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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재 Sep 29. 2024

철원에서 부친 편지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연말입니다. 연말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돌아본다는 것은 즐거움뿐만 아니라 후회도 마주하는 일입니다. 올해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순간들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부끄러운 일, 참신했던 생각, 즐거웠던 사연, 분노했던 사건, 사랑했던 사람, 행복했던 순간과 좌절했던 상처가 덩굴처럼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 많은 고민과 계획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즉흥과 시도의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반복되는 연말의 되쇄김 속에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이성에만 호소하는 인생은 빛을 잃을 것이나 감성이 충만하게 발휘되는 인생은 더욱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철원에 왔습니다. 남한 최북단에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곳입니다. 나는 우리나라 지역 중에서도 더 추운 겨울을 맞고 있는 이곳 철원에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연말은 언제나 추운 한겨울입니다. 나는 일 년 내내 따뜻한 남국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연말이 연말 같지 않았습니다. 푸르름만 가득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하나의 구속 같았습니다. 흐르는 시간은 내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연말은 추운 겨울이어야 했습니다. 봄을 향한 기다림을 상실한 연말에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올해 연말 얼어붙은 철원의 들판과 산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눈이 많이 왔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등성이며 들판이며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겨울 안개가 산등성이를 감싸며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좀 더 그대로 보고 싶어서 차창을 내렸습니다. 겨울의 상쾌하면서도 찬 공기가 차 안을 휘돌아나가고 싱그러운 한국의 겨울 풍경이 두 눈에 담기고 있었습니다. 익숙하다고 여겨졌던 것에서 발견하는 새로움. 그것이 내게 한국의 미였습니다. 한국의 들녘이 그러하고 한국의 산등성이가 그러하며 포근히 그 대지를 감싸고 있는 저 하얀 눈이 그러합니다. 한국의 미학은 영원히 저 대지를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철원 한탄강에 왔습니다. 한탄강은 탄식한다는 의미로 착각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큰 여울을 의미합니다.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급한 개울을 여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크다는 의미를 뜻하는 한을 붙여 한탄강입니다. 한탄강은 북한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철원군과 연천군을 지나 임진강으로 합류합니다. 즉, 남한과 북한을 가로지르는 강입니다. 화산암 지형으로 주상절리가 많은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합니다. 다른 지대에서 볼 수 없는 기암괴석이 많고 절벽과 협곡으로 풍광이 참으로 수려한 곳입니다. 이곳은 의적이라 칭해지는 임꺽정의 은신처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와 그 풍광이 더욱더 수려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도착했는데 현장에서 오히려 위험하여 대부분의 구간은 출입 금지라는 아쉬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은 삼십 분 남짓한 은하수교 앞까지라고 하였습니다. 아쉬움을 안고 들어서긴 했으나 한탄강의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아쉬움은 곧 사라졌습니다. 마치 각진 벌집처럼 절벽을 수놓고 있는 주상절리 틈 사이로 거대한 고드름이 수직의 결을 형성하며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상절리 아래를 푸르고 투명한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흐르는 강물 곳곳으로는 얼음이 얼어 있었고 밤새 내린 눈이 그 위에 소복이 쌓여 있었습니다. 흐르는 푸른 강물 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얼음과 바위의 굳건함이 어우러져 겨울 고유의 율동감이 충만해 있었습니다. 흔히 겨울은 생명이 스러지고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곳 한탄강의 겨울 풍경 속에는 오히려 어떤 생명력이 꿈틀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은하수교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시 길을 돌아갔습니다.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갔는데 직탕폭포로 향하는 상류 구간은 제설작업이 되었는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구간이었지만 다행이라 여기고 곧 직탕폭포로 향했습니다. 직탕폭포는 높이는 약 3미터이지만 너비는 약 80미터에 이르는 계단 모양의 폭포입니다. 풍부한 수량이 높이차를 이루는 하천면을 따라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직탕폭포가 마지막 구간이었는데 그보다 위쪽으로 천연스러운 돌다리가 보여서 그쪽으로 갔습니다. 화강암으로 만든 돌다리였는데 언제 만든 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을 그대로 쓴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칼 각의 시멘트 다리가 아니라 자연석 그대로의 넉넉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 돌다리를 건너자 좁은 산책길이 나와 그곳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십분 쯤 지나자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위에 도착하자 사위가 밝아졌습니다. 탁 트인 시야로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주변 산등성이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고요 속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는 민가는 이곳에서도 삶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기 시작해 들 판 곳곳으로 햇빛이 비추기 시작했고 흰 눈은 더욱 순수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고 자라고 다시 흙으로 돌아갈 한국의 산수였습니다.  

경기도 최북단 철원은 북한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마주한다기보다 대치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합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방아쇠 한 번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총을 어깨에 두르고 서로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곳에 서서 남과 북의 비극에 대해 생각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휴전선을 두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시간은 70년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의 조부만 해도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런 남과 북이 지금은 서로를 증오의 감정과 언어로 대하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로도 국지전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한창때의 젊은 청년들은 원치 않아도 총을 들고 2년이란 시간을 바쳐야만 합니다. 국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분명 그것은 자유의지의 박탈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남국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철원에서 우리의 강산이 거대한 수갑에 채워져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비극의 출발이 우리 내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통탄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서구에 의해 구축된 사상에 의해 세계의 권력 지형이 형성되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을 축으로 하는 공산주의와 미국과 유럽을 축으로 하는 민주주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충돌하게 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우리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이 동의한 전쟁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한반도는 세계 권력 투쟁의 대리전이었고 한반도의 몇몇 엘리트가 단지 여기에 편승했을 뿐입니다. 일제에 항거해 태극기를 들었던 이천만 동포 누구도 반쪽의 한국을 위해 만세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상의 대립에서 출발한 세계사 격변의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증오하고 있을까요.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출신입니다. 시인 백석은 평안남도 출신입니다. 우리 근대사의 주요 인사들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강산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이 땅에서 나고 이 땅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합리한 체제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이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비극적 현실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냉철하게 인식하고 증오의 감정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휴전선이라는 상징에 갇히지 않고 같은 피와 역사를 나누고 있는 민족의 존재를 인식하는데서 우리는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그 공감대가 단단히 형성된 토대 위에서만이 우리는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의 비극은 만나지 못함에 있습니다. 응당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만큼 커다란 비극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삶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원한다면 만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가능성이 있어야 우리 삶은 안정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척에 두고도 만날 수 없는 삶은 끝나지 않은 슬픔 속에 살아야 하는 굴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과 북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치도 못한 전쟁 속에서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를 지척에 두고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온갖 정치적 역사적 해석이 탁상 위에서 난무하고 있을 뿐 고통의 공감에는 다다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 철원 한탄강의 이름이 한탄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탄강의 몸통을 끊어놓고 있는 휴전선의 날카로운 칼날에 한탄강은 세차게 울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겨울 풍경이라서 더욱 슬픈 한탄강이 자신의 본래 이름인 큰 여울을 다시 찾을 날을 오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연말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며 즐거운 일입니다. 삶은 만남으로서 완성되는 집입니다. 그런 만큼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이곳 한탄강에 한 번 오기를 바랍니다. 이곳에 서서 당신이 만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두움과 빛은 서로의 존재 속에서 머무릅니다. 그 만나지 못하는 어두운 그늘을 인식함으로 만남의 순간은 피상을 넘어 의미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의미의 발견이 한반도의 마지막 구속으로부터 해방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뒤안길에서 배회하는 냉전의 유물을 종식하고 이 땅에 내리는 계절의 약속처럼 역사는 다시 흘러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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