지.
정말 그분께는 죄송한 맘이다. 저래봬도 맹순데. 다행히 그분은 제리에게 물리지 않고 검침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낯선 사람을 무는 행동을 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 아닌가.
이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개물림 사고가 일어나면 주인이 단속을 못한다느니 하며 개주인을 탓하는 모순적인 내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불편한 진실이다.
사랑으로 기른다고 하지만, 정말 아무 스트레스 없이 기른다는 것이 가능한지. 돌아보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에 가는 행위가 제리에게 힘든 과정이니.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람이 살다 보면 집에 오는 사람을 다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우리 고양이도 물 줄 압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은 그런 본능을 깨울 수 있어요. 다가오지 마세요. 큰 소리 내지 마시고, 츄르는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