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은 해방입니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고향은 청주이지만 고향에서 산 시간만큼이나 서울에 살았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서울은 고향보다도 익숙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던 대학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첫 직장을 잡고 눈물 쏙 뺄 만큼 혼나며 돈 버는 것이 쉽지 않다는 깨달음의 나날을 보내던 기억도 있습니다. 마흔의 나이를 앞에 두고 그 시절을 돌아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서울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께 보내는 편지에서 서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내 삶의 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되겠지요.
서울에는 갈 곳이 참 많습니다. 조선 정치사의 흔적을 느끼며 거닐 수 있는 경복궁과 창덕궁을 비롯한 궁궐들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에서부터 근현대사의 문예와 미술의 흐름이 곳곳에 스며있는 인사동도 있습니다. 종로 일대의 오래된 노포에서 지인들과 술 한잔 기울일 때는 그 만의 운치와 감성에 마음이 푸근해지곤 합니다. 청담동과 압구정의 세련된 가게와 트렌디한 차림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뉴욕이나 파리 못지않습니다. 신촌과 홍대 거리는 매일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쳐나고 스트리트 패션의 메카이기도합니다. 문래와 성수동에서는 오래된 공업사나 주택가가 창조적인 문화의 거리로 조화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이런 거리들 뿐만 아니라 사계절을 품으로 끌어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도심 여기저기로 펼쳐집니다. 북한산 능선을 따라 서울 곳곳으로 뻗어 내린 산들의 빼어남은 세계 그 어느 대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넉넉하게 흐르며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는 한강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갈 곳이 많아 이곳에서 이십 년이란 시간을 보낸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나는 나름 세계 여러 도시들을 여행했지만 서울보다 다양하고 트렌디하면서도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 숨 쉬고 있는 곳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곳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이태원을 참 좋아합니다. 이태원도 서울의 여러 번화가 중 한 곳이지만 내게는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이태원만 가지고 있는 그 분위기가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먼저 가장 유명한 거리인 이태원 1번 출구 쪽의 이태원로 27가 길이 있습니다. 폭이 그리 넓지 않은 골목이 이삼백 미터 여남짓 이어지면서 중간중간 작은 골목들이 수직으로 교차하고 있는 곳입니다. 활기가 넘치는 이곳은 라운지 펍이 많습니다. 라운지 펍들이 길목과 맞닿아 사람들이 나고 오는 게 자유로운 편입니다. 클럽과 비교하자면 클럽은 안과 밖이 확실히 구분이 되어 있지만 라운지 펍은 그보다 자유 분방한 느낌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클럽을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은 라운지 펍의 자유로움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라운지 펍은 신분증을 보고 나이 많은 사람을 문전 박대하는 소위 “뺀찌"도 보통 없습니다. 그래서 웃프게도 내가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와서 사람들도 점점 더 자연스럽게 느끼지만 여전히 배타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 그들이 가장 자유롭고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번화가라면 단연 이태원입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묘한 문화의 교차로입니다. 이곳에는 게이나 트랜스젠더 바도 있습니다. 여전히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간판을 달고 영업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이태원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태원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태원로 27가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거주하면서 이룬 촌락으로부터 시작된 해방촌이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는 소박한 주택가였던 경리단길에는 경사로 있는 골목길 사이사이로 예쁘고 전망 좋은 작은 술집이나 카페가 많이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나는 좁은 골목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의 풍경을 참 좋아합니다. 이곳에서 약속이 있으면 조금 일찍 가서 골목길을 천천히 배회하는 것도 좋습니다.
나는 고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장소를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멋지다고 느끼다가도 그 고유의 개성이 없는 장소는 한두 번 방문하면 감흥이 없어지곤 합니다. 어떤 장소의 개성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형성된 장소 그 자체의 모습에서 보이기도 하고 그곳에 모이는 사람의 풍경이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든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태원은 내게 장소와 사람 둘 다 그 특별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자연스레 섞여 라운지바의 골목길에 음악과 함께 흐르는 그 분위기는 이곳 만의 특별함입니다. 그 주변으로 좁은 골목과 경사가 교차하는 곳에 크고 작은 가게와 술집이 저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모든 분위기가 녹아 있는 이 거리를 걸으며 나는 일상 속의 특별함을 발견하곤 합니다.
고유한 스타일을 가진 장소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나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나는 스타일이 해방을 향한 몸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입하는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창작 행위입니다. 고유의 감각을 추구하고 직관에 의한 시도로 독창성을 만들어가며 세상이 던진 올가미를 끊어내는 통쾌한 반란입니다. 지치지 않고 시도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사람과 대화를 하면 금세 그것은 그만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담은 의미 있는 순간이 되곤 합니다. 스타일이 있는 사람에게 무감각은 무덤이며 통념은 감옥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멋진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입니다. 그런 만큼 나는 어떤 스타일을 가진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태원을 얘기한다면 여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2022년 10월 29일에 일어났던 참사를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스타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깊은 상처일 뿐입니다. 축제가 한창이었던 그날 순식간에 159명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허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분노 또한 일었습니다. 그 수많은 인파가 모여도 단 한번 사고 난 적이 없던 그곳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유족들이 여전히 길 위에서 진상 규명을 외치며 아들 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쟁이 두려워 이 참사에서 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때 행정은 부재했고 그 행정의 조타가 돼줄 정치가 침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천재지변이 아닌 분명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처참한 것은 이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정치인들은 사안을 감추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유가족이 모여 서로를 조금이라도 보듬을 수 있도록 하지 않았고 진상규명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집단행동이나 사회적 관심이 커져 정치적 불리함이 생길 것을 두려워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벌써 1년이 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러왔다는 것이 참담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공감,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사람다움의 문제입니다. 진실에 다가서지 않는 한 치유의 시계는 영원히 멈춰 있을 것입니다.
참사가 나고 시간이 흘러 이제 이태원도 예전의 활기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그곳에서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작은 골목길 앞에 빼곡히 붙어있는 종이쪽지들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집니다. 이태원은 아니지만 서울시청 구석에 여전히 설치되어 있는 작은 분향소 천막 앞에서도 나는 미안합니다. 나는 시간이 지나 그것이 잊히길 바라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진실의 조각이라도 밝혀져 멈추었던 치유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