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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의 나라(Rainbow Country), 남아공

-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어느 보통 사람의 이야기'

by 세상의 창

[제1화]

무지개의 나라(Rainbow Country), 남아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봄은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시작된다.

자카란다가 휘늘어진 프리토리아의 10월은 그야말로 보랏빛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줄여서 ‘남아공’)은 남반구 국가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와는 계절이 뒤바뀐다. 우리나라의 봄은 거기 가을이고 우리나라의 가을은 거기 봄에 해당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만 26년 간 종합상사에서 상사맨으로 해외영업을 담당한 나는 1994년 남아공에 인권철폐 훈풍이 불어오던 바로 그 해에 요하네스버그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남아공은 우리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로 알고 있는 인종차별정책의 나라이고,

반 아파르트헤이트 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나라이기도하다.


그해 4월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자유선거가 실시되었고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하네스버그의 치안은 극도로 불안하여 요하네스버그 지사 발령을 받고 주위에서 ‘축하 반, 걱정 반’을 하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무지개의 나라(Rainbow Country),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솔직히 불안한 마음을 떨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주재 생활은 그 이전에 주재원 생활을 했던 미국 뉴올리언스, 휴스턴, 피츠버그 지점, 그리고 벨기에 브뤼셀 지사에 비해 후일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선사하였으니 내게 남아공은 그야말로 일곱 색깔 무지개 나라임에 틀림없다.


남아공은 정말 크고 광대한 나라다.

만델라 이전의 백인 정부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정책으로 인해 흑백 갈등이 곳곳에 남아있고, 흑백 간 경제적 불평등은 심각할 정도였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준비하며 요하네스버그에 짐을 풀었다.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요하네스버그의 치안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범죄율이 높은 지역으로 악명이 높은 다운타운에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다. 흑인들이 총 들고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한다는 소리를 하니 누가 감히 그곳에 나가겠는가.


그러다 보니 주재원들은 비교적 치안이 좋은 북부 샌튼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하기 일쑤였고 다운타운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업무적으로 만나는 거래선들은 차 안에 호신용 권총을 숨기고 다녔다. 여차하면 총이

자길 지켜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10월의 프리토리아를 쉬이 잊지 못하는 것은 프리토리아에는 10월에 50만 그루의

자카란다 나무가 보라색 꽃을 만개하여 온 도시를 뒤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이

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의 취임식이 개최된 프리토리아 대통령궁

유니온 빌딩 앞에는 넬슨 만델라 동상이 우뚝 서있다.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로벤섬에 갇혀서도 조국의 인종차별정책의 철폐를 외치며 그의

백성과 그의 나라를 걱정했던 진정으로 용기 있는 지도자였던 '마디바'(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애칭)가 두 팔을 벌려 프리토리아를 내려다보며, 흑인과 백인 간에 차별이 없는

무지개 나라를 꿈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글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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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무역보국의 기치 아래, 국경 없는 전쟁터에서, 젊은 시절, 수출 전선의 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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