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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Jul 03. 2024

분리불안이 생겼어, 내가

집사에게 힘든 계절, 여름

시뭔해서 자주가는 화장실 날파리 게임기가 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장 걱정되었던 건 고양이가 혼자 남겨진 시간이었다.

어떤 이들은 고양이는 독립적이기에 혼자 잘 있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반려동물도 혼자 남겨두면 분리불안을 겪는다.

혼자 남겨둬도 괜찮은 사람도 동물도 없다.


대학생 때 대형 강의실에서 철학 수업을 듣는 데 약간 똘끼가 있는 친구가 늦게 들어와 내 옆에 자리 잡았다.


갑자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면서

오다 주웠다며 새끼 고양이를 보여주는 거였다.

진짜 눈도 못 뜬 애기 턱시도냥이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나는 손도 못 댔지만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도둑고양이가 집에 들어와 새끼를 낳고 돌아오지 않아서 데려왔다는 거였다.


데려오면 어떡하냐며 교수님 눈을 피해 가방에 휴지를 꺼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얼마나  무서웠던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때 간 졸임이 생생해서 기억의 책장에 갈피가 꽂힌 느낌이다.


그때도 꼰대기질이 있어서 그 친구를 닦달했었다. 데려오면 위험하다고 말하는 내게 다른 쪽 주머니에서 또 고양이를 꺼내는 거다. 마술도 아니고.

애당초 두 마리였다. 하나는 흰 양말을 신은 검은 냥이. 기가 차서 헛웃음을 웃었더랬다.


 두고 올 수가 없었어. 어미도 없고 수업 간 사이 죽을 수도 있잖아.


그때 그 말은 변명 같았지만 세월의 질곡에 있는 지금의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한다.


집사가 되고 작고 어린 고양이를 두고 외출을 해야 될 때 정말 불안했다. 

혹시 내가 없는 집에서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 늘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나갈 때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외출해야 했다.


자라고는 조금 덜해졌지만 이제 자기 의사를 표출할 수 있기에 제리는 뭔가 외출하는 집사를 잡아두는 전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1차 전략 대기


제리는 옷을 입고 외출 준비가 시작되는 장소를 눈치채고 그곳에 대기한다. 보통 나는 외출 전 샤워, 드라이, 옷 입기. 화장하기. 가방 챙기기

이 모든 작업을 안방 파우더 룸에서 한다. 그러기에 제리는 거기에 먼저 와서 최대한 불쌍함을 장착하고 대기한다.


집사 너 나가는구나.


나는 최대한 다정한 음성으로 오늘 일정을 설명해 준다.


아 오늘 이가 너무 욱신한 거야. 예약 없이 치과에 갔다 와야 돼서 열기 전에 가서 기다려야 해. 제리 오구 이쁘네.(쓰담쓰담하면서) 엄마 금방 갔다 올게.


2차 전략 놀자는 생떼


가방을 들고 거실로 나오면 핑크 생쥐를 물고 다급히 나타난 제리. 물고 던지기 하자며 신호를 준다.


야 놀자


준비는 끝나가도 핸드폰 챙기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짝 핑크 생쥐를 던져서 안방으로 보낸다. 집사의 마음은 다급해지지만 여유로운 척 제리를 몇 번 상대해 준다.


3차 전략 배고프다 우기기


현관에 서면 제리는 급식기 앞에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눈윙크를 날린다.


집사 나 밥 줘. 너 가면 나 잘 거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양산을 든 채 돌아와 순간 거실 시계를 노려보고

밥을 조금 준비해 주고 궁디팡팡 후

정신없이 나온다.


제리 혼자 둬서 미안해 제발 오늘 안 더워야 할 텐데.


대문을 열며 살짝 돌아보면


중문 앞에 발을 올리고 집사를 보는 제리


야 이노무 집사 나가냐


중문 앞에 만들어진 제리 고정석


정말 치과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통증을 두면 더 골칫거리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에 가는 곳이 치과 아니겠나.


치과는 다행히 평일이라 사람이 적었고 예약을 하지 않았기에 예약 손님 진료 후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가 맞물리는 곳을 여러 번 살펴보시고 갈아주시면서 원인을 명확히 모르시겠다고 하셨다. 우선 잇몸이 부었다시며 스케일링 후 다시 보자셨다.

 

글 마취 후 치과 창밖이 점점 더워지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났다.


별 일이야 있겠어. 어딘가 시원한 곳에 가서 자겠지.

시원한 데 찾는 데 제리만 한 애가 있나. 에어컨을 틀 걸 그랬나. (인견 위에 턱 하고 누워 잔다. 냉감 이불을 알게 된 후 여름에도 이불에서 잔다.)

분명 나 올 때는 시원했는데...


스케일링 소리는 정말 적응이 안 돼서

그 와중에 불안감이 가슴속에서  성을 짓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스케일링이 앞 이빨로 건너오자 치위생사 분이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여기서부터는 시릴 수 있어요.

불편하면 왼 손을 들어주세요.


라고 말하셨다.

늘 드는 생각인데 아픈데 손을 드는 게 잘 안된다. 손을 들면 안 해도 되는 건가? 아니면 쉬다가 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슴에 지은 성을 외면하려 노력했다.


길게만 느껴진 스케일링이 끝나고 입을 헹구는데 불안한 맘의 성에 불쑥 굴뚝을 세운다.


오늘 아침부터 장난 아니네요. 벌써 30도예요.


선생님의 안부 말에 가슴 한켠이 툭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며칠 지켜보자고요. 그래도 아프시면 방문해 주세요. 4달 후 잇몸치료 때 봬요.


조급한 맘을 부여잡고 데스크분에게 카드를 넘겨 급히 결제 후 자리를 뜨는데 붙잡으신다. 


아 바쁜데. 진짜. (속엣말)


칫솔을 선물로 주신다. 공짜는 늘 사랑입니다.(속엣말)

웃으며 돌아오는 길.

왜 이리도 덥고 먼지.


걸을수록 더울수록 눈에 밟히는 녀석.


집은 찜통이었다. 리를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급히 나가면서 어질러진 집 곳곳을 찾아다닌다.

이미 살짝 불안.

잘 가는 장소가 아니라 시원한 곳 위주로 찾아본다. 화장실. 책장 위. 소파 뒤. 마지막 한 곳.

안방 베란다. 이미 내 외출복은 땀샤워.


이 사진은 더 어릴 때 찍은 사진  놀래서 찍은 사진이 아님



숨소리도 없이. 더위 먹고 쓰러진 줄 알고 깨웠다. 금방 안 깨서 더 놀랬다.

다행히 자는 거였다. 털이 다 젖어서 자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집사 왔다고 가릉가르릉 골골 송을 불러댄다.


꿀잠 방해서 미안해.

에어컨 켜 줄게 시원하게 렴.


그렇다. 분리불안은 내가 있었던 것이다.

제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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