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경재 Jul 07. 2024

봉하에서 보낸 편지

바보였기에 그는 사랑받았습니다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시골마을이지만 도로는 잘 닦여 있었고 건물들은 소박하고 단정하게 잘 지어져 있었습니다.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정비를 잘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에 대통령 생가, 기념관, 생태문화공원과 묘역 등을 촘촘하게 구획해 놓았습니다. 도착해서 처음 든 생각은 너른 들이 펼쳐지고 완곡한 산등성이가 편한 모습으로 마을을 부드럽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가 거친 산세가 수려한 경상도의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들의 곡식들은 가을 햇살아래 여물고 있었습니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노란 바람개비가 돌고 잠자리들이 버드나무 사이로 날고 있는 가을날의 소박한 마을의 모습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1층은 전시실로 되어있고 2층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재에 있던 책을 그대로 가지고 와 서재를 만들어 놓은 곳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그가 어떤 책들을 읽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정치와 경제에 관한 책들은 당연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눈에 띈 것은 에세이와 소설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선택한 문학 서적들은 그 사람의 취향을 보여주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곤 합니다. 내가 읽었던 책들도 제법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을 예찬하고 현대인의 과도한 욕심을 비판하는 월든도 보였습니다. 고갱을 오마주로 하여 예술혼을 그려낸 달과6펜스도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도 꽂혀 있었습니다. 건축가인 승효상의 대표작 빈자의 미학도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인만의 과학 서적이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같은 심리학 서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앞에 두고 자연인 노무현은 설레어 해맑게 웃었을 것만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의 사진도 있었고 인생 고비고비의 치열함이 엿보이는 사진도 보였습니다. 내 눈에 띈 사진은 그가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손녀와 놀아주거나 그를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반기는 사진들이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편한 모습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도 보였습니다. 사진 속의 그는 자연스러웠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살얼음의 정치판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인생의 새로운 막을 사는 한 명의 자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그의 최후 속에 담긴 비극과 사진 속의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운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살아있지 않다면 운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던 그의 고통을 감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는 살아야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묘역은 시민들의 추모글이 새겨진 박석이 길을 내고 있고 그 주위로 자연박석이 묘역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연박석을 참 좋아합니다. 조선시대의 대표 건물인 종묘 정전 앞 월대에도 자연 박석을 깔아 놓았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자연스럽고도 단정합니다. 칼 같은 각으로 밀어 놓은 돌은 언듯 보면 질서 정연해 보이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연 박석은 편안함 속에서 질서를 가지고 있어서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습니다. 게다가 박석은 햇빛을 난반사해서 그곳을 거니는 사람이 편안하게 눈을 둘 수 있다고 하니 더 좋지요. 그 박석을 주위에 두고 그의 묘는 봉분대신 낮은 너럭바위를 두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그의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연박석과 낮은 봉분과 이름 없는 시민들의 추모의 글, 모두 대통령이었으나 소탈했던 그의 모습과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묘역을 돌아 아담한 차밭을 지나면 봉화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 걸어 올랐다던 산기슭 숲 길입니다. 이름 그대로 봉화가 있는 산을 뜻하는 봉화산은 우리나라의 흔한 산입니다. 자연인 노무현의 소박함과 평범한 이 산은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을 올라가고 있자니 그가 오르던 모습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려지는 그 모습이 터벅터벅 올라가는 쓸쓸한 뒷모습인 까닭은 그가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았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발걸음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봉하마을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봉수대에 도착합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시야가 시원합니다. 봉하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제법 너른 들에 야트막한 산만 보여 경상도의 산세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나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저 멀리 산 넘어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소박한 집들 너머로 펼쳐진 들판과 연달아 달리는 산맥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습니다. 최순우 관장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가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다”는 그 구절입니다.

이 봉하에 와서 나는 성공과 실패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그의 극적인 삶은 성공과 실패 사이 어디쯤 숨어있는 진실이면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를 내게 안겨주었습니다. 그가 처절히 외치던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개혁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만든 많은 공과 과가 있겠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숙명이라고 여기던 청산의 과제를 해내지 못했음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신도 물을 거슬러 헤엄쳐왔는데 돌아보니 물살은 다시 그대로였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부정한다고 해서 실패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성공의 증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성공을 확인하는 길목에서 확실한 이정표를 보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청산을 위한 확고한 개혁이나 사람사는세상을 위한 혁신적인 제도적 도입을 통한 역사에 남을 진보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길 위에서 계속해서 마주치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상념에 잠겨 홀로 이 봉하마을을 거니는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비 내리는 서울시청을 가득 메운 채 그의 죽음을 비통해하던 사람의 물결과도 마주쳤습니다. 십수 년이 지난 후에도 그를 그리워하고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과도 마주쳤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은 그들의 가슴에 후회와 분노를 슬픔과 다짐을 아로새겼습니다. 그것은 분명 실재하는 어떠한 힘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바람결이 아니라 굳센 돌덩이처럼 단단한 실재였습니다. 실패를 거듭했던 정치인으로서의 역경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한 인간의 상실이 낳은 커다란 반향이었습니다.

단정할 수 있는 실패와 측정할 수 없는 성공사이에서 진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왜 그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내었고 그들의 가슴에 강력한 원동력을 만들어 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를 곱씹어보다가 성공과 실패의 가치를 생각하는데 매몰되기보다는 하나의 다른 풍경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과 실패라고 하는 결과가 아니라 그를 향해 가는 과정 속에 담긴 시도의 가치입니다.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계량화 되지 않는 것들이 경시되는 현실에서 실패한 시도의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순진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이야기는 그것이 가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많은 시도들을 했지만 성공보다는 실패로 끝나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랑의 실패, 우정의 실패, 미숙했던 많은 순간들이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신념을 잃지 않고 시도하고자 하는 이유는 측정할 수 없는 것들에도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선택이고 믿음의 문제일 뿐이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비유를 하고 싶습니다. 기자가 현장에 가지 않고 생동감 넘치는 기사를 쓸 수 없고 건축가가 현장을 보지 않고 건축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감각이 살아나며 갇혀 있던 생각이 자유로워집니다. 나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도를 통해 감정이 해방되고 생활의 지평이 넓어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에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삶의 긴 시간에서 실현해갈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치열했던 많은 시도들은 각기 다른 결과로 끝맺어졌습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그것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었는데 그는 영원한 침묵 속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성공과 실패에 주목하며 그의 유산을 평가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아파하고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성공이나 실패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바보였기에 그는 사랑받았습니다. 나는 그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의 치열한 시도가 타인의 가슴과 공명함으로써 성공과 실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시도는 때때로 아픔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인 자신의 가치를 찾는 과정입니다. 그는 그렇게 성공과 실패에 구속되어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발자취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남긴 유산입니다.

이전 05화 청령포에서 부친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