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경재 Sep 22. 2024

태백에서 부친 편지

오래전 어머니가 태백에서 부친 편지입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나의 어머니가 쓰신 글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얗게 밝아오는 강원도의 새벽.

사방으로 부딪히는 겨울산이 나를 반긴다. 수없이 흙길을 오르내려 먼지 뽀얀 남편의 차를 타고 금이 있는 산을 향해 달린다. 지난밤 황금빛 아니 그보다 더 진한 붉은빛이 도는 황금가루들이 내 가슴에 쏟아져 내리는 꿈속의 화려함이 이젠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느 가벼운 흥분을 일으킨다. 

차에서 내려 가파른 눈길을 따라 힘겹게 산허리에 올라서니 어느 서부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던 검은 레일 위에 암석을 옮기는 수레 하나와 굴 입구의 시커먼 철문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아이들은 외로운 수레의 친구가 돼주는 선심을 쓰는 양 수레를 흔들고 소리치며 야단들이다. 남편이 철문을 열고 우리를 안내했다. 조그마한 불빛 나는 전지를 하나씩 들고 유난히 인정 많은 작은 아들의 “조심하세요 엄마”하는 울림을 들으며 한참을 앞으로 나아가니 전지의 희미한 불빛 밑으로 회색의 암석 속에 점점이 반짝이는 황금 모래알들. 인간의 꿈과 동경 그리고 사랑이 거기서 빛나고 있었다.

금, 금은 사금과 산금으로 나눈다 한다. 사금은 금광석이 천연적으로 풍화 붕괴되어 금입자로 하천 바닥 또는 해안의 모래바닥에 혼재되어 있는 금을 사금이라 하고 암석 속에 혼합되어 있는 금을 산금이라 한다. 오랜 옛날부터 금을 금화로 장식품과 보화로 또 약으로 심지어는 금을 숭배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금을 “태양의 아들”이라고 까지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대자연속의 깊숙이 숨어있는 아름다움 들은 많은 고통을 겪는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고 또 징으로 쪼아져서 온갖 화학물질과 불로 제련되는 고통을 참고 찬란한 황금으로 창조되어 다시 태어난다. 어쩌면 이것을 소중한 아기를 잉태한 산부의 기쁘고도 두려운 기다림을 가진 순수한 영혼들이 아닐까.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저녁노을 속으로 빛나는 내 금반지를 바라본다. 아니 오랜 인고로 거칠고 투박해진 빛바랜 내 손을 바라본다. 문득 황금빛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세월 나 스스로 많은 아픔으로 성숙해지고 어쩌면 저 금반지보다 더 힘들게 제련되었을 낸 지난 날들. 이제는 사랑의 황금을 탄생시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들, 살아있는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이 빛나는 마음의 황금 장신구가 되어 내 영혼을 황금빛으로 곱게 채색해 보고 싶다. 


나는 생각합니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오랜 인고와 거칠고 투박해진 손과 힘들게 제련되었을 어머니의 지난날들을. 그 어머니의 지난했던 길 위에서 수레를 흔들고 소리 치며 야단들인 나와 형의 그림자를 봅니다. 젊음과 꿈과 충만한 감성에 드리운 그 그림자를. 그렇게 어머니는 상실의 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형과 나는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 어떤 찬란하게 빛나는 삶이라도 우리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인생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인고와 상실에서 삶의 의미가 창조됩니다. 어머니는 광산에서 황금의 창조를 생각하며 그것을 예감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삶으로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내게 남기신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이전 09화 이태원에서 부친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