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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재 Jun 30. 2024

청령포에서 부친 편지

이곳에서 나는 운명을 생각했습니다

겨울입니다. 차디 찬 겨울은 잎도 지고 생명도 스러지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이 계절을 봄을 기다리며 견디는 계절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나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찬 공기 속에서 머리는 맑아지고 외로움은 더 투명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책 속의 글 귀는 명료하게 다가오고 써 내려가는 글은 더욱 진실에 다가서는 듯합니다.

봄은 아직 요원한 어느 겨울날 나는 영월 청령포를 찾았습니다. 청령포에 들어가려면 강을 건너기 위해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합니다. 겨울에는 마치 쇄빙선처럼 배가 얼음을 깨며 강을 건너갑니다. 우두둑 얼음을 깨는 소리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낍니다. 강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아 다리를 놓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텐데 여전히 배를 통해 강을 건너갑니다. 아마도 청령포로 들어가는 그 옛날의 여운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강물이 얼어붙고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청령포에는 고요가 흐르고 있습니다. 겨울의 찬 대기 아래 산등성이는 자신을 오롯이 드러냈지만 푸르름을 잃지 않은 소나무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지키는 듯합니다. 나는 소나무 아래 눈 밭을 거닐며 단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게 생각에 잠겨있는 듯합니다. 그도 어느 겨울날 이렇게 눈 밭을 거닐며 인생의 쓸쓸함이나 운명의 가혹함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단종이 아닌 노산군으로 살아야 했던 단종의 삶은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운명이란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의 선택에 의해 빛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선택이란 존재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운명이란 주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운명이란 선택하지 못한 자의 합리화의 근거가 되고 인생을 수동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단종을 생각하면 그 운명이란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단종은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의 손자이자 세종만큼 뛰어나며 조선 최초의 적장자 문종을 아버지로 두었고 주변에 충직한 신하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문종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단종은 나라의 기틀이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고 그 어느 군주보다 정통성이 확립된 왕으로서 치세를 펼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두견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피눈물을 흘렸던 노산군의 사연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노비로 전락한 비련 한 정순왕후의 비극도 없었을 것입니다.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쌓았다던 망향탑도 없었을 것입니다. 처량한 노산군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하는 관음송 이야기도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비정하게 흘러갔습니다.

단종의 사연은 선택보다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운명의 굴레에서 떨다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단종의 이야기는 나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누군가가 내게 운명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믿지 않는다가 아니라 믿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곳 청령포에 서린 단종의 이야기는 운명의 개척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처연합니다.

겨울에 찾은 청령포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한국미 물씬 풍기는 단종 처소의 날렵한 기와 위에는 흰 눈이 사뿐히 내려 않아있습니다. 소박한 마당을 두고 천연스럽고 아늑한 돌 담 위에도 흰 눈이 반짝거립니다. 푸른 소나무는 겨울 공기처럼 시원하게 하늘로 뻗어 있습니다. 망향탑이 쌓여있는 언덕에 올라가 사방을 보면 얼어붙기도 흐르기도 하는 강물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청령포를 그림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저 멀리에는 포근하면서도 당당한 산자락이 눈에 덮여 하얗게 새었습니다. 어린 단종은 먼 훗날 어느 한 후손이 청령포 겨울 풍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가련했던 자신의 운명을 떠올리고 있을 것을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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