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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재 Jul 14. 2024

신안에서 부친 편지

사랑의 발견이 자유입니다

차를 몰고 목포에서 담양으로 향하던 중 신안군으로 빠지는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분기점을 눈앞에 두고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핸들을 돌려 신안군으로 향했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과거로 흘러가고 계획은 잊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다를 보고 싶다는 그 마음, 그 현재를 놓쳐버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 수많았던 망설임에 또 다른 망설임을 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화창한 가을 하늘은 참으로 높고 푸르렀습니다. 목포에서 압해대교를 타고 신안군으로 들어서자 작은 마을들이 오래된 기억처럼 나를 반겼습니다. 그 마을을 지나쳐 이름도 예쁜 천사대교를 타기 시작하자 푸르른 바다에 머리를 빼꼼히 내민 섬들이 펼쳐졌습니다. 청명한 하늘과 부드러운 햇살 아래 넘실거리는 바다가 섬들을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다도해의 도시 신안의 속살이 펼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 세계 많은 곳에 여행을 갔었는데 이런 아름다움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우리 강산의 익숙한 선과 그 강산이 깊고 넓음을 다시 깨닫는 새로움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안군 다도해 사이를 달리며 자유를 보았습니다. 월급쟁이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그 순간 나는 분명히 자유로웠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한 마리 우스꽝스러운 파랑새쯤 된 것 같았습니다.

거칠 것이 없던 시야를 눈에 담다 보니 곧 목적지였던 퍼플섬에 도착했습니다. 퍼플섬은 안좌도 부속 섬인 반월도와 박지도를 부르는 명칭으로 이곳에 많이 나는 도라지와 꿀풀 꽃, 콜라비가 보라색이라는 점에 착안해 붙였다고 합니다. 보라색을 테마로 삼아 섬을 잇는 해상 보행교뿐 만 아니라 민가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섬입니다. 사실 나는 굳이 보라색으로 건물들을 칠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있는 그대로 세월을 머금은 그 모습을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목재든 철골이든 그 안을 채운 가재도구든 있는 그대로 나이가 들어간 모습은 내게 어떤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세월의 흔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테마를 정해 잘 꾸며 놓으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이곳 사람들의 생업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 어떤 아름다운 모습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보다 소중할 수는 없겠지요. 

퍼플섬의 해상 보행교를 걸으면 우리나라 갯벌의 진수를 볼 수 있습니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갯벌에서 소금을 뿌리며 조개며 갯새우를 잡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갯새우를 잡아 가지고 와 동네 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구경했던 순수했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나라의 갯벌은 규모나 가치면에서 세계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서해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북해 연안 갯벌보다 5배가 넘는 동식물 800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갯벌은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오염원인 폐수나 하수를 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서해 갯벌의 정화능력은 전국의 하수종말처리장을 모두 합한 것보다 약 1.5배나 뛰어나다고 합니다. 서해가 영국의 갯벌보다 정화능력이 15배 이상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온난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도 한다고 하고요. 1만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형성된 갯벌은 멸종위기종 3분의 1이 살 정도라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을 터전 삼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세대를 이은 삶의 모든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곳일 것입니다. 

얼마 전 새만금 갯벌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수라”를 보았습니다. 지금도 개발되고 있는 새만금 지구 인근의 수라 마을의 갯벌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때 이곳을 터전으로 삼던 사람들의 애환과 이곳을 여전히 지키고자 노력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을 조명하였습니다. 개발이란 미명하에 파괴된 갯벌의 생태는 비단 그 속에 사는 동식물뿐만 아니라 그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사람들을 내몰았습니다. 심지어는 그곳을 지키려고 머물다가 물막이가 열려 순식간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며 내내 가슴이 먹먹하였습니다. 나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나름 찾아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며 어떤 효용을 만들어 냈는지 알아봤지만 아직도 어떤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에 반해 갯벌이 묻히며 함께 사라져 간 갯벌 생태계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의 상실은 너무나 뚜렷하였습니다. 그런데 적자에 시달리는 군산 공항을 두고 또 이곳에 공항을 짓겠다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공항을 짓는 것이 아니라 새만금 사업을 재검토하고 가능한 한 많은 갯벌 생태계를 다시 복원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은 흘러야 합니다. 너른 갯벌에 다시 생명의 바다가 찾아들고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다와 갯벌은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영화 “수라"를 꼭 한 번 보기를 바랍니다.

퍼플섬 해상교를 걸으며 갯벌을 보면 뻘이 높낮이를 이루며 물길을 만드는데 그 곡선과 직선, 좁고 넓음과 얕고 깊음이 면면히 이어지는 천연스러움이 참으로 담담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이 오랜 세월 빚어낸 하나의 경이였습니다. 일회성의 영웅 서사가 아닌 가까이 두고 오래 함께 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경이었습니다. 좁고 얕은 물길에는 송사리가 떼를 이루고 좀 더 넓은 품의 물길에서는 팔뚝만 한 숭어가 유유히 유영하고 있습니다. 물이 빠진 뻘 위에는 수많은 게 들이 구멍에 들락날락하며 저마다 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갯벌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또 죽어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그 풍경을 눈을 담고 있자니 마음이 그렇게 평온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풍경 속에서 계속 눈길을 끌었던 것은 신안의 섬들 여기저기에 드문 드문 있는 민가들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이곳에 터전을 두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며 삶을 이어왔을 것입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고 기술의 편의를 빌려 많은 사람들이 나름 편하게 오고 가는 곳이 되었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만 해도 육지에 한번 나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바다 건너 땅끝까지 이어가는 그들의 삶의 양식이 도시인인 내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척박하고 좁은 땅을 일구고 추운 겨울에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갯벌 위에서 양식을 구했을 것입니다. 죽음이 삶만큼 가까운 시절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는 이곳이 더욱더 아름다웠습니다. 소박하고 담담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깊은 울림을 주는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신안의 아름다움은 햇살아래 푸른 바다와 섬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 번은 동남아의 한 유명한 섬에 간 적이 있습니다. 보트를 타고 에메랄드 바다를 가로질러 청정한 무인도를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신안은 아름다움은 질적으로 다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삶의 흔적입니다. 이곳에 태어난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삶과 죽음을 껴안고 살아온 우리의 조상과 그 후손들이 있는 이곳은 깊은 여운을 주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 근원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신안군도 계절 속에서 꽃이 피고 푸르름으로 채색되었다가 앙상한 가지가 어딘가 허전해 보일 때쯤 흰 눈이 오면 눈부시게 빛날 것입니다. 푸른 바다는 때때로 격렬하게 울다가 잔잔하게 섬들을 어루만질 것입니다. 너른 갯벌에서는 쉬지 않고 생명이 순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자연이 주는 축복과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갈 것입니다. 이 너무도 한국적인 모습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제야 세상이 발견한 것이 아닐까요.

신안군에 와서 자유를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안에 담겨있는 어떤 진실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이곳에 태어난 운명으로 삶의 뿌리를 내린 내가 이 강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없기에. 어리석은 나는 한나절의 휴가를 자유라고 착각했었을지도 모릅니다. 구속되지 않음이 자유가 아니라 사랑의 발견이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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