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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Jun 26. 2024

아침 있는 삶은 개뿔

아침형 인간 만들기

요증 가장 많이 발견되는 책장 위


고양이를 기르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뭔가 묻는다면 다 재치고 고양이와 시간 차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고양이는 자신만의 시계를 가지고 있단다.

예민하게 해의 길이로 시간과 계절을 인지한다고 하는데 해에 직접 노출이 적은 집 고양이는 다양한 지표로 (새의 지저귐이나 인공조명, 집사 체취, 생활 소음 알람 등을) 파악해 계절과 시간을 파악한다고 한다.(-윤샘 유튜브 참고)

그러기에 고양이는 자신이 파악한 정보로 대략적인 시간 개념을 구축해 거기에 맞게 시간테이블을 작성하는 것이다. 보통 고양이가 야행성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저녁형이다. 제리도 대략 저녁 중심이다.



제리는 특별히 공간을 정해서 자지 않기에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잘 버릇했다.

그래서 각 방 침대를 번갈아 사용하고 때로는 캣타워 때로는 소파 뒤에서 잠들었고, 가끔 화장실 샤워부스 안에서도 잠을 자고는 했다. 자기 안식처가 없어서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

숨숨집은 그저 사냥 시 숨는 데 사용할 뿐 자는 공간은 매번 바뀌었기에 취향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아깽이 시절에는 집사 있는 곳이 잠자는 곳이었다. 집사가 소파에 있으면 소파, 침대에 있으면 침대, 컴퓨터를 하면 모니터 앞에 그런 식이었다. 종종 집사의 다리나 가슴 위에서도 잠들었다.

이건 당시에는 굉장히 불편했는데 자라고 보니 좀 섭섭하다.

이제는 어딘가에서 자다가 깨면 집사를 부르며 나오는 식이다.

집사의 위치를 확인하고 얼굴 문질문질과 궁디팡팡을 받고는 쿨하게 다시 자러 간다.


아침에는 깨발랄 모드로 장난감 쥐도 물고 오고 작은 집사들을 깨울 때 방마다 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다 하나 둘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청소기 피해 달아나기 걸레질 관찰 등에 지쳐 밥 먹고 갑자기 자러 간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느긋한 낮시간을 즐길 수 있다.

오후에는 밥을 먹고 사냥놀이를 조금 하고는 다시 어딘가로 자러 간다.


4시 반


작은 집사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마중. 각 방식으로 따라다니며 괴롭힘을 주고받고는 한다. 


6시


저녁 준비를 하는 집사를 애교 가득한 눈 윙크로 지켜주다가 식탁에 앉은 집사와 애들의 다리에 꼬리 플러팅을 해대며 츄르를 얻어먹고 또 자러 간다.

8시


남편의 퇴근은 쿨하게 무시하고 안방 베란다에서 창 밖 벌레들의 짝짓기를 구경하고(요즘 우리 집 방충망에 사랑을 나누는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 있음) 그것도 사냥이라고 밥을 조금 얻어먹고 자러 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때 좀 길게 자는 편이다. 집사 가족들을 반기느라 힘들었던 것인지.


11시 반이나 12시 넘어서


일어나서 집사가 슬슬 자 볼까 하는 순간 밥 줘 놀아줘 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침에 제리가 일찍 깨우기에 집사는 이 시각에는 자야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새벽에 깨우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집사 빼고 나머지는 1시나 2시 훌쩍 넘어서 자는 스타일들이라 별 문제가 없지만, 이들이  놀아주는 것이 아니고 요령이 없어서 못 놀아준다고 보면 된다.

그러기에 집사는 지친 표정으로 제리와 못 이긴 채 놀기는 하지만 조급해진다.


"아 이대로라면 새벽에 진짜 피곤할 것 같은데, 그만 그만 자자 제리."


내 사정사정하는 말투에도 뒷발로 박수를 치며 깨발랄 모드로 놀기를 그만두지 않는 제리.(이때 정말 얄밉다)


그러면 그냥 침대에 누워버리기를 시전 한다.

애절한 제리의 울음. 후다닥.


제리 마음의 소리


어 안돼 집사 자지 마. 일어나.


어허 그럼


침대에 올라가서 가슴팍에 콱(네발로 점프해서 발로 내 가슴에 착지하기- 당한 사람만 안다는 고통)


이래도 잔다고


집사 돼. 나 지금 엄청 신났다고.


엄청 구슬프게 울어버릴 거야.


엄마의 위기를 모른 척하기 힘든 시크한 아들이 못 들어오게 닫아두었던 방문을 짠하고 연다. 이때 어둠에 아들 방 불이 좍 보이는데 구세주가 따로 없다.


오호 작은 집사 너라도 놀아줘.


몇 번의 사냥놀이 그리고 아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기절.


끝이냐고요. 아닙니다.


악몽은 여기서부터다.

새벽 5시


애절한 제리의 울음

1차 무시.

애절하지만 조금 강력한 울음

2차 무시.

침대 위 가슴팍에 콱

3차 회유 -제리 조금만 더 자자.

애절한 울음과 손가락 물기

4차 살짝 감정 섞인 회유- 야 물면 안 돼. 좀만 더 기다려 곧 알람 울면 줄게.

일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

좀 더 깊은 잠 진입

최종 일전 -강력한 귀 옆 울기

화들짝 깨면

가슴팍 공격과 손가락 물기 동시 공격


결국 비몽사몽간에 일어난 집사의 뒤를 꼬리를 한 껏 치켜들고 따라와 밥 얻어먹고

쿨하게 자러 감.


여기서 제일 슬픈 것은 조금만 기다리면 자동 급식기에서 밥이 나온다는 사실.

급식기보다 먼저 집사를 깨워 원하는 밥을 먹고 자러 갔다가 급식기에서 나온 밥도

먹는 큰 그림.


제발 이 녀석아. 다 가지고 있는 고양이 시계를 넌 악용하는 것 같구나.



웃는 걸까?빗질에 화난 걸까?


제리가 없을 때 우울증 증상으로 불면증이 있었더랬다. 지금은 절박하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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