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수호신: 흔들림 없는 보호자의 땅, 양림

광주 양림동

by AVA

서론: 숫자에 갇힌 도시재생을 거부하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도시재생의 성공 여부는 흔히 상업적 활성화와 지가 상승이라는 정량적 지표로 판가름 나곤 한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척도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수치로만 환산되는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사람의 온기가 스며들고 관계망이 형성되는 양림동이라는 장소 그 자체를 주목하고자 한다. 도시재생의 진정한 성공은 그래프의 상승 곡선이 아니라,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서사에 있기 때문이다.


양림동 답사를 진행하기 전에 팀원들과 조사하고 많은 정보와 토론을 나누었다. 그래서 그런지 답사를 하는 내내 양림 골목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하고 이어나가는지 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 실루엣이 그 형체들이 마치 타임랩스처럼 지나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흔히 도시재생 사례를 분석할 때 테마나 컨셉을 규정하려 든다. 하지만 양림동은 딱 어떤 한 컨셉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들이 떠나간 집들이 쓰려져 가는걸 안타까워해서 만들어진 펭귄마을, 1900년대 선교사들이 정착하며 형성한 이국적인 건축물과 정원, 그리고 21세기에는 상업적인 수단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지금의 세대들까지. 이 모든 게 다층적으로 쌓여있다. 어느 것 하나에 매몰되고 규정되지 않는 양림동은 이러한 다층적인 것들이 쌓이며 양림만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양림동의 과거를 양분 삼아 앞으로의 양림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본론

1. 움직임 없는 보호자, 그 겹겹의 시간

답사를 통해 마주한 양림동은 신화와 역사, 신앙과 예술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시간들이 녹아있었다. 양림동의 뿌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 ‘부동방면(不動坊面)’이라 불리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교의 수호신인 부동명왕, 즉 ‘움직임 없는 보호자’에서 유래한 이 지명처럼, 이 땅은 예로부터 번뇌를 끊고 대지를 지키는 수호의 공간이었다. 원래 하나였던 양림산과 사직산이 새마을 운동 시기 도로 개설로 나뉘었음에도, 국토의 안녕을 기원하던 사직단의 제례 의식과 4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호랑가시나무는 여전히 이 땅의 영적 중심을 잡고 있다. 특히 ‘Holy(성스러운)’라는 단어와 닮은 호랑가시나무는 그 붉은 열매와 가시로 예수의 고난과 사랑을 상징하며, 종교를 넘어선 자연의 수호신으로서 양림동에 서 있다.


이러한 수호의 정신은 근현대로 넘어와 또 다른 층위의 역사를 쌓았다. 1904년, 유진벨과 오웬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제중원을 세우며 근대 의료와 교육의 터전을 닦았고, 이는 곳 나환자와 빈민을 위한 사회적 보호로 이어졌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정율성, 김현승 등 예술가들이 시대의 아픔을 승화시켰으며, 광주 3·1운동과 신문잡지종람소와 흥학관 같은 항일 결사 조직이 태동하며 나라를 지키는 민족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임진왜란의 정충신 장군부터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여사에 이르기까지, 양림동은 시대마다 형태만 달리했을 뿐 언제나 ‘움직임 없는 보호자’로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지켜온 것이다.


이처럼 양림동의 진정한 가치는 이처럼 고대부터 현대까지, 불교적 수호신에서 기독교적 헌신과 민족적 저항으로 이어지는 보호와 구원의 서사가 훼손되지 않고 다층적으로 축적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2. 뉴노멀 시대의 양림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수업의 주제를 접했을 때 의문이 많았다. 우선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나에겐 생소하였는데, 사전적인 의미로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른 기준, 표준을 뜻하는 신조어라는 뜻을 가진다는걸 알게되었다. 코로나19 팬더믹과 급격한 디지털 발달이 우리 도시 공간에 갑작스럽게 침투하는 이 새로운 기준은 단순히 생활 방식의 변화를 넘어, 장소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환경을 전면적으로 개조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필터 없이 수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변화를 인정하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양림동만의 고유 시스템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 즉 ‘도시 회복탄력성’을 확보해야 한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며 거리에 사람이 없어지는 전래없던 시기를 극복하고 다시 양림에 사람이 모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림동이 지닌 회복탄력성의 근원은 앞서 언급한 움직임 없는 보호자들(양림동 신화, 호랑가시나무, 선교사, 항전운동가 등)의 역사성과 기억에서 비롯된다. 층층이 쌓인 정체성을 가진 이 양림이라는 도시는 역사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뉴노멀 시대의 외부 충격을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맞이할 뉴노멀의 시대에는 기술과 시대에 뒤쳐진다는 이유로 다 밀어버리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층층이 쌓여있는 양림동처럼 현대의 요구를 유연하게 한층 더 쌓아 올리는 과정이어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도시가 교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적응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양림동이라는 ‘움직임 없는 보호자의 땅’이 지켜온 견고한 역사성과 장소성을 토대로 발현된다. 우리는 이 견고한 땅 위에서, 양림동 만의 방식대로 새로운 시대의 층을 올리 준비를 해야한다.


3. 지붕 없는 미술관, 유연한 연대의 힘

그렇다면, 뉴노멀 시대에 양림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를 그려가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변화하는 시대를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를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는 것또한 경계해야한다. 양림동이 나아가야 할 길은 과거의 시간을 박제해 두는 것도 아니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 상업지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양림동의 미래는 사람과 콘텐츠가 채우는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거대한 랜드마크를 짓는 것이 아닌, 마을 전체를 하나의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양림골목비엔날레’가 바로 그 증거다.


코로나19로 인한 침체기 속에서 태어난 ‘양림골목비엔날레’는 관 주도가 아닌,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예술가, 기획자,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만든 민간 주도의 예술 플랫폼이다. “예술이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은 빈집과 카페, 식당, 골목을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특정한 공간에 갇혀 있는 예술을 골목과 양림동이라는 마을로 끌어내어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장소성을 획득한 사례이다. 과거 선교사들이 제중원을 통해 의료로 사람을 도왔다면, 21세기의 양림동은 예술을 통해 침체된 골목과 공동체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림비엔날레’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배경에는 행사의 기획과 운영을 주도하며 구심점 역할을 한 ‘10년후그라운드’와 같은 그룹의 노력이 있었다. 실제로 이한호 대표가 비엔날레의 집행위원장 혹은 총괄 디렉터 역할을 맡아 행사의 전체적인 컨셉과 방향성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후 그리운드가 운영하는 공간인 구 은성유치원을 리모델링한 공간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매표소와 안내소의 역할을 하며 핵심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방문객 수의 폭발적 증가와 같은 수치적 성공이 아니다. 주민과 방문객이 서로를 반기고 위로하는 관계의 회복을 추구한닫. 과거의 유산인 낡은 가옥들(이장우가옥, 최승효가옥)이 현재의 예술과 만나 공존하는 모습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특히, 2025년 11월에 개최된 김나리 작가의 초대전 <호랑가시나무 숲>은 이러한 양림동의 현재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양림동이라는 역사적 땅 위에서 펼쳐진 이 전시는, 흙이라는 물성을 통해 생의 순환을 탐구하며 오랜 세월 이 땅을 지탱해 온 ‘아찰라나타(움직임 없는 보호자)’의 지령을 조형적 언어로 시각화했다.


작가가 빚어낸 누구의 얼굴도 아닌 원형적 형상들은 슬픔과 고통을 내면화한 침묵의 표상으로서, 과거 양림산에 스며든 무명의 영혼들과 선교사들의 헌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맥락화한다. 관람객은 이 신화적 풍경 속에서 타자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며, 양림동이 단순한 소비적 관광지가 아닌 치유와 구원의 서사가 흐르는 사유의 경간임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양림동은 박제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역사적 층위 위에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적 행위가 덧입혀지는 공간이자 현재진행형의 장소라 정의할 수 있다. 수백 년 된 호랑가시나무가 땅을 굳건히 지키는 ‘수호신’이라면, 그 아래서 열리는 골목비엔날레와 예술적 시도들은 시대의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가지’와도 같다. 뿌리는 깊게 내리되 가지는 유연하게 뻗어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양림동이 뉴노멀의 시대에 적응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결론

지금까지 양림동이 지닌 ‘움직임 없는 보호자’로서의 역사적 층위와, 뉴노멀 시대에 대응하는 유연한 예술적 시도들에 대해 논해보았다. 거시적인 지표와 자본의 논리로만 도시를 평가하는 시대에, 양림동이 보여주는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바로 속도보다 방향이, 숫자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다.


양림동이 지향하는 미래는 지난 2021년, 코로나19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내걸렸던 제2회 양림골목비엔날레의 초대의 글에 가장 명확하게 담겨 있다.


많이 보러 오시라고 큰 소리로 외치지 못합니다. 북적이는 축제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성대한 개막식도, 화려한 이벤트도 없습니다. 다만,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골목의 예술이 지친 당신의 마음에 닿아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10년후그라운드 이한호 대표


이 역설적인 초대장은 양림동이 추구하는 도시재생의 본질을 관통한다. 로컬 크리에이터 그룹 ‘10년후그라운드’가 밝힌 것처럼, 이들은 정량적인 방문객 수나 화려한 성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골목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어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급변하는 뉴노멀의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실체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발전을 위해 옛것을 지우고 새로움을 채워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양림동은 증명하고 있다.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가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기에, 그 아래에서 새로운 예술이 피어날 수 있음을 말이다.

‘움직임 없는 보호자’인 양림동은 앞으로도 수많은 변화의 파도를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그 땅에는 서로를 지키고 보듬는 사람들의 연대와, 층층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단단히 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며, 앞으로도 양림동이 화려한 관광지가 되기보다,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기꺼이 안아주는, 낡지만 따뜻한 보호자의 땅으로 남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